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건 목사의 제주교회이야기]

제주도 주민이 되어 살아간 지 21년째이다. 강원도 홍천의 한 시골에서 태어나, 춘천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후, 서울에서 신학을 하고 목회생활을 한 세월까지가 45년이었으니 순전히 살아온 시간만으로 보면 내 인생에서 제주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3분의 1 정도인 것이 맞다.

그러나 제주도에서의 세월이 내 인생에 미친 영향력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제 나는 누구 앞에서도 망설임 없이 제주도를 ‘제2의 고향’, ‘비전의 땅’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제주에서 만난 사람들, 제주에서 알게 된 이 섬의 역사와 아픔들, 제주에서 열정을 다 바쳐 보낸 시간들은 나의 시야와 사역의 지경을 엄청나게 확장시켰기 때문이다.

제주교회사를 아름답게 장식한 이기풍 이도종 배형규 등 세 인물의 순교기념비. 이들은 오늘의 제주 교회들을 존재하게 한 축복의 통로였다.
제주교회사를 아름답게 장식한 이기풍 이도종 배형규 등 세 인물의 순교기념비. 이들은 오늘의 제주 교회들을 존재하게 한 축복의 통로였다.

1999년 처음 만난 제주도의 모습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서귀포는 거리에 신호등조차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을 정도로 초라한 동네였다. 지금은 제주도의 남북을 잇는 주축도로가 된 평화로도 그 때 한창 길을 닦는 중이었다.

당시 서울 정릉중앙교회에서 사역하다 안식년을 제주에서 보내는 중이던 내게, 제주노회장을 맡고 있던 친구가 뜻밖의 부탁을 해왔다. 분란으로 어려움을 겪던 제주의 한 교회가 교단을 옮겨 제주노회에 가입을 하려는 참인데, 임시로 강단을 맡아줄 수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별 큰 부담 없이 그 교회를 찾아가 몇 주 동안 설교를 담당한 것이 내 인생을 바꾸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바로 이 교회가 동홍교회였던 것이다. 몇 달 후 나는 서울 살림을 다 정리한 후,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완전히 내려와 동홍교회 담임목사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삼다도’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제주도는 기독교 선교가 시작된 지 10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복음화율이 9%에 불과한 지역이다. 특히 제주 토박이들의 복음화율은 약 2%쯤 추정할 정도로 대단히 낮다. 섬이라는 폐쇄적 환경, 거기에서 자라난 미신적인 문화의 영향도 강력하게 작용했지만 특히 외지인들에 대한 뿌리 깊은 저항감이 기독교 전파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거기에는 옛 왕조시대 유배지로서의 제주에 대한 부정적 시각, 일제강점기에서 해방 후까지 이어진 착취와 차별, 4·3사태로 대변되는 역사적 아픔, 지금도 강정마을 사태 등에서 표출되는 온갖 갈등들의 영향이 작용한다.

그런 낯선 환경에서 시작된 목회는 쉽지 않았다. 더욱이 동홍교회가 겪고 있던 분쟁의 후유증은 부임한 후에도 몇 년 동안 끈질기게 발목을 붙잡았다. 담임목사로서 가장 많이 감당한 역할 중 하나는 교우들의 장례를 치르는 것. 무려 60여 명의 천국환송예배를 집례했다. 교세에 비해 워낙 큰 규모였다. 주변에서 많은 이들이 나더러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는 제주에서 잘 지내고 있다. 동홍교회는 지금도 꾸준히 자라고 있으며, 소속한 제주노회와 제주교계 전체에서도 상당한 몫을 감당하는 중이다. 두말할 것 없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리고 지금의 내게, 오늘의 동홍교회에 흘러온 축복의 통로도 있었다.

복음의 불모지 제주에 복음을 들고 온 사람들, 복음에 적대적인 사람들을 향해 끝까지 예수의 사랑을 품고 목숨을 바친 사람들, 그리스도인의 삶을 온 몸으로 증언하며 살다간 사람들이 그 소중한 통로들이다. 제주선교 100주년을 맞이하여, 총신대 박용규 교수의 도움을 받아 <제주기독교회사>를 발간하며 그들이 지켜온 위대한 유산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앞으로 이 지면을 통해 관광지 혹은 신혼여행지라는 타이틀에 가려진 제주도의 다른 이면들을 보여줄 것이다. 그것은 복음을 위해 이 땅에서 헌신한 사람들과 교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다시 그들의 자취를 따라가는 순례자의 심정을 가지고 글을 쓰고자 한다. 동시에 믿음의 후예로서 건네받은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겠노라 스스로 다짐코자 한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