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1. 일반계시의 불충분성

“본성의 빛과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사역은 사람이 핑계할 수 없을 만큼 그의 선, 지혜, 권능을 드러냄에도 불구하고 구원에 필요한 하나님과 그의 뜻에 관한 지식을 우리에게 충분히 줄 수 없다.”(1.1)

하나님은 인류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창 1:27) ‘생령’이 되게 하셨다(창 2:7). 칼빈이 말했듯이,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알 만한 지식’, ‘종교의 씨앗’, ‘양심’이 부여되었다. 이를 ‘본성의 빛’이라고 한다.

모든 사람들 ‘속에’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있다(롬 1:19). ‘양심’이 그 ‘증거’가 된다(롬 2:15). 하나님은 자기의 형상을 한 인류가 알고(知), 느끼고(情), 뜻하는(意) 가운데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길 원하셨다.

하나님은 누구나 만물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배하게끔, 천지의 모든 피조물에 자기의 ‘선, 지혜, 권능’을 드러내셨다. 그러므로 아무도 하나님을 모른다고 변명할 수 없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 1:20)

하나님을 거역한 타락한 인류는 아무도 스스로 하나님을 알 수 없게 되었다. 피조물은 그 자체로는 “하나님과 그의 뜻에 관한 지식을 우리에게 충분히 줄 수 없다.” 이 세상은 자기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전 1:21).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의 일을 받을 수 없다(고전 2:14).

그러므로 생각하면 안다고 하는 데카르트의 합리주의나 경험하면 안다고 하는 로크의 경험주의는 모두 그릇되다.

2. 계시를 문자로 기록하심

“그리하여 여호와는 수차 여러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계시하시고 교회를 향한 자기의 뜻을 현시하시며, 이후에는 자기의 진리를 더 잘 보존하시고 확산시키시며 육체의 부패와 세상과 사탄의 악의에 맞서 자기 교회를 더욱 확실한 토대에 세우고 위로를 더하기 위하여 문자로 전부 기록하기를 기뻐하셨다. 이렇듯 성경이 가장 필요한 것이 되자 한때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자기의 뜻을 계시하셨던 이전의 방식이 이제는 끝이 났다.”(1.1)

하나님은 스스로 자기를 계시하신다. 세상의 모든 과학적 지식은 인간이 발명하거나 발견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이 친히 주신다. 하나님이 알려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하나님을 알 수 없다. 하나님은 ‘수차례 여러 방식으로’ 자기를 계시하셨다. 옛날에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고(히 1:1), 마지막 때에는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다(히 1:2).

하나님은 계시를 ‘문자로 전부 기록하기를 기뻐하셨다.’ ‘성경’이라는 말 자체가 ‘기록된 것’이라는 뜻이다. ‘모든 성경’이 기록되었다(딤후 3:16). 하나님은 십계명을 두 돌판에 친히 쓰셨다(신 4;13). 모세와 모든 선지자는 오실 예수에 대한 것을 글로 기록하였다(눅 24:27). 사도 바울도 그가 받은 지혜대로 썼다(벧후 3:15).

하나님은 성경을 기록된 계시 즉 특별계시로 주셔서 자기 자신과 자기의 뜻을 드러내시고, 자기의 진리를 보존하시며, 교회를 그 말씀의 터 위에 세우시고, 성도의 구원을 온전하게 하신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성경의 계시는 이제 종결되었다. 성경은 완전하고 충족하다. 하나님은 성경으로 자기의 존재와 속성과 사역과 뜻을 계시하신다. 그러므로 칸트와 같이 하나님은 지각할 수 없으므로 알 수 없다고 하는 불가지론(不可知論)은 그릇되다. 그리스도인은 스스로 안다고 해서도 안 되고, 모른다고 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이 알려 주시면 안다고 해야 한다. 진정한 겸손이 여기에 있다. 우리는 여호와를 알기에 힘써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여호와가 친히 알려 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

