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다시 개혁주의 신학을 논한다 ③ 일체성과 다양성
[특별기고] 다시 개혁주의 신학을 논한다 ③ 일체성과 다양성
  • 이재서 총장
  • 승인 2019.10.08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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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성 없는 다양성은 불가능 … 참된 일체성 중심으로 다양한 삶의 영역서 말씀 가지고 싸워야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성령의 기치 높이 세우자
 

이재서 총장 (총신대)
이재서 총장 (총신대)

대학을 영어로 유니버시티(university)라고 한다. 이 단어는 유니티(unity)와 디버서티(diversity)가 결합하여 생긴 단어라고 한다. 이 말의 어원보다는 실제로 서구의 대학은 원래 신학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신학을 중심으로 다양한 학문들이 일체성을 이루어 시작했다.

미국의 최고 명문 하버드 대학은 존 하버드(John Harvard) 목사가 신학도 배출을 위해 기부한 재산의 반을 기반으로 1636년 매사추세츠 주에 세웠다. 그러다가 의과대학이 1782년, 법과대학이 1817년, 경영대학이 1908년에 세워졌다. 하버드 대학 여러 문들 중에 1889년에 세워진 존스턴 문(Johnston gate)이 있다. 이 문 옆 벽에 동판이 심겨져 있고 그 안에 이러한 내용이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뉴잉글랜드로 안전하게 인도하셨고 우리는 삶에 필요한 집들과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한 편리한 건물을 지었고 정부 기관을 세웠다. 그 다음 우리가 오랫동안 바라고 살폈던 것은 목사들로 무지에서 벗어나 배움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청교도 정신으로 세운 하버드대
하버드 대학은 청교도 정신을 바탕으로 목사 양성을 목적으로 세워졌다. 또한 하버드 대학의 로고를 보면 방패 위에 책 세권이 놓여있는데, 한권 위에 VE, 다른 책 위에 RI, 세 번째 책 위에 TAS라는 단어가 기록되어 있다. 베리타스(VERITAS) 즉 라틴어로 진리라는 말이다. 그런데 원래 로고에는 방패 주변 리본에 <CHRISTO ET ECCLESIAE> 즉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한 진리’라는 단어들이 로고 주변에 새겨져 있었다. 그리스도와 교회가 다양한 학문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와 교회를 중심으로 다양한 학문들이 일체성을 이루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본주의가 학교를 장악하면서 ‘그리스도와 교회’라는 글은 없애고 베리타스(VERITAS)만 남겨뒀다. 인본주의자들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한 진리가 아니라 자신들을 위한 진리를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일체성을 파괴하고 다양성만 추구하겠다는 의도였다.

일체성 없이 다양성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일체성 없는 다양성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 인본주의자들은 그리스도라는 일체성 대신에 모방된 일체성으로 대체시켰다. 그 모방된 일체성은 다름 아닌 인간의 자율성(autonomy)이다. 인간 스스로가 법이 되고 기준이 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법, 그리스도의 통치 대신에 인간의 법과 통치로 대체한 것이다.

대학의 학문은 단순히 교과서에 기록된 내용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삶의 영역을 반영한 것이다. 예를 들어 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질학, 천문학, 식물학 등의 과학 분야들은 실제적 우리 삶에 있어서 자연세계의 다양한 모습을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자연세계의 다양한 모습은 자연의 이치 혹은 자연의 원리라는 일체성을 전제하고 있다. 그 일체성으로 말미암아 서로 연관성을 이루고 있고 또한 각자 분야에 독립성도 주어진다. 따라서 각 과학의 학문들도 자연의 이치나 자연의 원리를 일체성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체성을 파괴하고 각 학문이 가능할까? 결코 가능하지 않다. 혹 각 학문이 일체성을 무시하고 각자 분야에서 연구를 한다고 해도 그 일체성을 알게 모르게 이미 의지하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면 일체성 없이는 연구자체가 처음부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본인은 개인적으로 신학적 개념들 중에 ‘영역주권’(Sphere sovereignty)처럼 개혁주의를 잘 표명하는 개념은 없다고 생각한다. 아브라함 카이퍼가 처음 주장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해 온 개혁주의 전통에 처음부터 흐르고 있었던 개념이다. 영역주권이란 종교, 문화, 사회, 교육, 정치, 경제, 예술, 과학, 복지 등 모든 인간의 활동영역들이 서로 연계가 되지만 각 영역 나름대로의 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신학을 공부한 목사가 의학 분야에 있어서 의사보다 더 권위가 있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학교에 학교 나름의 고유 주권이 주어져야지 교회 혹은 교단이 학교 행정과 교육에 개입하는 것은 개혁주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영역의 주인이시다. 의사나 교수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것이지 목사의 통치 아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의학 영역을 통치하시는데 신학자가 마치 하나님인 양 의학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모든 영역은 말씀으로 연결돼 있어
모든 영역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중심으로 일체성을 이루고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성경은 모든 영역의 절대적 기준이다. 모든 영역들이 성경을 중심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호관계성으로 인해 각 영역의 고유주권이 파괴되거나 무시될 수 없다.

