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설교

아름다운 개혁신앙 전통 기억하고 회복해야 합니다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신 4:1)

박의서 목사(세곡교회)
박의서 목사(세곡교회)

역사신학자인 칼 트루만(Carl R. Trueman)이 1999년 신학 공부하던 학교에 와서 종교개혁에 관한 세미나를 인도한 후, 그 내용을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그는 오늘날 교회가 건강한 모습을 유지하려면 지나간 시대에 있었던 종교개혁에 대하여 세심하게 다시 살펴야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종교개혁은 값진 진주 하나를 찾다가 그것을 만난 한 여인이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그것을 산 것처럼, 개혁자들의 수고는 값진 진주를 찾아서 우리 시대에 넘겨준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설교자들이 더 새로운 것들을 추구하는 일에는 열심이지만, 역사와 전통 속에 축척된 과거의 진주를 찾는 일에는 소홀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전통은 교회가 간직해야 할 값진 진주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값진 진주처럼 소중한 이 아름다운 전통을 말입니다.

지나간 시대의 역사학자 E. H. 카(E. H. Carr)의 역사에 대한 정의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습니다. 과거를 망각한 채 현재의 일들에만 몰두한다면 올바른 미래를 열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역사속의 과거는 현재를 향해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야하는 지를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외쳤던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신명기에서 지나온 40년의 역사를 회상하며 뒤를 돌아보게 합니다. 왜냐하면 과거로부터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신앙이 그들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미래를 향해 담대하게 걸어가게 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지나간 시간 속에서 일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명령은, 아직 걸어가야 할 길이 남은 자들이라면 반드시 들어야 할 음성입니다.

역사 속에서 일하신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본문은 신명기에 나오는 모세의 첫 번째 설교 부분입니다. 모세는 여기서 지나간 40년의 광야생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하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해방시키셨고, 홍해를 가르고, 광야로 나오게 하셨으며, 광야에서 사는 동안 그들을 먹이고 입히고 기르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외칩니다.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며 성공과 실패의 이유를 기억하고 그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 나아갈 미래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래서 서두에 이렇게 선언합니다.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1절) 이 말은 과거의 실패의 원인을 알려주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실패한 것과 순종하여 얻은 성공의 열매를 동시에 생각나게 하는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성공과 실패의 일체의 비결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자세는 ‘강하고 담대함’입니다.

여호수아를 부르셔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신 하나님이 그에게 맨 먼저 요구하신 것이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며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 1:8) 그 길이 평탄하고 형통한 것의 근거는 주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것이며, 그 순종을 위하여 필요한 덕목이 강함과 담대함이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심리적으로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그 말씀에 순종하기 위한 마음의 강함과 담대함을 요구한 것입니다. 과거로부터 거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어떻게 행하셨는지, 그 일하신 흔적과 증거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삶의 모든 여정들 중에 하나님과 상관없이 지나온 순간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과거를 회상하며 언제나 함께 하셨던 그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 미래를 향한 그들의 현재를 굳건하게 만드는 비결이었습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광야에서 살아온 모든 삶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가르쳐주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40년 동안 광야 길을 걷게 하셨고, 그들을 낮추시며, 그들의 마음을 시험하사 명령에 순종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광야에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갈 것을 명령하시고, 말씀에 순종함으로 사는 것을 온 몸으로 배우게 하셨을까요?

가나안을 향해 걸어가는 그들이 약속의 땅에서 살아야할 삶도, 광야에서 살았던 것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말씀과 교훈과 규례와 명령에 순종하는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나를 먹는 일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먹을 수 있었고, 불순종하는 자는 굶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출애굽기 16장에 가면 광야에서 처음으로 만나가 내리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양식을 비같이 내리겠다고 하시면서 백성들이 날마다 나가서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매일 나가서 거두는지 그렇지 않는지 시험하시겠다는 말씀과 함께 만나를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아울러 하십니다. 여섯째 날에는 안식일 분량까지 갑절로 거두라고 말입니다.(출 16:3~5)

매일 아침 나가서 만나를 거두어야 했습니다. 만일 다음날 분량까지 미리 거두어두고, 그 다음날 나가지 않으면 그날은 굶어야 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자기 경험을 앞세워 이틀 분을 미리 거두면 곰팡이가 생겨서 먹지 못하는 경험을 했고, 안식일 전날에 안식일 분량까지 거두지 않은 자도 굶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의 양식인 떡 보다 먼저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셨습니다.(신 8:3) 광야에서 이 훈련을 40년 동안 뼛속 깊숙하게 박히도록 훈련하신 이유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도 말씀에 순종하는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땅이 될 수 있는 조건은 하나님이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필요한대로 내려주시는 데 있었습니다. 그 땅에 거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그 땅 거민들의 종교와 우상에 빠져서 하나님의 진노를 샀을 때 하나님은 하늘의 문을 닫으셨고 가나안 땅은 척박한 곳으로 변했습니다. 엘리야 시대에 일어났던 일이었습니다.

종교개혁주일을 맞으면서 개혁자들이 외쳤던 ‘오직 성경’이 구호로만 존재하는 것 같은 현실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신이 복음주의자라고 하는 어떤 이들은 성경의 영감을 부인하고, 어떤 이들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진리를 부인하며, 또 어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을 얻는 진리를 부인하기도 합니다.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의 아름다운 전통을 에큐메니칼이라는 이름으로 그 중요성을 약화시키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개혁자들의 아름다운 전통을 에서처럼 팥죽 한 그릇에 팔아넘기지 않아야 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계시하셨던 하나님을 신학과 삶의 중심에 놓으려 했던 운동이 종교개혁이었습니다. 교회연합이라는 미명 하에서나, 복음주의라는 이름으로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의 아름다운 전통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를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하셨습니다. 그는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습니다.(요 6:32~33) 광야의 떡은 그 백성들의 육신을 위한 양식이었습니다. 보이는 만나를 통해서 보이지 않으나 그 만나를 주신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보이는 만나 이전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 먼저임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결국 순종을 통해서 떡을 먹는 자는 그 떡을 제공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압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선언하시면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먹었던 만나와 그리스도 자신을 연결시켰습니다. 만나가 육신을 위한 양식이라면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을 위한 생명의 양식이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는데 있다는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보이는 모든 것들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말씀으로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은 세속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힘으로 사는 줄 생각하면 어리석은 자요 미련한 인생으로 전락합니다. 범사에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며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는 삶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의 행적을 기억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주일을 맞으면서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의 아름다운 전통을 되새기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전통보다는 성경을 앞세우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뜻을 보여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신 그 은혜를 기억합시다. 과거의 일이라고 옛것이 아니며, 역사 속에 있었던 한 사건이라고 지금의 나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지 맙시다. 오늘 우리는 다시 생각하며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무슨 일을 행하셨으며, 그것이 오늘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 지를 말입니다. 40년의 광야 생활을 돌아보며 기억하라는 모세의 명령이 이스라엘에게 있었다면, 오늘 우리는 16세기에 있었던 개혁자들의 신학과 신앙을 돌아보며 그들의 행적을 기억해야 할 지점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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