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어서 좋은 2 사람은 ‘단짝’


 단짝③ | 죽마고우 | 정진원 장로와 전정하 장로

40년 우정, 귀한 동역 이어가다


담임목사·장로 아들로 함께 성장 … 교회·교단 섬김도 열심 나누다

지난 10월 12일 서울 불광동 부림교회(최성은 목사)에서는 뜻깊은 장로 임직식이 열렸다. 주인공은 정진원 장로(46세)와 전정하 장로(44세). 비슷한 성과 이름에, 부드러운 인상까지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은 두 사람은 충성된 종이 되겠다 다짐하며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였다.

같은 교회에서 자라 한 날 한 시에 안수집사에 이어 장로가 된 정진원 장로(오른쪽)와 전정하 장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아름다운 동역자로 서겠다고 다짐했다. 바울과 바나바같은 귀한 동역이다.
같은 교회에서 자라 한 날 한 시에 안수집사에 이어 장로가 된 정진원 장로(오른쪽)와 전정하 장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아름다운 동역자로 서겠다고 다짐했다. 바울과 바나바같은 귀한 동역이다.

두 사람은 부림교회에서 함께 자라 40여 년 세월을 함께 해온 죽마고우(竹馬故友)다. 전 장로 가족은 1980년 상경해 불광동에 터를 잡았고, 전 장로는 부모를 따라 정 장로의 아버지인 정영복 목사(현 원로목사)가 개척한 부림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당시 부림교회는 개척한 지 얼마 안 되던 때라, 전 장로 가족은 부림교회 개척멤버나 마찬가지였다. 전 장로 부친(전명석 원로장로)은 이후 부림교회 첫 장로들 가운데 한 명으로 세워지기도 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교회 밖에서도 이어졌다. 한 학년 차이인 두 사람은 초등학교부터 시작해,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도 선후배 사이가 됐다. 정 장로는 “전 장로 집이 등굣길 가에 있어서, 고등학생 때는 맨날 들러서 같이 등교하기도 했다”며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렸다.

담임목사 아들과 장로 아들이었던 까닭에 두 사람은 늘 교회 활동에 앞장서는 위치였고, 중고등부 시절부터 정 장로가 회장을 하면 전 장로가 다음 회장을 맡는 식으로 자연스레 동역자로 자랐다. 신앙 좋고, 착하고, 성실한 두 사람이었지만, 성격은 조금 달랐다. 정 장로가 활달한 성격인 반면, 전 장로는 차분하고 학구적이었다.

“전 장로는 어릴 때부터 공부도 잘하고 똑똑했어요. 성경퀴즈대회 전국대회에 나가서 상도 받고 그랬죠. 반면에 저는 장난치기 좋아하고 말썽쟁이였어요. 그래서 어릴 때 성적표를 받아오면, 어머니가 전 장로와 비교하시면서 혼내시곤 했죠.”

정 장로가 웃으며 옛 기억을 꺼내자, 전 장로는 도리어 “제가 여러 부분에서 배우고 따라가는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장로가 찬양대 지휘를 비롯해 어릴 때부터 교회 일에 워낙 열심이었다며 “각자가 가진 달란트에 따라 교회를 섬겼고, 그것이 서로에게 동기부여가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교회를 섬기는 귀한 동역자였다. 같은 날 안수집사가 됐고, 교회며 노회의 각종 연합회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중직도 맡았다. 특별히 전국CE 활동도 함께 하며, 연이어 전국CE 부회장으로도 섬겼다.

장로 임직으로 교회에서 마주할 시간이 더 많아진 두 사람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교회를 섬기는 일에 귀한 동역을 이뤄가겠다고 다짐했다.

“정 장로님은 교회 일에 아무런 사심이 없이 순수해요. 어떤 대가는 물론이고 사람들의 인정이나 칭찬도 바라지 않죠. 이번에 교회 리모델링을 하는 데도 회사 일을 마치고 와서 새벽까지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전임 사역자 이상으로 교회를 섬기고 있구나 생각했어요. 그런 선배이기에 제가 안심하고 따라갈 수 있죠.”

