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건 목사의 제주교회이야기]

제주순례길을 걷는 여행자들을 보라색 리본과 물고기 모양의 표지들이 안내한다.
제주순례길을 걷는 여행자들을 보라색 리본과 물고기 모양의 표지들이 안내한다.

제주순례길이 조성된 것은 2012년의 일이다. 당시 개국 12주년을 맞은 제주CBS의 임경중 본부장의 제안으로 제주의 모든 개신교회가 교파를 초월해 머리를 맞댔다. 100년 동안의 제주교회사에 얽힌 이야깃거리를 저마다 찾아내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모은 결과 마침내 제주 서남부 일대를 아우르는 네 개의 기독교 순례코스를 만들었다.
제1코스인 ‘순종의 길’은 제주 사람들이 자생적으로 이룬 최초 신앙공동체인 금성교회에서 시작한다. 첫 기도처와 옛 예배당 그리고 금성교회를 함께 섬긴 조남수 선생과 이도종 목사의 생가 등 제주 기독교신앙의 뿌리가 되는 유적지들을 거쳐, 한림해안길을 따라 태평양전쟁과 4·3사태 당시 수난을 당한 한림교회와 협재교회까지 돌아보는 14.2km의 여정이다.
이어지는 제2코스는 ‘순교의 길’이다. 4·3사태로 예배당이 소실된 역사를 지닌 조수교회를 지나 순교자 이도종 목사의 자취를 따라가는 이 길에서 고인의 마지막 사역지이자 묘역이 조성되어있는 대정교회, 그리고 제주의 아픔과 상처를 평화에 대한 염원으로 승화시키는 평화박물관 등을 들르게 된다. 전체 23km로 전체 코스 중에서 가장 거리가 길다.
‘사명의 길’이라 명명한 제3코스에서는 제주선교 초창기 사역자들의 뜨거운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전염병의 공포를 뚫고 복음과 사랑을 전한 윤식명 목사의 이야기가 담긴 용수교회, 제주 출신 첫 목회자 이도종 목사의 사역자로서 사명과 자식 된 도리 사이의 고뇌를 느끼는 고산교회 등을 이 길에서 만난다. 올레길 13코스의 아름다운 풍광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제4코스 ‘화해의 길’은 이도종 목사의 무릉인향로 순교터에서 출발하여, 4·3사태로 자신의 목숨을 위협받고 아끼는 동료와 교우들까지 잃고서도 상대편 주민들의 구명을 위해 앞장섰던 조남수 목사의 공덕비 앞에서 멈춘다. 6·25 한국전쟁 당시 육군훈련소 장병들을 위해 세워진 강병대교회, 제주 교회 전체 역사를 망라한 기념관을 운영하는 모슬포교회도 이 코스에 포함된다.
제주CBS는 이후 5년 만에 제주 북동부 일대를 중심으로 마지막 5코스를 개발해 제주순례길을 완성했다. ‘은혜의 첫 길’이라 명명한 이 코스에는 8km의 짧은 거리에 제주 첫 선교사 이기풍 목사가 세운 성내교회, 동부교회와 제주 최초의 유치원인 중앙유치원,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NGO인 제주YMCA 회관, 사라봉공원의 조남수 선생 기념비, 6·25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개척한 제주영락교회와 배형규 목사 순교기념비 등 인상적인 유적들이 꼭꼭 채워져 있다.
보라색 리본을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이어지는 각 코스마다 안내판이 세워져 관람객들에게 친절하게 정보를 제공하며, 스마트폰을 이용해 더 상세한 안내를 받을 수도 있다. 제주에는 올레길 뿐 아니라 순례길도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고, 잠시나마 이 길을 따라 걷고 묵상하며 신앙의 도전을 받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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