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형은 목사(남북나눔 이사장.말씀삶공동체 성락성결교회)

지형은 목사(남북나눔 이사장.말씀삶공동체 성락성결교회)
지형은 목사(남북나눔 이사장.말씀삶공동체 성락성결교회)

역사에는 우연이라고 부르는 일이 일어난다. 그것을 기독교 신앙으로 말하면 섭리다. 모든 것을 오로지 당신의 주권으로 이끄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뜻이다. 사람의 지혜나 시각으로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으니 변수라 부르기도 한다.

필자는 1989년 9월에 독일로 유학을 갔다. 그해 11월이었다. 어느날 라디오를 듣는데 독일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아직 텔레비전을 사지 못한 때였다. 독일어 듣기가 충분치 않아 정신을 집중하고 들었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것이었다! 내가 살던 집이 보쿰 중앙역 바로 근처였다. 밖으로 나가보니 중앙역에 사람들이 모여서 감격하며 난리가 났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생긴 냉전의 산물 중 가장 대표적인 독일 분단의 장벽은 그렇게 무너졌다.

일주일 전까지 누구도 베를린의 동서를 가로지른 장벽이 이렇게 무너질 줄 몰랐다. 장벽 붕괴 후 1년 뒤 통일독일의 초대 수상이 된 서독의 콜 수상도 이를 예상하지 못했다. 예측하지 못했으니 변수요, 어떤 이들은 역사의 우연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장벽 붕괴까지 이르는 시간의 흐름과 그와 연관된 일들을 생각해 보면 이 사건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독일은 끊임없이 동방정책을 추구했다. 1969년 서독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추진한 이 정책의 기본 방향은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았다. 목적은 물론 독일의 통일이었다. 동방정책을 추진할 당시는 물론 이후 동서독 상황과 소련을 포함한 유럽의 상황이 그런 정책을 추진할 자연스러운 조건에 있었던 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기독교적인 표현으로 말한다면, 평화의 상상력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성을 보고 우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다. 누가복음 19장 41~42절이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 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주님은 예루살렘의 처참한 멸망을 내다보면서 이 말씀을 하셨다. 주님은 이스라엘이 평화에 관한 일을 알기를 간절히 바라셨다. 예루살렘이 초토화되고 18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나라 없이 세계를 떠돌면서 온갖 굴욕을 당하는 것은 주님께서 바라신 것이 아니었다. 어린이 150만명을 포함하여 600만명이 넘는 유대인이 히틀러의 나치제국에 의하여 학살당하는 것도 주님의 바람이 결코 아니었다. 주님의 간절한 소원은 샬롬, 곧 하나님의 평화였다.

삶의 현실과 신앙의 당위 사이에서 기독교적인 가치관이 작동한다. 현실에 너무 매몰되어 성경적인 명분과 당위를 보지 못하면 포장은 기독교인데 사실은 기독교가 아닐 수 있다. 반대로 신앙적 당위만을 붙잡고 현실의 아픔과 갈등을 고려하지 못하면 탁상공론이 될 가능성이 많다. 중심은 완결된 유일한 계시의 말씀인 66권 성경이다. 이것이 유일한 토대다. 이 기초 위에 세워지지 않은 모든 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결국은 허물어질 것이다.

남북 분단의 상황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 목적지는 통일이다. 이 두 가지에 관해서는 대부분 이견이 없다. 문제는 과정이다. 적어도 그리스도인과 교회에게 과정은 복음적이어야 하며 그것이 평화다. 현실적으로 보면 인간 역사에서 평화는 힘에 의한 평화가 가장 일반적이다. 군사력, 경제력, 정치력 등의 힘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그저 순수한 형제애를 통하여 지속되는 평화는 현실적으로 난망하다. 힘에 의한 평화라도 좋다. 중요한 것은 두 대립적인 용어 곧 ‘전쟁과 평화’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평화라는 사실이다. 선의를 가진 상황에서도 피치 못할 전쟁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명제적으로 ‘통일의 과정이 전쟁이어야 한다’는 것은 기독교적 가치관이 아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복잡한 상황에서 실제 정치적인 사안은 각국의 정상들을 비롯한 전문가들이 풀어가야 할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평화의 상상력을 잃지 않는 것이다. 거룩한 말씀을 경청하고 깊이 기도하면서 평화의 상상력을 키워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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