[특집/ 영화 〈기생충〉 아카데미상 수상]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시대 자화상 그렸지만 오히려 자긍의 계기 만들어
자성과 경종의 장면서 떠올린 한국교회 … ‘희망의 역할’ 비중 높여갈 고민 필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의 성취와 메시지는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에서 취해야할 역할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사진은 영화 기생충의 주요 장면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의 성취와 메시지는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에서 취해야할 역할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사진은 영화 기생충의 주요 장면들.

자신이 연출한 일곱 번째 장편영화 <기생충>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주요 부문상 200여 개를 휩쓸며, 봉준호 감독은 이제 한국에서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만큼 유명세를 타는 인물이 되었다.

국내 누적관객이 1000만명을 넘어서고, 세계 202국에서 상영되며 글로벌 수입이 2월 17일 현재 1억7000만 달러 이상으로 집계되는 등 <기생충>은 작품성과 상업성 모두에서 전인미답의 성취를 이룬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아시아 유럽 북미 등 다양한 문화권에서 <기생충>은 엄청난 팬덤을 형성하면서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캐릭터 대사 소품 등까지 연일 새로운 화젯거리로 등장한다. 처음 이 영화가 국내에 상영될 때까지만 해도 ‘제시카송’ ‘서울대학교 문서위조학과’ ‘짜파구리’ 등 한국인들 사이에서나 제한된 공감을 일으킬 것으로 짐작했던 영화 속 각종 장치들이, 마치 몇 해 전 가수 싸이가 발표한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처럼 국적을 불문하고 열광적인 반향을 일으키는 현상에는 일종의 경이감마저 든다.

가뜩이나 총선을 앞두고 예민해진 정국에다, 코로나19의 창궐로 뒤숭숭했던 한국사회에 <기생충>의 수상소식은 지역 이념 세대 종교 계층을 초월해 온 국민을 환희와 자긍심으로 하나 되게 만들었다. 오죽하면 불과 몇 해 전 봉준호 감독을 소위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려놓고 손발을 묶고자 시도했던 지난 정권의 후예들조차 갖은 공치사를 하고 있다. 생가 복원이니, 기념관 건립이니 하는 다소 낯간지러운 공약까지 내놓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이 어딘지 모르게 갈라지고 있던 한국사회를 모처럼 통합하고, 많은 이들이 하나의 메시지에 귀 기울이도록 하는데 성공했다는 점만으로도 <기생충>의 성과는 단순히 영화 자체의 성공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좀 단순화하자면 진보적 성향이 뚜렷한 예술인과 보수의 상징적 키워드 중 하나인 거대자본이 만나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한껏 드높인 셈이다. 어쩌면 바로 이 지점이 한국교회가 주목할 부분이기도 하다.

봉준호 감독은 전작들에서와 마찬가지로 <기생충> 전반을 통해 빈부 격차, 소외와 단절이라는 문제의식을 강력하게 제기하며 기득권층의 허위의식을 드러냈다. 그렇다고 약자 혹은 빈곤층을 굳이 미화하거나 두둔하지도 않는다. 시대를 진중하게 고민하되, 특정이익에 편중하는 해답을 내놓는 대신 공동체로서 더 큰 ‘우리’라는 폭넓은 관점을 갖도록 의식을 확장시킨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유명 건축가가 지었다는 윗동네 호화주택에서, 침수로 온갖 세간살이가 둥둥 떠오르고 변기에서 시커먼 하수가 역류해 치솟아 오르는 반지하 셋방으로 쫓기듯 돌아와야 했던 기택 식구들의 멀고도 가파른 귀갓길은 영화의 상징적 장면이다. 사실 이들 양편에 벌어진 엄청난 간극을 좁히는 일이 한국교회가 마땅히 떠안아야 할 역할이었다.

대놓고 학력 위조 혹은 문서 위조 행위를 저지르면서도 “아버지! 저는 이게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당당히 말하는 청년실업자 기우나, 수치심을 느낄 상대편에 대한 일말의 배려도 없이 코를 킁킁거리며 “내가 원래 선을 넘는 사람들을 제일 싫어하는데”라고 중얼거리는 성공한 벤처사업가 동익의 대사에서 보여주는 극단적 이기주의와 도덕적 불감증 등도 사실 한국교회가 먼저 자성하며 경종을 울렸어야 할 우리 시대의 자화상들이다.

안타깝게 최근 각종 의식조사들은 더이상 한국교회에 이런 역할을 기대할 수 없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특정 계층이나 정파의 이익을 대변하는 세력, 종교를 가지지 않은 이들보다 더 심각한 부패와 도덕적 해이를 보여주는 성직자들, 앵무새처럼 예수를 되뇌지만 정작 본인이 예수처럼 살지는 않은 위선자들. 한국교회에는 이런 이미지가 새겨져버렸다.

봉준호의 영화 속 한국교회의 모습은 어떨까. 영화계에서 그와 쌍벽을 이루는 존재인 박찬욱 감독이 자신의 작품세계에서 ‘구원’이라는 주제에 천착하며 기독교적 색채를 지닌 장치들을 풍부하게 사용하는 것과 달리. 정작 가톨릭 신자로 알려진 봉준호 감독에게서는 그런 면모를 찾기 힘들다.

첫 장편 성공작인 <살인의 추억>에서 겉으로는 신실한 교회집사이지만 속으로는 변태적 성향을 떨치지 못해 나중에는 살인사건 용의자로까지 의심받는 조병순이라는 인물과 그를 무조건 두둔하며 경찰서 앞에서 석방시위를 벌이는 교인들이 등장하고, 봉 감독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가져다 준 영화 <괴물>에서 한강공원의 괴수 출몰로 희생된 이들의 합동분향소에 ‘대한예수교장로회’라는 글씨를 새긴 화환 하나가 놓인 정도가 고작이다.

<마더>에 등장하는 다운증후군 장애인 종팔은 기도원을 탈출해 사찰에 몸을 의탁하다 끝내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리는 설정이고, <설국열차>에서 메시아적 캐릭터로 나타난 커티스와 남궁민수는 사람들을 구하지 못하고 결국 자신들의 세계를 파괴해버리는 실패한 결말을 맞는다.

<기생충>에서는 물난리를 피해 체육관 신세를 지는 기택의 가족들 곁에서 성경책을 읽는 어느 중년여인의 모습이 배경처럼 등장했다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구원의 손길인 줄만 알았던 기우 친구 민혁의 과외교사 알선과 수석 선물은 처음에는 자신이 연모하는 소녀를 지키려는 극히 이기적 계산의 발로였고 최후에는 모든 이들의 파멸을 불러오는 불씨였다.

이상에서 봉 감독 역시도 한국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교회의 비중과 역할을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다. 그의 작품 속에 한국교회가 희망과 해답을 보여주는 존재로 등장하는 날이 과연 찾아올까. 응답의 여부는 앞으로 한국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자신들에게 남은 시간을 채우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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