성경은 목사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성경은 모든 영역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신학 영역만 아니라 모든 영역들의 기준이다. 의사도, 경제인도, 사회복지사도, 교수도, 예술인도 모두 성경을 자신들의 기준으로 삼아 활동해야 한다. 본인은 결코 목사의 권위 혹은 교회나 교단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존중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를 다같이 받고 다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자는 의미이다.

사실 성경은 의술에 대해서, 투자에 대해서, 상세한 복지이론을 말씀하시지 않는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리는 말씀한다. 예를 들어, 모든 영역의 목적과 가치와 이유와 근원 등을 말씀한다. 그리고 모든 영역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성경을 떠나서는 알 수 없다. 따라서 각 영역의 전문가들의 권위가 성경의 권위 위에 설 수는 없다.
그러면 다양한 학문들이 어떻게 성경을 중심으로 일체성을 이루고 성경의 원리를 따라 각 다양성과 독립성을 지향할 수 있는가? 이에 개혁주의 세 가지 원리를 소개하고자 한다.

오직 성경
먼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다. 성경은 단순히 우리 해석의 대상이나 우리 이해의 대상이 아니다. 다양한 학문을 추구하는 우리 해석도, 이해도, 이성도 성경에 순복해야 한다. 그 이유는 이 모든 것의 근원과 본질은 하나님께로부터 오고 그 하나님을 아는 유일한 길은 성경이기 때문이다. 고린도후서 13장 8절에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라고 말씀한다. 우리는 오직 성경을 위할 뿐이다. 오직 성경에 순종하는 것뿐이다.

물론 성경을 읽고 이해하고 해석함에 있어서 우리의 지성과 이성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농부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 말씀대로 순종하고 그대로 살라는 것이다. 혹 해석하기 힘든 구절이 있다면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실 것이다. 만약 우리가 성경을 단순히 우리의 해석, 이해, 판단 대상으로 본다면 그 순간 우리도 오늘날 세상처럼 진리 말씀을 상대화 하거나 우리 취향이나 의도에 맞춰 진리를 왜곡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맹신하라는 것은 아니다. 이성이 일체성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이 그 일체성을 이룬다는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
둘째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이다. 요한복음 1장 18절에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말씀한다. 여기 “나타내셨느니라”는 헬라어 원형은 엑세게오마이()이다. ‘해석하다.’ ‘설명하다.’라는 뜻이다. 즉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고 또 볼 수도 없기 때문에 독생하신 하나님, 즉 예수 그리스도가 그 하나님을 해석하고 설명하고 나타내 보이시려고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의 창조주이시고 모든 것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사람이시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알 수 없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본체요 그 형상이요 말씀이신 것이다.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고 따르지 않으면 다양한 학문이나 영역이 일체성을 이룰 수 없다. 달리 표현하면 모든 학문들이나 삶의 영역이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직 성령
셋째 “오직성령”(Solus Spiritus)이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 주님은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신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도 보혜사요 성령도 보혜사라는 의미로 ‘다른 보혜사’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주님은 요한복음 16장 13절에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말씀하셨다.

그리스도도 진리이시고 성령도 진리이시다.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수호하고 진리를 전할 수 있도록 하시는 분이 성령이시다. 그 성령은 그리스도와 분리되어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들은 것을 말하시며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시고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신다(요 14:26). Solus Spiritus는 곧 Solus Christus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일체성을 이루기 원하고, 그의 통치를 받고, 그를 전파하기를 원하고, 그를 존귀케 하기를 원한다면 성령을 더욱 사모하고 성령을 더욱 의지해야 한다. 성령은 바로 우리 안에 내주하시기 때문에 그 분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우리의 구체적인 가이드가 되신다.

하나님 말씀 들고 나가야
카이퍼는 “모든 것의 주권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내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 것은 한 치도 없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모든 영역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내쫓고 자신들이 왕이 되고 자신들의 이성을 기준으로 삼는 세속주의, 인본주의, 물질주의를 대항하여 참된 일체성을 중심으로 다양한 학문을 연구하며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성령의 기치를 높이 세우고 진리로 허리를 띠고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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