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국원 교수(총신대 명예)

신국원 교수(총신대 명예)
신국원 교수(총신대 명예)

2020년 새해가 밝았지만 국가와 사회는 분열되어 혼란합니다. 이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오래 전 이야기가 새삼 떠오릅니다. “난 여기서 죽으면 순교로 생각할 것이다. 내 염려 말고 너희도 바로 살아라.” 민주화 투쟁을 하다가 10년 징역을 선고받은 교회 친구의 말이었지요. 필자가 기독교 세계관 공부를 하고 실천하는 운동을 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그 친구가 하는 정치운동을 신학도가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지요.

정치에 직접 뛰어드는 것이 긴박한 현실에 참여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플라톤의 생각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는 아테네의 정치계에 나설 것으로 기대되던 청년이었지요. 하지만 그는 스승 소크라테스처럼 철학자가 됩니다. 그리고 정치가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교과서인 <국가>라는 책을 썼습니다. ‘아카데미’를 통해 많은 젊은이들을 교육했지요. 저술과 교육도 정치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목회자도 현실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책임 있는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꼭 필요하면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시위를 비롯해서 법적 투쟁도 해야겠지요. 하지만 그것이 전부이거나 가장 중요한 것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목회가 가장 강력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실제 사례가 있습니다. 요한 칼빈과 아브라함 카이퍼입니다. 칼빈은 설교로 교회를 개혁했고 글을 통해 당대의 유럽 사회문화 전체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카이퍼는 직접 정치를 했지만 교회를 동원한 것은 아닙니다. 그 역시 기독교 언론과 교육을 통해서 네덜란드를 넘어 세계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들의 영향력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카이퍼가 주창한 개혁주의의 사회원리 가운데 영역주권사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삶의 여러 영역을 두시고 각기 고유한 임무와 주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국가엔 정의와 화평을 위한 정치적 권력을 주시고, 교회에는 영적 권세를 주셨고요. 영역주권사상은 창조 원리에 기초하고 있어 정교분리보다 훨씬 깊은 진리입니다. 이에 따르면 교회는 정치가 아니라 영적 전쟁을 해야 합니다. 문화이론가의 말을 빌리면 영적 전쟁은 군중을 길거리에 동원해 세몰이 하는 기동전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회문화에 깊이 파고드는 진지전입니다.

목회자가 서있어야 할 곳은 교회이지요. 그러나 교회가 전쟁터를 만들거나, 교회를 전장으로 끌고 가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교회를 시청 앞이든 광화문이든 공적 광장으로 옮겨서 기동전을 하는 것은 더욱 그렇습니다. 전략을 바꿔야 합니다. 교회의 목표는 문화전쟁이 아니라 영혼을 구원하는 영적 전투를 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이를 위해 성도들을 훈련시켜 세상으로 보내어 전선을 언론, 교육, 문화, 예술, 경제, 사회 전방위로 다변화해야 합니다. 카이퍼도 교회의 역할을 영적 전쟁의 진지로 보았습니다.

필자는 교회가 바로 서야 나라도 소망이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모두가 염려 대신 기도하고, 각자 부르신 곳에서 진실하게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것이 애국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면 너무 상투적인 답일까요?

새해에는 주님께서 교회가 다시 사회의 신뢰와 존경을 회복해, 이 땅에 정의와 화평이 가득하게 되는 일에 사용해주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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