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규 목사(가창교회)

박용규 목사(가창교회)
박용규 목사(가창교회)

영화 <히말라야>에서 엄홍길 대장의 인터뷰 장면이 나온다. 기자가 질문한다. “수많은 산을 오르면서 얻게 되는 교훈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에 엄 대장은 대답한다. “산은 정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산이 허락할 때 잠시 정상에 올라가 보는 것이죠. 산에 오르면 대단한 것을 찾을 수 잇을 것 같죠. 7000미터에 올라가면 어떻게 살 것인가 해답이 떠오를 것 같고, 8000미터 정도 올라가면 ‘삶이 무엇인가?’ 하는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절대로 그런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거기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뿐입니다.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제가 몰랐던 제 모습이 나옵니다. 그동안 쓰고 있던 모든 가면이 계속 벗겨지는 것이죠. 가면이 계속 벗겨지면 본색이 나옵니다. 보통 사람들은 그 맨 얼굴을 모르고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인간은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때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게 된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민낯을 마주하며 하나님이 무엇을, 어떻게, 왜 요구하시는가를 발견하지 못하면 수많은 성공의 사다리는 신앙과 현실을 떠난 피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제임스 패커(J. I. Packer)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 지식이 하나님을 아는 자신의 지식을 측량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 시대 교회 지도자들인 목사, 장로들이 수많은 종교적 치장을 하고 종교의 기득권을 갖고 있지만 정말 하나님을 알고 있을까? 오늘날 기독교의 복음은 단지 영혼구원과 개인의 경건에만 제한돼 복음의 공공성은 내팽개쳐 있는 모양새다. 그러니 거룩의 모양은 있지만 비도덕적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가끔 언론에서 거론되는 교회 지도자들의 민낯을 볼 때 목회자로서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다. 동기와 과정보다 결과를 더 중시하는 성공주의 목회는 교회공동체 속에 수많은 부작용을 양산해 왔고, 영적 자정능력 마저 잃고 말았다.

우리는 언제나 ‘장자교단’, ‘개혁신학’을 입버릇처럼 운운했지만 장자교단의 위상은 무너졌고 개혁신학마저 이미 실종되어 버린 지 오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교단이 산하 교회와 성도들을 뿌리와 열매로 인식하지 않고 교단정치를 위한 하부구조로 변질시켜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103회 총회는 변화에 대한 절박함을 인식하고 건강하고 생산적인 총회를 위한 희망의 불씨를 살렸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변화는 교단의 제도와 시스템만의 변화가 아니다. 아직도 맘몬의 가치를 추구하는 반신앙적 정치 문화의 구태를 쇄신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앞에 자신의 민낯을 내어놓아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이 일어난다.

‘종교’와 기독교의 계시인 ‘성경’은 다른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변화는 가치관의 변화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깨달으면 세상과 인간 자신을 보는 내적인 사고의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즉, 자기중심성을 벗어나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으로 전환될 때 변화는 시작되는 것이다. 그때야말로 나르시시즘을 양산하는 한국교회 목회구조의 사슬에서 벗어나 성육신적이며, 자기비움의 영성으로 채워지게 된다. 진정한 변화는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새사람을 입게 되는 것이다.(엡 4:24)

기독교의 복음은 어떤 일을 행하는 것보다 어떤 사람이냐 하는 문제를 더 강조한다. 복음은 우리의 행동보다 태도에 훨씬 더 무게를 둔다는 것이다. 즉, 존재(being)가 행함(doing)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제 곧 제104회 총회가 열린다. 104회 총회를 기다리는 많은 총대들과 교단 구성원들은 어김없이 기대하는 바가 있다. 변화 너머의 회복과 진정한 성경적 가치관을 실현하는 교단의 모습을 기대한다. 그러나 오랜 기간의 학습으로 익숙해져있는 구태의연한 정치지형의 변화 없이 진정한 회복이 가능할까 하는 염려도 있다. 진정한 회복은 무엇일까?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서, 교회가 복음의 영광을 회복하는 길 뿐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교리적 이해나 지적 동의를 구하기 전에 ‘예수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원초적인 신앙고백을 해야만 한다. 그때 복음은 우리의 깨어지고 뒤틀려진 내면의 세계를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다.

이번 104회 총회에서는 장자교단의 위상과 품격에 맞는 회의문화를 만들어 가자. 그 질서정연함과 성숙 속에서 교단과 교회가 추구해야할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자. 이를 위해 총회총대 한 사람 한 사람의 성경적 가치와 판단을 통해서 변화를 넘어 회복으로 가는 길을 열어 주기를 바란다.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관계의 회복이라면, 조국교회에 베푸신 하나님의 영광을 다시 회복하는 것은 무엇일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 민낯을 내어놓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총회가 되기를 기다리고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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