전 장로의 말에 정 장로는 변호사인 전 장로가 얼마든지 더 큰 교회를 찾아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변두리의 모 교회를 떠나지 않고 든든한 그루터기 돼주었다며 “전 장로와 동역할 수 있다는 것이 보험을 든 것처럼 든든하다”며 전 장로의 어깨를 토닥였다.
조준영 기자 joshua@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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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짝④ | 선교 후원 동역 | 이용웅 선교사와 김두호 장로

각별한 친구, 선교 동반자 되다

 
대학부 만남 이후 깊은 우의 다져 … 선교비전 나누는 든든한 버팀목

월요일이면 대학교 교정 잔디밭에 앉아 신앙 이야기를 나누던 청년들이 이제는 한국선교에 대한 기대와 고민으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42년 세월 동안 두 사람의 얼굴에는 하나둘 주름이 늘었지만, 더불어 교회와 선교를 바라보는 시선은 넓고도 깊어졌다.

이용웅 선교사(GP선교회·63세)와 김두호 장로(신용산교회·63세)는 1977년 신용산교회 대학부에서 처음 만났다. 동갑에다 같은 대학을 다니던 터라, 자연스럽게 두 사람은 대학부 내에서도 단짝이 됐고, 또 회지 편집장과 대학부 회장으로 섬겼던 덕분에 교회에 대한 기억은 두 사람 다 각별했다.

이용웅 선교사(오른쪽)는 총신신대원 82회 졸업생으로, GP선교회 한국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태국인을 대상으로 의정부펠로우십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김두호 장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감리교 목사인 김창식 목사의 4대손이며, 현재 빌리온선교회 이사장으로 섬기고 있다.
이용웅 선교사(오른쪽)는 총신신대원 82회 졸업생으로, GP선교회 한국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태국인을 대상으로 의정부펠로우십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김두호 장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감리교 목사인 김창식 목사의 4대손이며, 현재 빌리온선교회 이사장으로 섬기고 있다.

“대학부 부흥회 때, 옥한흠 목사님을 강사로 모셨잖아. 강남은평교회가 상가건물에 있었는데, 찾아갔더니 의자를 정리하고 계시더라고.”(김두호)

“그때만 해도 해외에 나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해외선교에 대한 개념도 별로 없었지.”(이용웅)

인연은 이후로도 계속됐다. 이 선교사는 대학 졸업 후 직장이 있는 창원으로, 다시 몇 년 후 고향인 고흥으로 내려가 살았는데, 그때마다 김 장로는 이 선교사를 찾아가 우의를 다졌다. 그러는 가운데 두 사람은 선교를 매개체로 다시 깊은 인연으로 접어들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다시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자가 된 이 선교사가 1996년 태국 선교사로 파송받은 것이다. 당시 김 장로는 신용산교회 대학부 시절 담당 전도사였던 양영학 선교사(현 빌리온선교회 고문)와의 인연으로, 양 선교사를 위한 기도모임인 ‘빌리온기도회’를 이끌고 있던 터라 선교가 낯설지만은 않았다.

“친구가 선교사로 나간다고 하는데 가만있을 수 없잖아요. 친구들 모아서 후원회도 만들고, 파송식 때 특송도 했죠.”

김 장로는 그때부터 이 선교사의 후원자를 자처했고, 이 선교사가 한국에 돌아와 선교행정가로, 다시 이주민 사역자로 살아갈 때도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그렇게 23년이 흘렀다.
이 선교사는 “2007년 태국에 쓰나미가 덮쳤을 때, 김 장로가 청년부 부장이었는데, 헌금을 해서 태국교회를 도왔고, 내가 귀국할 때면 일부러 청년부 특강을 맡기기도 했다”며 “오랜 친구가 선교의 동반자가 되어준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고 말했다.

