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의서 목사(세곡교회)

다시 하나님 앞에 돌아온 백성에게 회복을 주십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삼상 7:14)

박의서 목사(세곡교회)
박의서 목사(세곡교회)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한 시대를 깨우는 설교자가 있었을 때에는 영적각성과 복음의 순전함을 지켜가려는 노력과 교회다움을 유지하려는 몸부림이 있었습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백성을 세워가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언제나 동일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그 시대의 교회와 성도들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 활동하던 시대는 영적으로 암흑한 시기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영적인 지도자 엘리는 영적인 안목이 둔해진 상태여서, 당시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두 아들의 문제나 성소에서 수종을 드는 여인들의 문제가 단순한 우발적인 범죄 정도로 생각했을지 모르나, 실상은 이스라엘의 신앙이 가나안의 종교와 혼합되어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제사장이었던 엘리의 두 아들과 성소에서 시중들던 여인들의 모습은 가나안의 종교가 실로에 있었던 성소까지 더럽힌 상황을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이것은 성소를 벗어난 온 이스라엘의 타락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엘리는 온 백성의 문제를 보지 못했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보고 계셨습니다.

말씀이 희귀한 시대

사무엘은 교육상 가장 좋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영적으로 둔해진 엘리의 수하에서 자랐으며, 홉니와 비느하스라는 제사장이 하는 행동을 보면서 자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글개역판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삼상 2:12) 그러나 흠정역 성경은 맛소라 사본의 내용을 직역하여 “그들은 벨리알의 아들들”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사무엘은 이런 환경 속에서 살고 있었지만 하나님이 그를 보호하고 계셨습니다. 급기야 사무엘상 3장에 들어가면 서두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하나님의 침묵이 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그 백성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길이 없어집니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은 방자히 행하고(잠 29:18), 나팔이 분명한 소리를 내지 못하면 아무도 전쟁을 준비할 수 없습니다(고전 14:8). 엘리가 이스라엘의 영적인 지도자로 있었을 때 하나님은 말씀의 통로였던 엘리를 외면하셨습니다. 묵시가 흔히 보이지 않고, 백성은 방자히 행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의 영광을 거두고 계셨습니다. 이제 그 증거가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쟁을 하게 되었는데, 두 번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패배합니다. 하나님이 그 백성과 함께 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이 전쟁에서 블레셋 군대는 아벡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은 에벤에셀에 진을 쳤습니다. 첫 번째 싸움에서 패한 후 두 번째 전쟁에 임할 때에는 법궤를 앞세우고 전쟁에 임했습니다. 하지만 더 큰 패배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법궤는 블레셋 사람들의 수중에 들어갔고, 엘리의 두 아들은 전사하였으며, 법궤를 빼앗겼다는 소식을 들은 엘리는 넘어지면서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의 며느리는 진통 가운데 아이를 낳으면서 죽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거둔 시대, 그 영광을 거둔 시대의 백성들은 비참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그 백성의 모습

두 번의 전쟁에서 패한 후 이스라엘은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고난의 터널을 지나고 있었는데, 그 터널로 들어간 시점이 에벤에셀 전투에서 패배한 때였습니다. 기나긴 고난의 시간과 시련의 터널을 지나면서 후회와 뉘우침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방 종교에 젖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그 물을 빼내는 과정은 긴 고난의 시간이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생각나는 단어는 에벤에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에벤에셀에 모여서 전쟁을 시작한 것이 그 시발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고난이 찾아온 이유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났고 하나님은 그 영광을 이스라엘 안에서 거두어 가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일하신 것은 에벤에셀 전쟁 이전이었습니다.

