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의 법칙’을 교실에서 배울 때는 머리 아팠지만 일상에서는 쉽고 흔한 원리다. 관성(慣性)은 ‘어떤 물체에 작용하는 힘이 없거나, 작용하는 힘들의 합이 0일 때 물체가 운동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성질’이라고 정의한다.

물리적 운동만은 아니다. 글자 그대로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그 습관이 계속 유지되는 것도 바로 관성의 하나이고, 그것을 ‘관행’이라고 부른다. 늘 겪던 것이나 하던 것에 익숙해져서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또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다.

총회장이 취임 후 관행대로 산하기관장, 상비부장, 전국노회장, 지역협의회장 연석회의를 소집했다. ‘회복’이라는 104회의 ‘이상’을 어떻게 펼쳐갈 지 그 포부를 밝히고 협력을 요청한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총회장은 이 자리에서 법과 원칙 준수 그리고 영성회복을 강조했다. 그것을 위해 ‘불법과 잘못된 관행 척결’을 내세웠다. 매우 시급하고도 명료한 목표를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 가지 궁금하다. 우리 교단에는 관행처럼 내려오는 지역협의회가 있다. 이미 본 사설에서 지적한 바가 있지만 지역협의회는 법적 단체가 아님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존재해 왔다. 그 영향력을 확인한 탓인지 같은 지역 내에 여러 협의회가 뒤섞이고 또 전국 조직, 재경 조직 등 그 형태도 다양하다. 당연히 한 사람이 여러 단체에 소속되기도 한다. 지역협의회의 기능적인 면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역기능도 있어 폐지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에 없던 지역협의회장들을 연석회의에 불렀다. 어느 선까지 지역협의회로 참여시켰는지 기준도 모호해 보인다.

지역협의회는 법적 근거 없이, 앞에서 언급한 관행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관행에 사명감을 갖는 인사들도 많다. 그런데 그런 협의회를 총회장 주관 공식 연석회의에 참석시켰다. 좋은 의도라는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래도 궁금하다. 새로운 관행을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선언한대로 관행을 깨자는 것일까?

불법도 이익이 되거나 편리하면 받아들이고 익숙해지는 법이다. 그래서 관행이 되고 그렇게 탄생한 관행은 쉽사리 깨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아니다’라고 외치기 전까지는 그 잠자는 의식을 깨우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기대한다. 총회장이 천명한 대로 불법적 관행을 더 이상 우리 총회에서 찾아볼 수 없기를. 총회장의 그 선명한 의지 표명에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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