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어람’하면 양희송 대표가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런 그가 면직되었다는 놀라운 뉴스를 접했다. 이유가 부끄러운 불륜 때문이란다. 수년간 아내 모르게 다른 여성과 관계를 맺어왔다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의 고백대로 가족에게 큰 고통, 주변인들에겐 실망을 안겼다.

모두가 갖는 배신감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이 세상이나 교회의 잘못을 지적하며 스스로 선지자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미투 운동’이 펼쳐질 때 ‘성폭력에서 안전한 교회를 위하여’란 캠페인에도 참여했었다. 또 오랫동안 한동대에서 기독교세계관을 강의하기도 했다. 제도권 교회에 대한 비판을 일삼고 몇몇 성범죄 목사 비판 뿐 아니라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한 명성교회나 사랑의교회 문제에도 칼날을 세웠다. 기독교반성폭력센터,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교회개혁실천연대, 뉴스앤조이, 복음과 상황 등의 진보적 기독교 언론이나 사회활동에 적극적이었다. 최근에 그가 개입하며 구축된 온라인 사이트 ‘교회 가는 길’은 교회에 실망한 이들에게 ‘다닐만한 교회’를 소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서울대에서 전자공학, 영국에서는 신학. 이런 학력은 학벌주의에 찌든 우리 사회에서 신뢰성을 담보하기에 충분했다. 그런 그가 추락했다. 그렇다고 그를 손가락질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누구라도 큰소리 칠 수 없다는 경고의 메시지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야 한다. 우리도 같은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교단 내부에도 손가락질 정도가 아니라 고소고발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이 누군가를 지적할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인사들에 의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라.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은 채 정죄에만 빠르고 정의가 아닌 이익을 취하려는 자들의 협박성 ‘지적질’은 이제 그쳐야 한다. 정의를 세우는 일이라면 모두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자기 죄는 감춘 채 이해관계에 따라 고발을 일삼는 것은 모두에게 불행한 일일뿐이다. 먼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특히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보았다면 나도 그런 죄가 없는지 돌아봐야 하는 것은 바울 사도의 지적 때문만은 아니다.

조심해야 한다. 누군가를 향해 손가락질 하려면 먼저 나부터 살펴야 한다. 정의를 세우기 위한 지적과 선지자적 태도를 포기하자는 말이 아니다. 먼저 나 스스로에 대한 점검과 지적이 전제되지 않는 한 항상 자기함정에 빠진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나를 건강하게 지키지 않는 한 정의 세우기는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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