친구의 덕담에 김 장로는 “평신도로서 선교에 입문하는 데 이 선교사의 도움이 컸다”며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한국교회 역사에서 우리가 한 배를 탔구나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선교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선교계에 수십 년 몸담은 시니어들답게 한국선교 미래에 대한 소망도 빼놓지 않았다. 이주민 선교에 힘을 더 쏟아야 한다는 이야기며, 아시아 선교를 함께 책임지는 포괄적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제안이며, 두 사람의 이야기는 무궁무진했다. 그리고 어느 틈엔가 그들의 이야기는 오래된 친구답게 서로를 닮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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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짝⑤ | 선후배 학자 | 박유미·강호숙 박사

‘존중의 공동체’ 함께 꿈꾼다


총신여동문회서 활동 … 교회 여성문제 해결 앞장

총신대신대원 출신의 신학자 박유미 박사와 강호숙 박사가 처음 만난 것은 박사과정을 공부할 때였다. 두 사람은 신대원 선후배 사이(박 박사 87회, 강 박사 91회)였으나 일면식이 없었다.
2003년 한 중진목회자의 소위 ‘기저귀 발언’ 사건이 터졌다. 박유미 박사는 강호숙 박사를 만나서 그 발언으로 받은 충격을 이야기했다. 강 박사는 박 박사의 이야기와 눈물에 함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박 박사가 총신여동문회 회장 등을 맡으며 꾸준히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후 강 박사도 동문회 일에 동참했다.

박유미 박사(오른쪽)와 강호숙 박사는 총신신대원 선후배 관계다. 강 박사가 박 박사보다 나이는 많지만 신대원은 늦게 입학했다. 두 사람은 단짝이 되어 15년간 교회의 여성인식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박유미 박사(오른쪽)와 강호숙 박사는 총신신대원 선후배 관계다. 강 박사가 박 박사보다 나이는 많지만 신대원은 늦게 입학했다. 두 사람은 단짝이 되어 15년간 교회의 여성인식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박 박사는 박사학위를 받고 2007년부터는 전공인 구약학 관련된 과목을 가르쳤다. 강 박사는 2009년부터 강사활동을 시작했다. 서울에서 자가용을 이용해도 1시간 거리, 적막한 양지캠퍼스에 여자 강사는 둘 뿐이었던 시절이었다. 서로 의지하면서 강의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여성강사로서 당한 설움도 털어놓았다. 두 사람은 결혼을 했고 자녀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또 총신출신 여성학자들이 상대적으로 적게 택하는 구약학과 실천신학을 전공했다는 점도 이야기를 나눌 때 도움이 됐다. 다른 점도 있었다. 박 박사는 학자로서의 길을 걸어왔기에 교회 안에서 여성문제에 대해 피부로 경험한 일이 적었다. 강 박사는 교회사역을 해오면서 한국교회의 상황에 대해 잘 이해하는 편이었다. 또 박 박사는 연구자 타입이었고 강 박사는 활동가 스타일이었다. 두 사람은 교단 내 여성의 지위와 여성사역의 방향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총신과 교단 내에서 들려오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과 선후배 여성사역자와 여성도들의 호소를 접하면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든든한 남편이 있어서 강사 그만 둬도 먹고 살 걱정은 안해도 되니까 설친다’는 핀잔도 들었다. 두 사람은 “안정된 직장생활을 통해 자기성장을 하는 일은 분명히 중요하다”면서 “그러나 잘못된 일에 대해서는 누군가는 발언해야 하고 그런 이야기하는 입들이 많아지면 세상은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박사와 강 박사는 2015년 말, ‘여동문회 여성안수 기도사건’을 계기로 같은 시기에 강사직 연장을 허락받지 못했던 아픈 경험을 공유했다. 요즘 두 사람은 ‘비블로스성경인문학연구소’(소장:박유미 박사)에서 함께 연구하고, 외부 강연과 방송, 저술 활동 등을 하고 있다. 비블로스성경인문학연구소는 2014년 문을 열었는데 처음에 시간강사들이 회원이었다. 시간강사로서 갖는 불안감과 외로움, 연구공간 없는 애로 등을 나누다가 연구소가 탄생했다.

두 사람은 “한국교회 안에 남녀차별은 존재한다”면서 “그 문제를 여성이 먼저 말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들은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것은 남녀가 함께 있을 때 하나님의 형상이 구현되기 때문”이라면서 “남녀의 다양성이 인정되고 서로 존중받는 그런 공동체를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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