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용한 목사의 옥수동 소나타]

1998년 수원에 있는 한 교회의 청빙을 받아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독일에서 만 5년을 살았다. 독일 생활은 나의 가족에게 견문을 넓히는 좋은 기회였다. 아들딸에게도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우리 부부와 달리 지불해야 할 대가들이 많았다. 첫 번째가 공부였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 아들은 초등학교 5학년, 딸은 2학년이었다. 유년기를 독일에서 보내고, 초등학교도 독일학교를 다녔던 터라 아이들은 한국말이 서툴렀다. 자연히 학교 성적도 최하위권이었다.

하루는 학교를 다녀온 아들이 저녁밥을 먹다 말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빠! 비행청소년이 뭔지 알아?” “비행청소년? 알지. 나쁜 일 많이 하는 애들이잖아” “난 그거 오늘 알았어” 알고 보니 아들은 그날 학교에서 ‘비행청소년’이란 단어를 처음 듣고, 아이들에게 ‘비행기를 타는 청소년’이냐고 물었다가 놀림을 당했던 것이었다. 다행히 아들과 딸은 시간이 지나 한국말이 늘면서 공부도 곧잘 하게 됐다. 초등학교 시절 하위권을 맴돌던 아들은 중학생이 되면서 점차 성적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3학년을 졸업할 무렵에는 전교 10등 안에 들 정도였다.

아들이 공부를 잘하게 된 것은 감사한 일이었으나 뜻하지 않게 고민이 생겼다. 아들이 다니는 중학교 학생들이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50% 정도가 강남으로 위장전입을 한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동호대교를 사이에 두고 우리가 사는 옥수동과 강 건너 압구정동은 많은 것들이 차이가 난다. 학군도 마찬가지이다. 압구정동을 비롯한 강남은 우리나라 최고 학군답게 소위 잘 나가는 고등학교들이 즐비했다. 나는 처음에는 뭐 그럴 필요까지 있냐고 웃어 넘겼지만, 옥수동에서 공부 잘하는 애들은 보통 다 그렇게 한다며 강남으로 안가면 좋은 대학 가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는 말까지 듣게 되자 적잖이 고민되기 시작했다.

내가 고민했던 것과 달리, 아내는 위장전입 문제에 대해 확고했다. 아들은 강남으로 안 가면 자기는 대학이고 인생이고 다 포기하는 것이라고 떼를 썼지만, 아내는 옥수동에 살면서 위장전입은 절대 할 수 없다며 단호했다. 다른 사람들이 다 한다고 목사인 나마저 나라가 세운 법을 어길 수는 없었다. 세상에서 별 일 아닌 일이 그리스도인에게는 별일 일 때가 많은데 나에게는 위장전입의 유혹이 그 별 일이었다.

나는 아들에게 “하나님께서 더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자. 요셉을 봐라”고 말했다. 그 말은 아들에게 하는 말이자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고맙게도 아들은 내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아들과 나는 위장전입을 하지 않는 대신 그나마 집에서 가깝고 옥수동에서 알아주는 고등학교에 가게 될 것을 기대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을 믿는 마음으로 위장전입을 포기했으니 하나님께서 그 정도는 이루어주실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새해가 되고 아들은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집에서 꽤 먼 중구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우리 아파트에 사는 다른 아이들은 다 좋은 학교에 배정되었는데 자기만 원치 않는 학교에 가게 되었다고 눈물을 쏟았다. 나는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더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자”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아들 대학 졸업식장에 참석한 호용한 목사 가족.
아들 대학 졸업식장에 참석한 호용한 목사 가족.

우리는 하나님의 광대하신 뜻을 감히 상상도 못한다. 하나님은 아들의 원망의 눈물을 기쁨의 눈물로 바꾸셨다. 아들은 3년 후 우리나라 최고 대학교 경영학과에 합격했다. 그 고등학교에서는 23년 만에 처음 있는 경사였다. 과외도 제대로 받지 않았지만 고등학교 입학 이후 전교 1등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아들은 대학 합격 통지를 받은 날 나에게 “아빠 말씀대로 정말 하나님께서 더 좋은 길로 인도해 주셨다”고 말했다. 아들의 이 고백은 고스란히 나의 고백이기도 했다.

하나님은 그를 믿고 의지하는 자들에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다. 나는 보상을 바라면서 이웃을 돌아본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우리 가정에 많은 복을 주셨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네 떡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전 11:1)는 말씀은 명령인 동시에 또한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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