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설교①] 나눔의 실천으로 신뢰를 낳도록 하자(행 2:43~47)
[성탄설교①] 나눔의 실천으로 신뢰를 낳도록 하자(행 2:43~47)
  • 기독신문
  • 승인 2019.12.03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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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만호 목사(군산드림교회)

머물러 있지 말고 믿음으로 행하며 섬김에 더 앞장섭시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 2:47)

임만호 목사(군산드림교회)
임만호 목사(군산드림교회)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과 영생과 같은 메시지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 필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토록 깊고 넓은 진리를 바로 알고 적용할 때는 이보다 귀하고 확실한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이해로 인해 본질에서 벗어나 왜곡된 적용을 할 때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기도 합니다. 성경이 문제가 아니라, 보고 읽고 해석하여 적용하는 사람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를테면 유대인이었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가정에서 태어난 칼 마르크스가 본문에서 힌트를 얻어 공산주의 이론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가 보여준 모습은 공산주의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재산을 공유한 것은 자유롭고 자발적인 헌신에서 나온 것이지, 법적이거나 정치적인 강압에 의해서 재산을 몰수하거나 매각을 강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모든 사람의 재산이 평등한 것도 아니었으며(행 6:1, 11:29), 사유 재산이 인정된 사회였습니다.(행 5:4)

초대교회 성도들은 은혜를 받고 성령 충만하여 변화되어, 본문에 나타난 것과 같은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본문은 그야말로 제대로 은혜 받아 변화된 삶의 여러 가지 요소를 보여주기에, 오늘날 우리가 본받아 행해야 할 것들입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인 예배, 교제, 양육, 사역, 증거 등은 오늘도 여전히 건강한 교회와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필수 요소입니다. 또한 이러한 요소들은 균형과 조화가 이루어져야합니다.

교회를 담임하는 목회자가 선교를 전공했다고 선교만 지향하거나, 교육을 전공했다고 교육만 지향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개척교회든 대형교회든 규모와 상관없이 성도는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에서 온전한 예배를 드리며 은혜를 받아야 할 것이고, 참된 교제를 통하여 소통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성경공부를 통하여 양육되고 성숙해야 할 것이고, 각양 은사를 따라 섬김으로 사명을 성취할 것이며,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나라 확장에 동참해야 하는 것입니다. 건강한 신앙생활을 성취하려면 이 모든 요소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합니다.

이번 설교에서는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본문 44절, 45절입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

구원은 개인적이지만 구원 받은 자의 삶은 공동체적입니다.

구원 받는 것은 개인이 주님을 영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구원 받은 자의 삶은 철저히 공동체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개인적’이란 말은 유효하지만, ‘개인주의’는 철저히 배격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주님을 영접한 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이런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서로 교제하며, 교육과 훈련을 받으면서 함께 나누고 섬기는 것입니다.

요즘 세상이 갈수록 개인주의화 되어가는 상황에서 성도들조차도 공동체에 어울리며 함께하는 것을 싫어하고 회피하는 경향이 많아집니다. 과거에 집집마다 왕래하며, 무엇이든 함께하고, 식사할 때 아이들이 보이지 않아도 이웃집에서 밥을 먹나보다 여길 정도로 서로가 함께하던 시절에는 교회에서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서로 돌아보는 일이 잘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환경과 의식이 달라진 요즘은 성도들조차도 단절된 삶을 사는 것이 비일비재합니다.

이런 시대에 전도하겠다고 전도지 한 장 불쑥 나눠주거나, 지나가는 말 한마디로 기독교의 가치를 나누며 복음을 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성도들과 교회가 이웃과 사회에 신뢰를 쌓고 복음의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참된 교제와 섬김이 반드시 실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초대교회의 시대상황을 잘 정리했던 종교사회학자 로드니 스타크(Rodney Stark)는 <기독교의 발흥(The Rise of Christianity)>에서, 서기 40년 로마제국의 기독교인은 불과 1000명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이 온갖 박해를 견디면서 신앙을 굳게 지키고 복음을 전한 300여 년 동안 매년 40% 이상의 성장을 거듭해 로마제국의 인구가 5600만명이었을 때에 기독교인이 무려 3300만명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그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오히려 기독교를 성장시켰고, 둘째는 기독교인의 구별된 성결한 삶이 있었기 때문이고, 셋째는 기독교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했기 때문이었다고 기술했습니다.
당시 성도들이 진심으로 본문 말씀처럼 서로 교제하며, 섬기고, 이웃을 참된 사랑으로 돌보는 ‘이타적 정신’으로 그 시대를 가슴에 품었다는 겁니다. 당시 예수 믿는 자들이 신앙생활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믿음을 지탱하기조차 어려운 때에 이런 구별된 삶과 이웃사랑의 실천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낳으며 복음을 받아들이게 했다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 원리는 똑같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더더욱 필요한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말하며 복음을 전하려 할 때에 이웃을 위한 배려와 섬김이 없이는 접촉점조차 찾기가 어려운 시대입니다.

이웃사랑의 구체적인 실천을 위한 수고와 희생이 필요합니다.

서로 통용하고 나눠 주는 삶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필요를 따라 자기 재산과 소유를 파는” 행위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용하고 남아돌아가는 것을 서로 교환하여 사용하는 일종의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고) 운동’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모든 소유를 공동으로 소유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필요를 따라 자신의 소유를 팔아 나눠주는 희생이 있었습니다. 재산과 소유를 나눌 것이 있기까지는 나의 땀 흘림과 수고가 있었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고, 그 섬김을 받는 자들의 마음에 감동을 낳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성도 개인도 그렇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배소서 4장 28절의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 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는 말씀처럼, 내가 수고하여 얻게 된 것으로 필요를 따라 섬기는 것이 나눔의 원리이며 위대함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은혜 받는 만큼이나 삶의 현장에서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세상을 도전하고 변화시키는 힘이라는 것은 변함없는 원리입니다. <가난한 시대를 사는 부유한 그리스도인>과 <이것이 진정한 기독교다>를 집필한 로널드 사이더(Ronald J. Sider)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체험한 모든 성도들이 요한일서 3장 16절에 순종하지 않는 한, 아직 그의 믿음의 삶은 온전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 여기에 계속되는 요한일서 3장 17절을 보십시오.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받은 은혜이든, 물질이든 그것을 나눔으로 섬기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히 13:16) 선을 행함과 나누어 주는 삶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그렇잖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아니하기에 믿는 우리들에게 그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이런 요청에 대하여 우리는 응답해야합니다. 우리 속에 머물러 있는 믿음과 사랑이 아닌, 좀 더 적극적인 믿음의 행함과 섬김에 앞장서야 합니다.

한국교회에 대한 신뢰와 기대보다는 불신과 저항이 팽배한 시대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사도행전 20장 35절 말씀을 적극적으로 실천합시다. 그리하여 주의 약속을 누림과 함께, 이웃과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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