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목사(대구 태평교회)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실 때에 그들의 고통을 돌보시며 (시 106:44)

김성호 목사(대구 태평교회)
김성호 목사(대구 태평교회)

11월은 우리의 감사를 회복하는 달입니다. 신앙인의 특징은 감사입니다. 신앙인의 감사는 여러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감사는 그 자체가 예배이며, 여호와께 드리는 제물입니다.(시 50:14,23)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불평과 원망으로 드리면 그것은 제물이 아닙니다. 감사는 바로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이기도 합니다.(시 138:1,147:7) 찬양은 하나님께 대한 감격으로 나오는 반응이며, 신앙고백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감사로 표현되지 않는 찬양은 찬양이 아닙니다.

나라가 파멸되고, 국토가 황폐되고, 모든 사람들이 포로로 간다는 예언에도 감사를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남 유다가 파멸된다는 예언에 이렇게 반응합니다.(합 3:16~18) 때로는 개인적으로 죽음의 위기 상황임에도 여전히 감사를 드립니다. 바로 선지자 다니엘과 요나의 감사가 그러합니다.(단 6:10; 욘 2:9)

신앙인의 감사는 환경과 조건에서 나오는 감사가 아닙니다. 어려움이나 죽음의 위기상황, 나라가 망하거나 포로로 잡혀가는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것이 신앙인입니다. 그리고 모든 일을 하는 방법도 감사입니다. 찬송도 감사함으로, 제물도 감사함으로, 기도도 감사함으로. 전부가 감사입니다.

우리는 다시 신앙을 재점검해야 할 시간입니다. 본문은 시편 105편과 ‘쌍둥이 시편’이라고 불리며, 과거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고백하는 소위 “역사서사시”라 불리는 시편입니다. 그리고 주제별 분류에서는 보통 ‘찬양시’라고 설명하지만, 어떤 사람은 이 시를 ‘공동체 탄식시’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주제별 구분이 어디에 속하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이 본문은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1절)라며, 그 상황을 감사로 승화시키고 있으며 찬송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편 106편 47절을 보면, 현재의 상황을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사 여러 나라로부터 모으시고”라고 합니다. 이 시편의 상황은 바로 포로기와 그 이후의 시기에 기록된 탄식의 상황입니다. 즉, 포로로 간 나라들에서 우리를 모아서 다시 회복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그 상황을 본문은 절망의 늪에서 울지 말고, 원망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바로 감사해야 할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감사로 초청하다(1~5절)

먼저 본문 1절에서 제사장이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선창을 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온 회중에게 결단을 요청하는 명령입니다. 아주 강하게 찬양으로 여호와께 감사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절망의 늪에서 감사하는 신앙인이 될 수 있을까요?

현실의 고난의 이유를 발견함을 감사하라(6절)

여기에서 첫 번째 중요한 감사의 원리가 등장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조상들처럼 범죄하여 사악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6절)라는 고백입니다. 자신들의 고난을 환경의 문제나 국제관계의 문제가 아니라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행한 일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말씀대로 살지 않고, 범죄하고, 빗나가고, 게다가 악하게 행동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당연히 언약을 어긴 자에게 벌을 내리셔야 하고, 저주를 내리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당하는 어려움과 절망의 상황이 억울한 것이 아닙니다. 배신한 당연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에도 여호와와 맺은 언약은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절망의 순간에도 좌절로 끝나지 않고, 바로 그 순간을 여호와를 찬양해야 할 시간으로 이해하고, 바로 그 순간에 감사를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벌써 끝나버렸을 것이지만, 그 인자하심 때문에 지금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절망의 순간에 감사할 수 있는 신앙의 원리입니다.

파멸이 아니라 여호와의 참으심에 감사하라(13~39절)

문제는 저들의 반역이 쌓이고 쌓였다는 사실입니다. 그 결과가 바로 절망의 처지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너고 나서 시내산에서 언약의 규정을 받습니다. 즉 언약백성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규정과 무엇을 하면 여호와께서 진노하시는지를 설명해 주신 것입니다.

저들의 행동은 바뀌었을까요? 먼저 출애굽 1세대가 반역한 사건들을 13~33절에서 서술합니다.

