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만호 목사(군산드림교회)

최고의 기쁨과 경배로 영광 돌리는 하나님 자녀됩시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마 2:11)

임만호 목사(군산드림교회)
임만호 목사(군산드림교회)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 중에 하나가 편협함입니다. 사고의 편협함을 비롯하여 독서도 그렇고, 목회정책도 그렇습니다. 종합적이고 균형적인 사고가 필요합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선교에 올인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재정의 80퍼센트를 선교에 지출하니 대단한 겁니다. 그런데 그 교회 후임으로 부임한 담임목사가 고민에 빠진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도 선교지에서 오랫동안 사역하다가 담임으로 부임한 자로서 누구보다도 선교 열정이 많은데, 당회로부터 교인에 이르기까지 선교 외에는 도무지 관심이나 협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라는 자부심을 갖고 헌신하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선교 외에는 관심이 없고, 그 어떤 투자에도 부정적이라는 것입니다. 담임목회를 하다 보면 필요한 요소가 선교 하나만이 아니라 주일학교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가 함께 세워져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기에, 저에게 집회를 통하여 교인들이 의식전환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가보니 아이들이 예배드리는 교육공간에 전관방송 수준의 스피커와 마이크 하나만 달랑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시설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교사훈련과 교육기자재 등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 교회에 출석하는 아이들이 과연 “우리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라는 자긍심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겠는가라는 반문이 들었습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다행스럽게도 집회 후 그 교회가 다음세대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가 있습니다. 다가오는 성탄절을 앞두고 다음세대들에게 성탄의 의미와 추억을 듬뿍 담아주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이야기는 담임목사가 고민을 말한 것이라면, 이번에는 어느 교회 성도가 말한 내용을 나누고자 합니다.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의 담임목사가 성탄절이 다가와도 일절 성탄 장식을 못하게 한다는 겁니다. 이유는 아기 예수가 오신 의미가 중요한 것이지, 성탄 장식은 하나의 겉치레에 불과하다는 논지였습니다.

과연 성탄 장식은 겉치레일 뿐입니까? 물론 베들레헴에 아기 예수님이 나셨을 때, 베들레헴 사람들이 축하장식을 만들었다든지, 공연단을 만들어 축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축하를 받으려면 당시 헤롯왕의 왕자 정도로 출생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아기 예수가 나시던 밤이 거룩한 밤이었지, ‘거북’한 밤이거나 결코 정적에 쌓인 ‘적막’한 밤은 아니었습니다.

누가복음 2장 13~14절의 말씀처럼, 수많은 천군천사가 아기 예수의 나심을 기뻐하며 찬송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천사들이 불렀던 찬양이며 주제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 아기 예수가 누우신 곳을 찾아가 엎드려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습니다.(11절) 세상 사람들은 메시아가 탄생하는 것을 모르니까 고요했지만, 하늘에서는 천군천사가, 땅에서는 그의 오심을 기뻐하는 자들이 경배와 영광을 돌렸던 것입니다.

필자의 유년시절 주일학교에서는 11월이 되면 일찌감치 성탄축하행사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지금처럼 성탄트리가 상품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소나무를 옮겨다 세우고 동방박사들이 따라온 별과 십자가는 물론, 사슴이나 낙타까지 만들어 장식했습니다. 성극과 연주와 합창 준비를 위해 매일 밤 모였습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선물교환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자정쯤 교회에서 끓여준 떡국을 먹고 팀을 나누어 새벽송을 나갔습니다. 이때 흰 눈이라도 펑펑 내려 산과 들을 뒤덮은 화이트크리스마스라도 되면, 그 해 성탄절은 글자 그대로 환희와 감동으로 뒤덮이곤 했습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성탄절의 추억입니다.

자!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상업화와 함께 성탄절을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점거해버렸습니다. 거리마다 산타 할아버지를 장식하고 ‘징글벨’을 울려댔습니다. 그에 대한 반작용이었을까요? 성탄절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지 산타크로스 할아버지가 아니라는 말을 하면서 교회는 조용해졌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정부에서 ‘성탄절은 가족과 함께, 검소하게, 조용하게!’라는 캠페인을 하면서부터 성탄절은 그저 하루 쉬는 날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도 대부분이 조용하게 성탄축하예배만 드리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요즘 교회 밖의 아이들은 차치하고라도, 교회에 다니는 아이들조차 성탄절에 대하여 물어보면 뭐라고 말할까요? 예수님의 탄생은 인류의 구원주로 오심이기에 더 없는 기쁨이라고 말하거나, 아니면 나의 유년시절 해맑은 추억과 같은 재밌는 기억이 있느냐 말입니다. 그야말로 세상의 변화와 시류 속에서 이도저도 아닌 모습으로 속절없이 당한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은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냐는 겁니다. 여러분의 품 안에 있는 아이들에게 물어보십시오.

다음세대에게 만왕의 왕이 오신 축복의 날을 기뻐 경배하며 기억하도록 하십시다.

성탄절은 인류에게 구원과 생명을 주러 오신 구세주가 나신 날입니다. 왜 교회가 잠잠해야 하고, 성탄트리에 불 밝히는 것이 마치 범죄행위라도 되는 것처럼 움츠려야 합니까? 어떤 이들은 절전을 얘기합니다. 하지만 유흥가가 일 년 열두 달 대낮처럼 불을 밝히는 것은 당연시 여기면서, 불과 며칠 동안 성탄 장식으로 불 밝히는 것을 낭비와 겉치레로 폄하하며 탓하는 것은 온당한 것일까요?

마음의 불을 밝힙시다. 주의 오심을 기뻐하는 마음의 등불을 밝히고 경배하며 찬양합시다. 특히 아름다운 꿈과 추억을 간직하고 자라는 게 좋은 다음세대에게 어려서부터 대주재이신 하나님께서 대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음을(행 4:24~30) 가르칠 뿐만 아니라, 기뻐 경배하며 큰 추억을 갖게 하는 성탄절이 되도록 하십시다.

큰 기쁨으로 만왕의 왕을 맞이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도록 하십시다.

본문에는 두 명의 왕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유대 땅을 통치하던 왕 헤롯입니다. 또 하나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십니다. 동방으로부터 별을 따라왔던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실 이가 어디 계시냐고 묻게 되자 소동이 일어납니다. 그때에 헤롯 왕이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물으니까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네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6절) 그러자 헤롯은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경배하게 하라고 합니다.(8절) 박사들은 별을 따라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 것을 보고(9절),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면서(10절), 집에 들어가 경배하며 예물을 드렸습니다.(11절)

이와 대조적으로 예루살렘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를 않았습니다. 사실은 자기 백성에게 약속하신 메시아가 탄생했기에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보다도 더욱 기뻐하며 경배를 드렸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베들레헴으로 달려가지도 않았으며 경배하지도 않았습니다. 모두가 불안해하며 소동만 쳤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진정으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크게 기뻐하며 경배합니까? 아니면 헤롯 왕과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예루살렘 사람들처럼 자기자리의 보위와 세상 염려만 하면서 앉아있지는 않는지요?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고의 기쁨과 경배로 영광을 돌려드려야 마땅한 것입니다.

또한 이토록 큰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기를 결단하는 성탄절이 되어야 합니다. 동방 박사들은 아기 예수를 만나 경배한 후에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왕의 명령을 거스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꿈의 지시대로 순종하여 다른 길로 돌아갔습니다.(12절) 주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이십니다. 때문에 주님께 순종하며 나아가는 자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금년 성탄절에도 이 땅의 다음세대가 이 복되고도 아름다운 은총을 듬뿍 맛보며 누리도록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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