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은주 사무총장(평화통일연대)

윤은주 사무총장(평화통일연대)
윤은주 사무총장(평화통일연대)

작년 11월 4일과 5일 필자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회원사업위원장으로서 금강산을 방문했다. 남북 민화협이 공동으로 주관한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민화협 연대모임’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행사는 금강산호텔에서 진행됐고 이튿날에 삼일포 나들이도 이어졌다. 10년 만에 밟는 북한 땅인지라 감격에 겨웠고 당시만 해도 금강산 관광이 곧바로 재개될 것이라 믿어 “오고 가면 통일이다”라는 구호를 서슴없이 외쳤다. 2018년 한 해 동안 한반도 평화 실현을 가늠할 만한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2월 평창동계올림픽과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6월 최초의 북미정상회담 이후 9월에는 남북정상이 평양에서 재차 회담하고 함께 백두산에도 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한의 정상으로서는 최초로 5.1경기장에서 15만 주민을 앞두고 연설했다. 1991년 남북 유엔 동시 가입과 기본합의서 채택 이래로 남북관계 발전의 최정점을 찍은 해였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남북관계는 북한 비핵화 협상에 맞물려 진전을 보이지 못한 채 답보상태에 놓여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2월 말 하노이 회담이 성공적으로 진행됐다면 남북관계는 급물살을 타듯 빠르게 진전됐을 터였다. 125개 기업이 목이 빠지라 기다리고 있는 개성공단이 재가동되고 철도 및 도로 연결 사업이 본격화하면 남북경협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을 것이다. 금강산과 원산, 그리고 강원도를 잇는 관광사업에도 남북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로부터도 관광객이 몰릴 것이 명약관화였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문제가 있다. 북한의 핵 문제가 북미협상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점이다. 한동안 ‘퍼주었더니 핵으로 돌아왔다’는 소위 퍼주기론이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근거였다. 논리적으로 따지면 퍼준 것 보다 퍼온 것이 훨씬 많지만 2006년 최초의 핵실험 이후 교류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대북정책은 제대로 평가받기보다 정치적 공세에 밀리는 형국이 됐다.

북은 우리 정부가 퍼주든 퍼주지 않든 관계없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이어갔다. 2017년 11월 장거리 미사일 발사 성공을 계기로 서둘러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자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됐다. 북의 요구는 간단하다. 자신들의 체제를 보장하면 비핵화한다는 ‘안보 대 안보’전략이다.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수교로 정상국가 대접을 해달라는 요청이다. 이는 1994년과 2005년 두 차례 북핵 위기 국면에서 내세웠던 주장이었고 남북정상회담에서도 거듭 밝혔던 내용이다. 북한이 핵을 개발한 기저에는 동구 사회주의권 몰락과 대량 아사로 인한 체제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이 불안증을 해결해주지 않으면 북한 정권에 인권과 민주주의를 요구하기가 어렵다. 인권을 내세워 정권을 붕괴시킬 것이란 의심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미 1992년 미군철수를 조건으로 하지 않는 북미수교를 제안했고 2000년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 시에도 확인한 바 있다.

문제는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신이다. 특히 미국의 정치권은 반인권적 독재국가 이미지에 더해 과거 북핵 협상 실패의 원인을 북한에 돌리며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에 차 있다. 냉철한 국제정치 속에서 북한은 약소국으로서 최대한의 협상 전략을 펼치는 중이다. 남북관계는 그 하위에 놓여 있다. 핵 문제는 국제사회 속에서의 문제이고 한미동맹을 우선시하는 우리 정부로서는 독자적인 남북관계를 개진하기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더구나 국제관계 속의 남북관계와 남북관계 속의 국내정치는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다. 북한을 놓고 남남갈등과 정치적 분열이 거듭된다면 그만큼 한반도 평화는 요원해질 것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 10월 금강산 관광지구를 방문한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을 계기로 2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정체된 남북관계를 복원시켜야 한다. 미국과 국제사회에 우리 민족의 비극적 분단역사를 호소하며 남북 교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더욱 강단 있게 노력해야 한다. 이미 시민사회는 금강산 방문과 개성공단 재가동을 위한 국민운동본부를 출범시켰다. 미주 동포들은 미주 전역에 유권자 모임을 조직하고 종전선언과 이산가족 방북을 위한 법안 상정 노력을 펼치고 있다. 여성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이 중심이 된 국제 여성 운동 단체들은 유엔과 미 하원에서 한반도 평화협정체결을 위한 공공외교를 펼치고 있다. 조직력과 국제 네트워크, 인적, 물적 토대를 두루 갖추고 있는 한국교회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많다. 우선 금강산 지구에는 1930년 설립된 금강산 기독교수양관이 있었다. 장로교 수양관이었으나 초교파적으로 교역자들의 심신을 수련하던 곳이었다고 하니 한국교회가 힘을 합쳐 복원을 위해 노력해봄직도 하다. 남북관계 발전은 정부 차원의 노력만이 아닌 사회 각 부문에서의 창의적 접근을 필요로 한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한국교회가 앞장서서 민족화해 역량을 강화시켜 나갈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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