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환(춘천온누리교회)

김창환(춘천온누리교회)
김창환(춘천온누리교회)

“너 우리 쪽으로 안오면 이 바닥에서 목회 못하게 하고 죽여 버릴거야.” 부교역자로 사역할 때 노회분규로 시련을 겪었다. 노회가 열리는 교회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주문한 후 기다리고 있을 때 대선배 목사님이 자신과는 정치적으로 다른 편에 선 나를 보고 하는 말이었다. 차라리 선배답게 밥 값이라도 내주며 “담임목사 따라 가려니 얼마나 힘드냐, 잘 해결 될테니까 염려 말고 목회 열심히 하라”고 격려의 말을 했다면 존경 받는 선배가 되었을 것이다. 그분은 일찍 돌아가셨다.

“당신이나 나나 똑같은 목사인데 무슨 선후배 따지고 그러세요, 선배 티 내지 말고 들어 오세요.” 정치적 문제로 논쟁할 때 10년 이상 선배인 목사님이 노회에서 열변을 토하며 자기주장만 하는 것을 보고 후배 목사가 삿대질하며 제지하는 말이었다.

어떤 연합회가 주관하는 집회를 인도하고 차를 마시던 중 주최하는 임원들과 몇 분의 목사님들이 “걔하고 걔는 바꾸어 주는게 어때요.” “그러지 말고 걔는 이 쪽으로 보내주고 쟤는 저 쪽으로 보내는 것으로 합시다”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내가 물었다.“걔는 뭐고 쟤는 누굽니까?” 시끄러운 교회 두어 곳이 있는데 목사들을 다른 교회로 바꾸어주면 해결될 것 같아서 논의 중이라고 했다. “그래도 그렇지 목사님을 어찌 걔, 쟤라고 합니까?” 내가 정색을 하고 말하니까 “뭐, 그런 것 같고 그래요. 우리끼리니까 그러지요”라고 했다. 우리끼리가 집단화·조직화 되면 세력이 되고 권력이 되어 패거리 정치를 하며 막무가내 말로 정치판을 흐린다.

목사님들이 모였을 때 하나님이 계시지 않을 때가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회의할 때와 체육대회할 때이다. 회의를 하거나 운동할 때는 말이 거칠다. 목사님들이 모인 곳에서 그 장로, 이 장로, 저 장로라고 한다. 장로님들이 모인 곳에서는 이 목사, 저 목사, 그 목사라고 한다. 장로님, 목사님이라며 ‘님’자를 붙여서 서로 존중하면 얼마나 좋을까. 목사의 입에서 “죽여 버릴거야”, “그냥 안 둘거야”, “두고 볼거야”, “쫓아 낼거야”, “인생 끝장나게 할거야”라는 말을 하나님이 들으실텐데 뭐라 하실까.

종교개혁 502주년이 되었다. 로마가톨릭의 비성경적인 탈선이 종교개혁의 단초가 되었다는 것은 역사적 진실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로마가톨릭의 죄악으로 어두운 과거사만을 앵무새처럼 되뇌어야 하는가. 과거 역사는 오늘의 우리에게 거울이 된다. 교단마다 성도 수가 줄었다는 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사회로부터 불신과 비방을 받고, 부흥이 멈추거나 성도 수가 줄어든 것을 어찌 사회적 현상과 세상의 타락으로만 책임을 돌릴 것인가? 성경적 가치에서 멀어지는 목사의 설교와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 강단과 말씀을 따르지 않는 삶의 괴리에서 오는 당연한 결과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하는 말은 행하고 그들이 하는 행동은 본받지 말라고 하셨다. 목사가 두렵게 새겨야 할 말씀이다. 목사의 말과 삶이 다른데서 사람들은 격분한다. 교회를 폄훼하고 비방하는 댓글에서 목사는 지옥에 떨어질 자로 욕을 먹는 것은 성도들의 책임이 아니다. 세속사회의 지식문화와 경제의 질적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도 아니다. 세상은 소유를 지표로 하여 상류층, 중산층, 하류층으로 나눈다. 목사는 영적 상류층으로 살아야 한다. 세상이 어떻든 성경말씀을 삶의 유일한 법칙으로 따르며 순종해야 한다. 목사는 더욱 하나님 면전의식(面前意識)을 가져야 한다.

켈트족의 로리타 기도문을 보며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성찰해 보자.

“그리스도 내 곁에, 그리스도 내 앞에, 그리스도 내 뒤에, 그리스도 내 안에, 그리스도 내 아래, 그리스도 내 위에, 그리스도 내 오른쪽에, 그리스도 내 왼쪽에, 그리스도 내가 눕는 곳에,그리스도 내가 앉는 곳에, 그리스도 내가 일어나는 곳에, 그리스도 나를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그리스도 나를 보는 이들의 눈 속에, 그리스도 나를 듣는 모든 이들의 귀속에 계시네!”

목사가 정치적 이견과 이익과 네 편, 내 편에 따라 원수가 되고 증오하는 것은 한 잔의 술로 화해하는 세속인들의 능력보다 못하고 추하다. 조직과 세력,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집단에서 중요한 자리를 맡았다면 말부터 온유하고 겸손하게 해야 한다. 진리를 전하는 입술로 거짓말을 하지 말자. 거짓말은 거짓된 삶을 낳고 가면을 쓴다. 거짓말은 마귀가 좋아한다. 목사의 말이 개혁되어야 한다. 진리의 성령으로 부정한 입술이 태워지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는 것이 개혁이다.

“우리가 한 입으로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약 3:2,8~10),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너희에게 행하리니”(민 14:28),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 하리라”(롬 14:11,12)
종교개혁은 목사의 개혁이다. 말부터 개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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