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호 총장(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박원호 총장(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박원호 총장(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으로, 한국 기독교에 있어서 소중한 해였다. 필자 역시 어려서부터 <독립선언서>를 만든 민족대표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인이며,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데 교회의 역할이 컸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3·1절 기념예배’를 지키며 자랑스럽게 여겨왔다.

이러한 자부심은 기독교가 이 땅에서 자리도 잡지 못했던 그 시기에 민족의 운명을 책임졌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신앙을 갖는다는 것이 바로 애국하는 것을 의미했고, 교회를 다닌다는 것은 만세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관순 열사는 천안에서 예수 믿는 집안의 딸이었다. 1919년 4월 1일 병천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을 유관순의 가족이 앞장을 섰고, 그날 열사의 부모는 모두 일경의 총칼에 순국했다. 이것이 당시 기독교의 현실이었기에 우리는 오늘날까지도 3·1운동을 기독교가 이 나라에서 공헌한 가장 큰 일로 여기고 있는 것이며, 이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2019년을 돌아보면 한국교회 100년의 자부심이었던 3·1운동에 대한 기념이 적었던 것은 못내 아쉽다. 교계에서 이에 대한 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정부가 나서서 했던 행사들도 많았고 기념하고자 하는 일들도 많았다. 그러나 주체가 되었어야 했던 교회가 오히려 소홀히 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교회가 이 나라의 역사에 얼마나 중요한 일을 했던가를 드러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친 것 같아 아쉽다.

더 아쉬운 것은 교회가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을 잃어버린 결과가 아닌가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예수 믿는 것을 바로 나라를 구하는 일로 여겼다. 그것은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애굽의 압제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여 내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었다. 강대국인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민족을 잊지 않으시고, 자신의 백성을 홍해 바다를 갈라 구원하셨다는 것을 믿었다. 이 믿음이 비폭력 저항운동이라는 극단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선배들을 3·1운동의 대열에 앞장서도록 만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3·1운동이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결과라는 것이다. 불같은 성령의 역사를 경험한 기독교인들이 진정한 삶의 회개를 하고 신앙인으로 살기로 결단한 결과가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것이었다. 개인구원과 내세신앙에서 멈춘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역사 가운데 찾아오시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시대에 헌신한 것이었다. 비록 당시에는 하나님 나라라는 신학적 명료함은 없었는지 몰라도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은 백성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았다. 바로 애국운동에 헌신한 것이었다.

올해 우리가 3·1운동을 올바르게 경험해 내지 못한 것은 결국 이러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 역사로 찾아오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 결과라고 본다. 그래서 더 안타깝고 아쉬울 뿐이다.

2020년은 한국교회의 분수령이 될 것 같다. 현재 산적해 있는 교계의 이슈들이 이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 총회에서 각 교단들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 교인수를 보고했다. 한국교회를 향한 사회적 불신이 교세 감소로 드러난 결과이다. 안타까운 것은 교회들이 이런 상황에서 점점 위축되고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100년 전 가졌던 교회의 역사의식은 사라지고 엉뚱한 일만 벌이고 있다. 100년 전 받았던 사회의 존경은 사라지고 손가락질만 받고 있다. 그런데도 안하무인의 교계 지도자들이 난무하여 사회로부터 욕을 벌고 있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은 100년 전이나 오늘이나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 기댄 희생과 섬김이다. 결코 우리의 언어가 폭력과 칼이 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과 정의로 임하기 때문이다. 2020년은 한국교회가 사랑과 정의를 드러내어 사회에서 신뢰를 얻고 하나님 나라의 주역이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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