말씀이 떠나간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엘리가 아닌 다른 통로를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성소에서 잠을 자던 사무엘을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사무엘은 엘리가 자기를 부르는 줄 알고 달려갔지만, 엘리는 부르지 않았다고 하면서 다시 가서 자라고 했습니다. 이런 과정이 세 번씩이나 반복된 후에야 하나님이 사무엘을 부르신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엘리가 육신의 눈이 어두워진 것 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둔해진 증거였습니다. 전에는 하나님이 엘리에게 나타나셨지만 하나님이 그 영광을 이스라엘에서 거두어들이는 과정에서 엘리는 더이상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 자리를 사무엘이 대신하는 순간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하여 그 백성을 향한 당신의 뜻을 드러냅니다. 엘리의 집안을 향한 징계도,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도, 이제는 사무엘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새로운 지도자로 등장한 사무엘은 그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선포합니다. 온 백성을 미스바로 모이게 하고,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선포할 작정입니다. 고난의 시간이 지속되면서 그 백성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손 안에서 높아지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신앙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앞으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한나가 믿음으로 고백한 것처럼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 분”이라고 고백해야 합니다.(삼상 2:6~7) 사무엘이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이라고 했을 때 “백성들이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라고 하면서 자신들의 허물과 죄를 자복하였습니다. 이렇게 고백한 이유는 사무엘이 그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만일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회복을 향하여 나아가는 걸음이었습니다. 마음을 찢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회복을 향한 발걸음입니다.

에벤에셀에서 에벤에셀로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투에서 패하고 블레셋의 압제 속으로 들어가 고통과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항상 그들을 괴롭히던 단어는 ‘에벤에셀’입니다. 그 시작이 에벤에셀에서 싸운 전쟁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난의 긴 터널을 지나는 동안 왜 에벤에셀에서 패배하게 되었는지 자신들의 과거를 돌아보며 뉘우쳤습니다. 에벤에셀은 떨쳐버릴 수 없는 아픔이었습니다. 생각만 해도 고통스러운 단어가 에벤에셀이었습니다. 만일 여기서 모든 일이 끝난다면 에벤에셀은 영원히 아픔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향한 계획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고통과 아픔으로 마무리하지 않으시고 회복이라는 더 큰 은혜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치욕스럽고 생각조차 하기 싫은 단어인 에벤에셀이었지만, 주께서는 사랑하는 자기 백성의 아픔과 고통을 치료하시기 위하여 또 다른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전쟁으로 시작된 아픔과 고통을 전쟁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회복시키려 하십니다. 그것도 다른 백성이 아닌 블레셋과 싸움을 하게 하시고, 이번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넉넉히 이기게 하셔서 승리와 영광을 맛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앞에 모여서 그들의 허물을 쏟아내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시점에 블레셋은 총궐기하여 올라왔습니다. 아직 전쟁의 아픈 상처가 가시기도 전에 모두를 죽일 기세로 올라오는 블레셋은 위협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두려워하며 사무엘에게 자기들을 위하여 기도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사무엘이 어린 양으로 번제를 드린 후 여호와께 기도하니 주께서 응답하셨습니다. 그 날 여호와께서 큰 우레를 발하여 블레셋 군대를 어지럽게 하신 후 전쟁에서 패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아주 오랜만에 전쟁에서 승리를 경험하였습니다. 너무나 감격스럽고 영광스러운 순간입니다.

그날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우고 그 돌의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하였습니다. 에벤에셀 지역도 아닌 곳에서 전쟁을 하였고, 에벤에셀과 상관이 없는 상황이지만, 그 돌의 이름은 에벤에셀이었습니다. 이것은 아주 의도적인 이름입니다. 에벤에셀에서 시작된 아픔과 절망의 시간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다시 하나님 앞에 돌아왔을 때 그들에게 회복을 주셨습니다. 에벤에셀에서 시작된 고통을 에벤에셀로 마무리하게 하시면서, 이제는 에벤에셀이 아픔이 아닌 승리와 회복의 대명사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면 하나님의 손 안에서 회복됩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 하나님이 주시는 회복을 기다리며 그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시다. 여기에 교회의 회복을 위한 진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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