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용한 목사(옥수중앙교회)

언젠가부터 나는 배우자가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가난하게 자라온 이유도 있었지만, 평생 목회자로 살 텐데 어떻게 가족을 부양할까 하는 걱정이 더 큰 이유였다. 당시 신학대학원생 중에는 결혼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가난했다. 점심을 못 먹는 것은 물론이고, 등록금을 못 내 휴학을 해야 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그런 모습을 자주 보면서 직업을 가진 배우자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아내는 내 목회의 묵묵한 응원단이자 위로자이다.
아내는 내 목회의 묵묵한 응원단이자 위로자이다.

하나님은 그런 나를 불쌍히 여기신 것 같다. 1986년 12월, 대학 후배가 자기 교회 선배 언니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나섰다. 후배는 나를 실력 있는 전도사이자 한창 잘 나가는 <생명의 양식> 편집장이라고 소개했다며, 약속한 자리에 꼭 나가야한다고 등을 떠밀었다.

그 해 12월 27일, 성탄절이 지난 토요일 오후 이화여대 후문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서 지금의 아내를 처음 만났다. 아내는 아담한 키에 이목구비가 오목조목하고 무엇보다 마음이 넓어보였다. 아내는 7남매 중 넷째로 가족 중 유일하게 교회를 다니고 있었다. 내 마음에 더 각별했던 것은 아내가 H대학의 연구소에 다니는 직장인이었고, 거기다 내가 막연하게 동경했던 연세대학교 출신이라는 점이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중에 아내는 “연애할 사람이 아니라 결혼할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때 나는 꼭 서른 살이었는데, 결혼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사람을 만날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그날 이후 기도를 하면서 나는 하나님께서 결혼을 순적하게 이끄신다는 것을 느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연히 소개받은 여성이 그동안 내가 기도했던 배우자 상과 그렇게 꼭 맞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아내는 나를 처음 만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아내의 마음속에 조용히 “너는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고, 그때 아내는 ‘주님의 도구가 되는 일’이라고 고백했단다. 결혼이라는 중대한 사건을 앞두고 하나님께서는 아내에게 다시 한 번 신앙고백을 요구하신 것이다. 아내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너무 기쁜 나머지 저절로 ‘이와 같은 때에 난 노래하네’라는 찬양을 불렀다고 한다.

월요일 저녁 아내와 두 번째 만난 자리에서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 결혼하자”며 프로포즈를 했다. 내 진심이기도 했지만, 그때까지 이렇다하게 이성교제를 못해봤던 나는 멋있게 프로포즈를 할 줄도 몰랐다. 내 제안에 아내는 “저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이틀 만에 결정한 축복의 시간이었다.

목사의 배우자가 되는 것이 본래 아내의 꿈은 아니었다. 참 그리스도인을 배우자로 만나 평생토록 하나님의 도구로 살기를 원했지만, 그 길이 목사 아내여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 나를 만나면서 가장 높은 가치를 향해 걸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결혼을 결심했고, 결과적으로 그 길이 사모의 길이 되었다.

우리는 지금의 서빙고 온누리교회 건물이 세워지기 전에 있던 가건물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자는 고 하용조 목사님이셨다. 아내는 나를 만나기 전 하 목사님이 인도하셨던 신촌 두란노서원 성경공부반에서 2년 동안 성경을 배웠는데, 그때 막연히 하 목사님께서 결혼 주례를 해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 바람이 이루어졌다고 무척이나 기뻐했다.

사모에도 여러 유형이 있지만 내 아내는 조용한 내조형이다. 교회에서도 있는 듯 없는 듯하고, 말하기보다 듣는 자리에 있을 때가 많다. 특히 고마운 순간은 내 목회를 묵묵히 응원하고 위로해 줄 때다.

우리 교회 구제사역이 언론에 많이 알려지면서 기쁠 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부끄럽다. 구제사역을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내 전 재산을 털어서 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칭찬을 받아도 되나 염려가 생기곤 한다. 그때마다 아내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고 지금까지도 충분히 좋은 일을 해 왔다”며 격려한다.

아내의 위로가 나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 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아내는 내 인생의 동반자이자 동역자이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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