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조롱받는 교회, ‘부르심 받은 존재’로 인식하고 실천해야

‘교회다움’의 회복은 절박한 과제다

한국교회를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있다. 100년만의 부흥, 세계 최대 예배당, 새벽기도의 영성, 열정적인 헌신과 세계선교 등 화려한 수식어가 현혹시킨다. 하지만 외모의 화려함 속에 내면은 썩어가고 있다. 성장이라는 세속주의가 교회를 지배하고, 교인은 많지만 참된 그리스도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명예욕으로 교회연합은 이전투구의 장이 되고, 분쟁과 갈등으로 공교회의 정신은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이런 가운데 세상은 목회자의 일탈과 성도들의 신행불일치를 조롱한다.
교회를 ‘지상의 하나님 나라’ 또는 ‘천국의 모형’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통치도 잃어버리고, 거룩성도 상실했다. 따라서 한국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은 ‘교회다움’이며, ‘거룩성’이다. 교회성장연구소가 지난해 전국 50개 교회 청·장년 성도 336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한국교회가 해결해야할 가장 시급한 문제로 ‘교회다움·목사다움·성도다움’(32.1%)을 꼽았다. 이어 영성·예배·전도 회복(12.0%), 세속화(6.6%), 본질(6.6%), 하나됨(6.3%) 순이었다. 결국 한국교회가 회복되려면 교회는 교회다워야 하고, 목회자와 성도는 부르심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편집자 주>

교회는 사회사업을 하는 기관이 아니다. 반대로 개인 구원만 추구하는 수도원도 아니다. 교회는 내부적으로 십자가의 영성을 추구하고, 외부로는 평화의 복음을 선포하는 이땅의 하나님 나라다.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사고에서 기독교인들이 자원봉사를 펼치고 있는 모습이나(위), 2007년 평양대부흥 100주년 기념대회에서 참석자들의 회개 기도(중간), 2005년 양양산불 구호활동(아래) 모두 ‘교회다움’의 일환이다.
교회는 사회사업을 하는 기관이 아니다. 반대로 개인 구원만 추구하는 수도원도 아니다. 교회는 내부적으로 십자가의 영성을 추구하고, 외부로는 평화의 복음을 선포하는 이땅의 하나님 나라다.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사고에서 기독교인들이 자원봉사를 펼치고 있는 모습이나(위), 2007년 평양대부흥 100주년 기념대회에서 참석자들의 회개 기도(중간), 2005년 양양산불 구호활동(아래) 모두 ‘교회다움’의 일환이다.

회개·십자가 영성으로 회복해야 할 교회

“저는 사데교회를 보면서 오늘의 한국교회를 보는 것 같다는 불안을 감출 수 없습니다.”
2007년 7월 8일 평양대부흥 100주년 기념대회에서 설교자로 나선 고 옥한흠 목사의 일성이다. 5만이 넘는 교회, 1000만이 넘는 성도, 세계 제일의 교회 등 자랑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닌 한국교회를 향해 ‘죽은 교회’라는 주님의 회초리가 아직도 따갑다.

한국교회의 죽음은 어디에서 시작했을까? 당시 옥한흠 목사는 “교회 지도자가 복음을 변질시켰다”고 지적했다. 강단의 변질은 성도들의 삶을 죽음으로 이끌고, 결과적으로 세상에게 짓밟히게 된다. “교회가 짠 맛을 잃으면 우리보다 더 악한 세상 사람들의 발에 짓밟히도록 내던지는 것이 주님의 징계요 심판입니다.”

한국교회의 소생과 회복은 ‘회개’에서 시작한다. “주님은 행위가 죽은 사데교회를 향해 회개하라고 엄히 명하십니다. 회개만이 살 길이라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를 향해서도 똑같은 명령을 하고 계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인간은 철저히 악하기 때문에 회개할 능력이 없다. 따라서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회개해야 한다. 그러기에 옥 목사는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를 하고 세상 앞에 새 옷을 갈아입으려면 성령께서 회개할 힘을 우리에게 주셔야 한다”고 강조했다.

옥한흠 목사는 회개의 주체는 ‘당신’이 아닌 ‘나’임을 역설했다. 그래서 설교 후 두 손을 들고 “거룩하신 주여, 이놈이 죄인입니다. 행위가 죽어버린 한국교회를 만든 장본인입니다”라고 통곡의 기도를 올렸다.

한국교회의 회복은 교회론의 회복과 일맥상통한다. 옥한흠 목사는 2002년 8월 21일 교회갱신협의회 영성수련회에서 한국교회의 변질을 지적하면서 교회론을 회복하자고 권면했다.

