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이 우리 사회 화두로 자리 잡았다. 가난하거나 좀 뒤처져도 공정함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견뎌낼 수 있다. 공정한 사회에서는 노력한 만큼 얻고, 살아온 만큼 대접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입시든, 취업이든 공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오늘의 우리 사회는 참 불행하다. 이런 세상에서 정의를 실천하고 공의를 세우는 책임이 우리 교회에 있다.

그러나 과연 교회는 공정한가? 국내 최대 교단인 우리는 공정한가? 그 공정성에 의심을 불러일으켜 온, 그래서 오래 동안 떠도는 추문 중 하나가 재판이다. 교단 내부의 온갖 다툼을 공정하게 판단해야 할 재판국에 대한 신뢰도는 얼마나 될까?

다행스러운 것은 지난 11월 새롭게 구성된 재판국이 워크숍을 통해 공정하고 성실한 자세로 업무에 임하여 면모를 일신하겠다고 선언했다. 재판국장이 제시한 ‘사무엘의 본’을 모든 국원들이 뒤따르겠다며 임기를 끝내는 날에 아름다운 족적을 남길 것도 다짐했다.

그 자리에 함께 한 총회장도 재판국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이 좋지 않았었다는 것을 상기시키기면서 ‘신뢰받는 재판국’이 될 것을 당부하셨다. 총회장도 그리고 재판국장도 회기 시작과 함께 이런 당연한 의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하였으니 최소한 이 부분에서의 공정함은 굳게 세워 주리라 믿는다.

그것을 위해 다른 어떤 것보다 이미 잘 알고 있는 하나님의 명령을 되씹어야 할 것이다. 그 분께서는 3500년 전에도 불의한 재판이 일어날 것을 아셨기에 출애굽 이스라엘에게 공의로운 재판을 명하셨다. 또 오늘에도 일어나는 친소관계나 뇌물로 인한 불공정 재판이 끊이지 않았기에 시편과 잠언에서도 다시 공정 재판을 언급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시며 억울함을 바로 잡는 과부의 재판장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 하나님을 섬기는 교단에서 잠언의 말씀처럼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하는 일은 없었는지 묻고 싶다. 오랜 기간 재판을 지켜보면 총회에서 뒤집히거나 사법에서 뒤집히는 일들이 있었던 것은 우리 총회가 공정함을 지켜내지 못한 국면이 있었음을 대변하는 일은 아닐까?

공정함을 담보할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재판이 오랜 믿음의 경륜을 가진 인사들의 몫임을 감안한다면 제도나 법보다 믿음이요, 양심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믿는 사람들’로 인해 실망을 하곤 한다. 목사요, 장로라면 믿을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한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104회기 재판국은 그 굳은 다짐대로 부디 공정한 흔적을 남기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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