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걸 목사(필라델피아영생장로교회 원로)

하나님 영광을 위해 믿음으로 정직하게 달려갑시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을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 3:13~14)

이용걸 목사(필라델피아영생장로교회 원로)
이용걸 목사(필라델피아영생장로교회 원로)

전도서를 보면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성도는 시작이 중요하지만, 마지막은 더욱 중요합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가나 혼인집에서 보는 것처럼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아야 합니다. 새해가 귀하다면, 송년은 영광스러워야 합니다. 우리는 분명히 한번 가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직선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잘 알기 때문에 일생을 경주자와 같이 살았습니다. 우리가 경주자와 같이 시간을 잘 사용한다면, 얼마나 많은 주의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돌이켜보면 흘러간 시간이 아쉬울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2019년 한 해도 열심히 뛰면서 살았는데, 과연 바울처럼 상을 받는 경주였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다윗 왕의 아들 압살롬이 군대를 이끌고 피난 가 있는 아버지 다윗을 죽이려고 할 때에 요압 장군이 전쟁을 하게 됩니다. 이 전쟁에서 결국 압살롬은 죽고 패전합니다. 그 승리의 소식을 다윗 왕에게 전하려고 할 때입니다.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내가 전하겠다”고 할 때에 요압은 “너는 가지 말라. 이 소식을 전하므로 너는 상을 얻지 못하리라” 하고 구스 사람을 보냅니다. 아히마아스는 계속 간청하여 허락을 받고, 구스 사람보다 먼저 도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달려갔습니다.

다윗 왕은 아히마아스가 달려온다는 파수꾼의 보고를 듣고, “그는 좋은 사람이니까 좋은 소식을 가져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 아들 압살롬이 잘 있느냐”고 다윗 왕이 물었을 때에, 그는 죽었다고 대답할 수가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고 했고, 이에 왕은 그에게 “물러가 있으라”고 책망했습니다.(삼하 18장)

여러분의 삶의 경주가 사도 바울의 경주입니까? 아히마아스의 경주입니까? 언젠가 왕의 왕이신 하나님 앞에 서야하는데 부끄러운 경주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달려갈 길을 다가고 믿음을 지키고 “나는 상을 받게 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마음의 결단’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상고하겠습니다.

1. 과거는 잊어버려야 합니다.

본문 13절에서 “오직 한 일 즉 뒤에 것은 잊어버리고”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두뇌는 기억하는 것과 잊어버리는 것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노인이 되면 잘 잊어버리고, 아이들은 잘 기억한다고 합니다만, 사실은 오랜 삶을 사는 동안 기억할 일이 많기 때문에 이전의 일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2019년. 이 한 해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한 해를 살면서 잘한 것도 있고, 잘하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잘한 것에 집착하면 자랑이 되고 교만하게 됩니다. 반대로 잘하지 못한 것에 집착하게 되면 올무가 되고 장애물이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날 때에 기쁨이 있었고,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을 때에는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까? 과거의 애굽 생활에 대한 기억과 영향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에 감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집착하면 현재를 잃어버리고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의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라고 하나님이 약속하였습니다.(사 43:18~19)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맙시다.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맙시다.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다 죄인이요, 다 허물이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새 일을 행하실 것을 믿고 소망 중에 삽시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눅 9:62) 지난 과거를 잊어버리고 영향을 받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만 기억하고 삽시다.

2. 현재 최선을 다합시다.

12절에 “내가 이미 얻었다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던 중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이후 ‘오직 주님’, ‘오직 복음’을 위하여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럼에도 사도 바울은 이미 얻은 것도 아니고 이루어진 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다만 내세의 상급을 위하여 계속 달려갔습니다. 그에게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어도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다 마치기 위해 그는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행 20:24) 그는 그의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해 수고한다고 하였습니다.(골 1:29)

성도 여러분!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닙니다.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게 하는 믿음을 가진 자임을 기억합시다.(히 10:37~39)

어느날 바리새인이 예수님께 와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려고 하니 빨리 피하라고 할 때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과 내일은 귀신을 내어 쫓고 병자를 고치다가 삼일에는 내 갈 길을 가리라”고 하셨습니다.(눅 13:32~33) 생명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헤롯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실 일을 하셨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18세에 고향 스웨덴을 떠나 미국으로 온 휴 에런슨(Hugh Aronson)은 직업도 없고 발붙일 곳이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미국 서부로 가기 위하여 화물열차에 무임승차했습니다. 기차를 타고 가다가 승무원에게 발각되어 매를 맞고 몬태나주 콜럼버스에 내렸습니다. 그는 처량한 모습으로 옐로우스톤 강가에 앉아, 고향으로 돌아갈까 생각하는 중에 사도 바울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뒤에 것은 잊어버리고 앞의 것을 잡으려고 좇아간다”는 말씀에 힘을 얻고, 그는 자신에게 “최선을 다 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떨어진 이 땅 몬태나에서 최선을 다해보자”고 결심하였습니다. 30년 후에 그는 주지사가 되었고, 미국 역사에 남는 훌륭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백번의 법칙’을 알고 계십니까. 거머리가 몸에 달라붙었을 때에 전류를 보내면 떨어집니다. 그러나 다시 붙습니다. 이렇게 100번을 반복했을 때 거머리는 그제야 학습이 되어 다시는 붙지 않는다는 말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사람도 무엇이든지 100번을 하면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고, 그분 면전에서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3. 미래를 향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14절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간다”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삶의 목표가 달라진 것은 자기의 의지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잡힌 바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구원의 확신과 내세의 소망이 분명하면 삶의 목표가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롬 14:8)

사람의 일생을 보면 무엇인가를 위해 살고, 또 무엇인가를 위해 죽습니다. 마르틴 루터 킹 목사님은 “나는 언젠가 조지아의 붉은 언덕에서 그 옛날 노예의 후손과 노예를 부리던 사람들의 후손이 형제우애를 나누며 한 식탁에서 함께 하는 것이 나의 삶의 목표요 꿈”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 어린 네 명의 아이들이 피부색으로 구별되는 나라가 아니라 그들이 품고 있는 인격으로 인정받는 그런 나라에서 사는 날이 오리라는 꿈을 가지고 산다”고 했습니다. 그분의 삶의 목표가 이루어졌습니다. 미국에 흑인 대통령이 나왔고, 각 지역과 각 분야에서 백인과 흑인이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미래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부자 되는 것입니까? 사업에 성공하는 것입니까? 자녀의 성공입니까? 쾌락을 누리는 것입니까? 이 모든 것은 죽음과 동시에 없어지는 것들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적이 나타날 때에 다 불에 타 없어질 것입니다.(고전 3:12~15) 사람의 일생은 공적을 쌓는 것입니다. 불에 타 없어지는 것은 이 세상 사람들의 추구하는 모든 것입니다. 그러나 불에 타지 않는 공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입니다.

우리는 올 한 해도 바쁘게 달려왔습니다. 이렇게 달릴 때에 중요한 것은 속도보다는 방향입니다. 새해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로 삼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모세야, 내가 친히 너와 함께 가리라. 내가 너를 편케 하리라.(출 33:14) 내가 세상 끝날 때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이 하나님의 약속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지나온 과거는 잊어버리고, 새해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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