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은성 교수(총신대학교, 역사신학)

라은성 교수(총신대학교, 역사신학)
라은성 교수(총신대학교, 역사신학)

생일이나 입학을 앞둔 어린아이처럼 10월이면 마음이 설렌다. 종교개혁을 되새기는 달이기도 하고, 열매가 맺는 가을이기 때문이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더 높은 하늘을 바라보면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기까지 하다.

마음 한편에 불편함도 있다. 2년 전 한국교회는 흥분 속에 종교개혁 500주년 행사를 분주하게 치러냈지만, 오병이어로 남은 광주리를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종교개혁의 정신을 더는 언급하지 말고 현실에 충실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러나 역사를 잊고 산다는 것은 오늘만 살고 내일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기에, 다시 10월을 맞아 종교개혁의 정신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종교개혁의 정신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진리의 재발견이다. 그것은 진리 중 진리인 ‘칭의’이다. 칭의는 구원의 진리 중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가장 존경받는 교부 아우구스티누스(354~430) 마저 그 의미를 제대로 밝히지 못한 칭의 교리는 약 1000년을 지나 종교개혁 시대에 온전하게 드러났다. 우리가 종교개혁의 정신에 입각해 있거나 따르고 있는 지를 살필 수 있는 가장 좋은 잣대는 칭의 교리에 관한 질문이다.

칭의 교리는 작금에 직면한 한국 사회를 제대로 바라보도록 이끈다. 칭의는 영어로 ‘Justification’이다. 문자적으로 정당화한다는 뜻이다. 성경은 칭의를 믿음으로 얻는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뜻은 믿음으로 우리를 정당하다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정당 또는 정의(justice)를 얻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독일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영적 고뇌를 겪다가 1519년 탑의 경험을 통해 그 의미를 깨달았다. 루터는 칭의를 하나님에게 정당하다는 평가를 받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하다가, 하나님의 의라는 개념이 증오의 정의가 아니고 공의라는 깨달음으로 충격을 받았다. 그는 하나님의 정의(justice)를 추구했지만 그 의가 정의가 아니라 공의(righteousness)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이 재발견한 것은 정의가 아니라 공의였다. 하나님은 최후의 심판 때 “공의로 세상을 심판할 것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33장 1항) 그 공의에 따른 삶을 심판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와는 달리 “사악하고 불순종한 유기된 자에게 저주를 베품으로 자신의 정의를 명시”할 것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33장 2항). 이것을 정의롭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유기된 자에게 해당되고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공의로운 심판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공의(righteousness)와 정의(justice) 간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옳다고 평하는 것을 공의라고 한다면, 인간 측면에서 우리를 옳다는 것은 정의이다. 이것을 혼동한 독일 농민들은 루터가 쓴 소논문 <기독교인의 자유>를 악용하여 농민반란(1524~1525)을 일으켰다. 이 반란에 영향을 받은 스위스 일부 급진파는 함께 동조하여 재세례파를 만들었다. 기독교의 진리를 왜곡하여 사회 정의로만 사용하는 자들이다. 그리스도는 정의를 확립하려고 세상에 오지 않았고, 공의를 확립하려고 오신 것이다.

그렇다고 공의만을 행하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이 제사보다 여호와를 기쁘게 한다”고 하셨기 때문이다.(잠 12:3 참고) 공의의 실천은 곧 정의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공의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의미한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거나 전제되었다고 여기고 정의를 부르짖는 것은 급진파나 독일 농민의 주장과 다를 바 없다. 정의를 통해 하나님의 공의가 실천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공의가 각자에게 이뤄지면 자연스럽게 정의가 이뤄진다. 작은 불꽃이 큰 불을 일으키는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는 양극단에서 서로 증오하고 있다. 양측에서 나름대로 정의를 부르짖는다. 한국교회가 만일 종교개혁의 정신을 따른다면 공의를 먼저 세워야 하고 그런 후 정의로 나가야 한다. 아니 항상 공의를 기반하여 정의를 내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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