그가 지적한 교회론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다. 즉 십자가의 영성을 회복해야 변질됐던 한국교회가 다시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변질된 우리 자신을 십자가 앞에서 다시 보아야 합니다. 바울의 십자가의 영성으로 우리가 눈을 돌려야 합니다.”

교회다움의 회복은 결국 회개로 시작해 십자가의 영성을 되찾는 것이다. 화려한 예배당도, 프로그램도, 성장도 아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예수만 남는 것이다.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구현하는 교회

2015년에 실시한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우리나라 통계 역사상 처음으로 비종교인구가 종교인구를 앞질렀다. 탈종교화 시대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를 포함해 국내 모든 종교는 교세감소와 더불어 젊은층 급감으로 근심이 큰 상황이다. 종교인구 감소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결과다.

종교에서 종교다움을 발견하지 못하면 굳이 종교를 택할 이유가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폭을 좁혀 교회는 어떻게 교회다움을 지역사회와 주민들에게 느끼게 할 수 있을까. 교회를 개척해 소위 건물 중심의 전통교회에서 지역사회 공동체 일원이 되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포하는 교회로 탈바꿈한 분당 성음교회 허대광 목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허 목사는 “구원의 능력이 개인의 구원 관점에서만 지나치게 강조되다보니 세상과 세상문화를 적대시 내지는 정복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현상이 지배했다. 그래서 세상에 대한 복음과 교회의 영향력이 현저히 줄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며 이 세상도 회복되어야할 하나님 나라로, 교회는 하나님 나라 회복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존재로 인식하고 실천할 때 진정한 복음의 능력이 드러난다”고 강조했다.

허대광 목사는 교회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지역 현안을 풀어내는 상인회 회장으로 기꺼이 지역사회 깊숙한 곳에서 선교적 삶을 실천하고 있다. 기독교인이, 교회가 어떠해야 하는지 허 목사의 삶에서 방향성을 읽을 수 있다. 허 목사는 “우리가 친절을 베풀었다 하더라도 그들이 친절이라 생각하지 않으면 진정한 친절일까 생각해보면 쉽다”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본받아 세워가는 공동체라는 명제가 마땅하다면, 세상과 나를 위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따라 겸손하게 다가가 그들의 눈높이에서 사랑의 하나님을 선포하며 하나님 나라를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표현방식은 달라도 세상 속의 교회는 세상이 느낄 수 있도록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진정성 있게 알리는 모습을 회복해야한다는 의미다.

공교회로서 정체성 회복해야할 총회

교회다움의 회복을 말하면서 총회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공교회로서 총회는 수많은 교회의 집합체이다. 교회의 면면이 총회의 성격을 규정하고, 총회가 추구하는 방향성은 교회의 얼굴이 된다. 따라서 총회와 산하 교회는 별개의 것이 아닌 하나의 생태계에서 공존공생하는 관계다.

총회의 존재 이유는 두말할 나위 없이 교단의 신학과 신앙을 수호하고, 같은 신앙 정체성을 가진 교회를 보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 대부분의 총회는 정치화로 변질되어 거룩성을 상실한지 오래고, 교회를 보호할 총회가 교회를 힘들게 하는 모순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공교회성이 무너진 현실에서 총회 본연의 기능과 역할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어떤 회복이 필요할까. 부총회장 소강석 목사는 ‘의식전환’과 ‘역사의 초심 기억’을 강조한다. 소강석 부총회장은 “과거에는 교회 생태계를 허무는 공격이나 문화와 사상적 공격이 없다보니 내부에만 집중하는 현상이 짙었다”며 “복음의 가치를 허물고 교회를 향한 공격이 파상적인 지금은 공적 교회와 공적 사역에 대한 의식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교회가 무너지면 우리 교단도 무너진다는 교회생태계적 사상을 알고 총회를 세워가야 한다는 말이다.

이어 소강석 목사는 역사의 초심 회복을 주문했다. 그는 “신학이 정치를 이끌었던 초심을 잃어버려 정치가 신학을 이끌게 되다보니 부정적 인식이 구성원들 뇌리에 각인되어 버렸다. 정치와 이념이 신앙과 복음을 눌러버리니 성총회가 아니라 충돌과 갈등이 비일비재하게 되어 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신앙과 신학이 정치를 억제하고 조절하는 총회가 될 때, 순기능을 발휘하는 공교회로서 총회가 된다는 지적은 지극히 당연하다. 총회가 바로 설 때 갖은 도전 앞에 놓인 교회는 회복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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