①먼저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 사건을 설명합니다. 바란 광야에서 저들은 애굽에서 먹었던 고기를 원하였고, 메추라기를 욕심으로 많이 거둔 범죄에도 참아주셨음을 회고합니다.(14,15절) ②다음은 다단과 아비람이 모세와 제사장을 범죄로 심판하시는 가운데서도 참아주셨음을 회고합니다.(16~18절) ③또한 19~23절은 호렙에서 금송아지를 숭배한 사건에도 참아주셨음을 회고합니다. ④24~27절에서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을 혹평한 사건에도 참아주셨음을 회고합니다. ⑤28~31절은 바알브올에서 바알 숭배에 빠지게 된 사건에도 참아주셨음을 회고합니다. ⑥32~33절은 모세마저도 여호와께 범죄하게 되었어도 민족을 멸하지 않고 참아주셨음을 회고합니다.

이어 가나안에서 반복된 반역을 서술합니다.(34~39절) 출애굽 1세대가 광야에서 다 사라지고 난 이후에 그 후손들을 드디어 가나안으로 인도하사 여호와의 유업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러나 반역을 계속합니다. ①34절에서는 출애굽 2세대의 실재적인 실패와 반역에도 참아주셨음을 회고합니다. ②35~36절은 이방의 행위대로 살고 우상을 숭배한 불순종에도 참아주셨음을 회고합니다. ③37~39절은 자녀들을 악귀들에게 희생제물로 바친 최악의 상태에도 끝장내지 않고 참아 주셨음을 회고합니다.

과거에 망해버린 조상들의 교훈을 통해서 같은 범죄를 하지 말라는 역사적 교훈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파멸시키지 않고 참아주셔서 저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에서 배워야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는 사실을 깨닫고 감사해야만 합니다.

기회를 주신 여호와께 감사하라(40~ 46절)

결국 “그 땅이 피로 더러워졌도다”(38절)라고 선언됩니다. “그 땅이…더러워”지면 어떻게 됩니까? 그 땅에 살 수 없도록 땅이 토해내어서 포로로 갑니다.(레 18:25,28) 40~42절은 바로 이 사실을 설명하는데, 이방에 포로로 가서 노예살이를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절망의 상황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여러 번 그들을 건지시나 그들은 교묘하게 거역하며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낮아짐을 당하였도다”(43절) 바로 절망의 상황은 포기의 순간이 아니라 ‘낮아짐’을 통하여 겸손을 훈련시키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거기에서 “여호와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실 때에 그들의 고통을 돌보시며”(44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언약의 백성들이 섬겨야 할 분은 여호와이심을 깨닫고, 여호와께 부르짖으라고 주신 기회의 시간입니다. 절망은 바로 여호와께서 부르시는 기회의 순간입니다.

그러면 놀라운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들을 위하여 그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크신 인자하심을 따라 뜻을 돌이키사 그들을 사로잡은 모든 자에게서 긍휼히 여김을 받게 하셨도다”(45~46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절망의 장소가 좌절의 순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여호와만 사랑하고 섬겨야함을 깨닫고 회복의 길은 여호와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 부르짖음을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언약백성들을 기억하시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맺었던 언약을 기억하셔서 ‘인자하심’으로 지금까지 범죄에도 긍휼이 여겨주시는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즉, 절망의 상황은 좌절의 순간이 아니라 바로 여호와를 기억하고 부르며 돌아가는 순간이라는 사실을 알고, “여호와께서 내가 섬겨야 할 유일한 분이십니다”라고 고백하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이미 맺으신 자신의 언약에 근거해서 은혜를 베푸시는 순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출 2:23~25)

우리의 부르짖음은 공로가 아니며, 근거도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맺으신 언약이 근거이며, 오로지 여호와의 인자하심 즉, 언약적 사랑에 근거하여서 지금이라도 부르짖는 자들을 긍휼로 대하시는 것입니다.

절망의 늪에 있다고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그때에도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현실 절망의 이유를 발견하여 나의 상태를 깨닫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파멸이 아니라 여호와의 오래 참으심의 결과임을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절망의 늪을 만난 것은 다시 돌아갈 기회를 주시는 여호와의 부르심임을 깨닫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망의 늪에서 좌절하지 말고 부르짖어야 함을 깨닫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깨닫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섬기는 회복이 있는 감사의 계절이 되게 해야 합니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