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할로윈(Halloween)을 넘어 ‘할로 윈’(Hallow Win)으로!
[시론] 할로윈(Halloween)을 넘어 ‘할로 윈’(Hallow Win)으로!
  • 기독신문
  • 승인 2019.11.0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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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식 목사(전 문화선교연구원 간사.부산안락교회)
정민식 목사(전 문화선교연구원 간사.부산안락교회)
정민식 목사(전 문화선교연구원 간사.부산안락교회)

축제의 계절, 가을이다. 전국 방방곡곡에는 축제가 넘쳐난다. 10월의 마지막 날, 가면의 축제로 거리에는 인파가 가득했다. 외국에서나 쉽게 볼 수 있었던 할로윈데이, 그 가면과 가장(假裝, costume)의 축제를 이제는 서울 도심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발렌타인데이, 빼빼로데이 등 수많은 ‘데이’ 가운데 이제 할로윈데이까지 가세해 사람들의 소비심리를 자극하며, 유흥과 유희를 부추기고 있다. 매스미디어 매체와 소셜네트워크(SNS), 각종 커뮤니티는 할로윈데이를 소비하라고 우리에게 손짓한다.

그 수많은 ‘데이’들 가운데에서도 기독교계가 유독 할로윈데이에 대해 좀 더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할로윈데이는 여타 다른 ‘데이’ 만큼 근본 없는 ‘데이’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할로윈데이의 종교적 기원 때문이다. 할로윈데이는 가톨릭 전통인 성인 대축일 전야제의 의미와 켈트족의 이교도 풍습이 결합된 혼합 문화로 보통 이야기 한다.

이렇게 시작된 할로윈의 의미는 점차 변질되어 이제 축제처럼 유흥과 유희의 장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금의 할로윈은 귀신이나 유령 또는 혐오스런 분장을 통해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가장문화로 발전한 것이다. 이때 보이는 가면과 가장은 일상생활 속의 습관과 규칙에서 벗어나 색다른 자유를 얻고자 하는 욕망과 연결돼 있지 않나 생각한다.

기독교계가 할로윈데이를 경계하는 것은 그 종교적 기원과 가면을 통해 표출하는 욕망을 경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무엇보다 가장 큰 경계심은 최근 할로윈에 등장한 가면과 가장의 아이템이다. 그것들은 보는 이의 마음을 철렁 내려앉게 할 만큼 거부감을 준다. 마치 누가 더 잔인하고 가학적 아이템을 보여줄 것인가 경쟁하는 자리같이 보일 지경이다. 이러한 자본주의 소비문화만 남아 있는 할로윈에 동참하고 싶다면,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과연 현대의 이러한 가면과 가장의 축제가 건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게 해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사실 할로윈(Halloween)이란 단어에서 ‘Hallow’는 거룩한, 성스러운의 의미를 갖고 있다. ‘Holy’의 옛 말이 ‘Hallow’다. Eve(ning)이라는 말은 ‘전야’라는 말이다. 그래서 할로윈은 ‘Allhallows Eve(ning)’ 곧 ‘거룩한 전야’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2000년 전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참 신이자 참 인간으로써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놀라운 신비였다. 인간의 몸을 입으신 하나님의 낮아지심이야말로 어찌 보면 가장 거룩한 승리(Hallow Win)가 아닐까.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정체성이다. 온갖 가면과 가장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이제는 그런 가짜 형상을 소비하기에 이른 할로윈데이에, 우리는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더욱 기억하며 그것의 회복을 위해 노력해 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13장에서 ‘빛의 갑옷을 입자.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했다. 물론 할로윈데이에 가장문화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1년에 한 번 하는 축제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할로윈 속에 등장하는 세속문화와 소비문화는 이제 일 년에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얼굴을 달리해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것은 이미 많은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유행과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가장(假裝)해 거부감 없는 자연스러움으로 접근하고 있다.

할로윈데이를 상업적으로 소비시키려는 기업의 행태를 멈출 수 있는 명분은 마땅치 않고, 사실 멈출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을 소비하려는 대중들이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자세다. 거대한 세상의 소비문화 속에서 ‘우리는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라는 문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소비와 욕망의 할로윈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할로 윈’(Hallow Win)에 동참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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