3.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성경 곧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이름 하에 구약과 신약의 모든 책이 포함되니…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믿음과 삶의 규범으로 주어졌다. 통상 외경이라고 불리는 책들은 하나님의 영감에 속하지 않는 바, 결코 성경의 정경을 구성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에서 어떤 권위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저작과 다른 것으로 승인되거나 사용되지 않는다.”(1.2~3)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구약 39권과 신약 27권 66권만이 정경이다. 개혁교회의 기치(旗幟)인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는 ‘오직 기록된 성경으로’(sola Scriptura scripta)라는 뜻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다(딤후 3:6; 벧후 1:21). 이를 ‘영감’(inspiration)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친히 말씀하셨고, 그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다. 워필드는 이를 ‘계시 구술의 영감’과 ‘계시 기록의 영감’이라고 했다.

성경을 기록할 때 역사하신 성령과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역사하시는 성령은 동일하시다. 그러므로 성경은 한 진리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한 계시이다. 성령은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므로(고전 2:10), 성경을 통하여 모든 것을 알게 하신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가르치심과 말씀을 생각나게 하신다(요 14:26).

이 성경이 ‘믿음과 삶의 규범’이 된다. 성경은 듣고 믿어 구원에 이르게 하는 말씀이다. 복음이다(롬 1:16~17; 10:17). 곧 ‘믿음의 말씀’이다(롬 10:8). 또한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듭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생명의 말씀’이자 ‘생활의 말씀’이다. ‘살아남의 말씀’이자 ‘살아감의 말씀’이다. 모든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한다(딤후 3:16~17).

그러므로 66권 정경 외에는 모두 인간의 저술일 뿐이다. 로마가톨릭교회는 토빗, 지혜서, 집회서, 바룩, 마카비 상하를 외경(Apocrypha)이라고 해서 2차적 정경으로 받으나 이는 그릇되다.

사도와 선지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것 외에(엡 2:20) 무엇을 더하면 재앙을 더하는 것이다(계 22:18). 성경을 가볍게 여기거나 빼서도 안 되며 더해서도 안 된다(마 5:19; 계 22:19).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은 없기 때문이며, 그것을 전하면 저주가 있을 것이다(갈 1:6~9).

4. 성경의 권위

“우리가 성경을 믿고 순종해야 하는 권위는 어떤 사람이나 교회의 증언이 아니라 (진리 자체가 되시는) 그 저자이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달려있다. 성경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1.4)

성경의 권위(authority)는 그 저자(autor)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 있다. 하나님이 성경의 원 저자 혹은 일차적 저자이며, 사람은 이차적 저자이다.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전하는 것은 사람의 뜻에 따라서 된 것이 아니다(갈 1:11). 그것은 사람에게 받은 것도 아니고, 사람에게 배운 것도 아니다(갈 1:12). 성경의 권위는 그것을 기록한 사람에게나 교회에 있지 않다.

로마가톨릭교회는 교회에 성경 승인권과 성경 해석권을 부여하고, 교회의 권위 있는 승인으로 말미암아 성경에 권위가 있고, 교회의 권위 있는 해석으로 말미암아 성경이 고유한 의미를 갖게 된다고 하나, 이는 허구며 망상일 뿐이다.

성경의 권위는 그 무엇으로도 침해될 수 없다. 그 어떤 이론도 성경을 넘어설 수 없다. 철학은 성경을 넘어 설 수 없다. 철학은 성경을 보조할 뿐, 보충할 수 없다. 총회의 헌법이나 결의가 성경을 넘어설 수 없다.

그러므로 성경을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살전 2:13). 성경을 믿어 순종에 이르러야 한다(롬 1:5). 그때에만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로 칭찬받게 된다(살전 1:3).

성경은 인생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유일한 권위가 있다. 그 말씀이 사람을 살리고, 영생의 양식과 갈하지 않는 생수가 되며,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길을 지시하고 안위한다. 하나님은 믿음과 말씀을 선물로 주셔서, 우리가 말씀을 믿고 살아가게 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기에 힘써야 한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 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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