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신대 양지와 사당캠퍼스에 각각 기념도서관ㆍ기념홀 제정

현판식ㆍ명명예배 드려

총회(총회장:이승희 목사)가 제101회와 제100회 총회에서 결의하고도 총신사태로 시행하지 못했던 고 박형룡 박사 기념도서관 명명예배와 고 백남조 홀 명명예배가 열렸다. 행사에 참석한 총회와 총신대 관계자들은 두 지도자들의 업적을 기리며 제2, 제3의 박형룡 박사 백남조 장로 같은 인물이 많이 배출되기를 소원했다.

박형룡 박사 기념도서관 명명 현판식을 총신대신대원 양지도서관 로비에서 진행하고 있다.
박형룡 박사 기념도서관 명명 현판식을 총신대신대원 양지도서관 로비에서 진행하고 있다.

박형룡 박사 기념도서관 현판 제막식과 명명 감사예배는 9월 6일 양지 총신대신대원 도서관에서 거행됐다.

예배 설교에서 이승희 총회장은 “양지도서관의 명칭을 박형룡 박사 기념도서관으로 바꾼 것은 도서관에서 학문을 연마하는 사람들이 박 박사를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면서 “박형룡 박사를 기억하면서 땀흘려 신학을 연구하고 신학을 목회현장에 잘 녹여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일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고 권면했다.

축사를 한 서기행 증경총회장은 “박형룡 박사가 생전에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개혁보수신학을 위해 자신의 한 몸을 바쳐 헌신하겠다고 말하면서 엉엉 울었던 것을 기억한다”면서 “박 박사의 순교적 신학이 교단의 초석이 되었다”고 회고했다. 학교측에서는 정용덕 법인이사장과 이재서 총신대 총장이 인사했다.

벡남조 기념홀 현판식에 참석한 총회와 총신대 관계자들이 제막식을 마치고 박수하고 있다.
벡남조 기념홀 현판식에 참석한 총회와 총신대 관계자들이 제막식을 마치고 박수하고 있다.

이에 앞서 9월 3일 총신대학교에서는 종합관 대예배실을 ‘백남조 기념홀’로 제정하는 현판 제막식과 기념홀 명명예배가 있었다.

이날 행사에는 고 백남조 장로의 자녀들이 참석해서 인사했으며 학교에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벡성기 장로는 답사에서 “저희 선친은 사당동 부지 헌납, 학교법인 총회신학원 설립, 총신의 대학 인가, 신학대학원 양지캠퍼스 조성 등에 헌신해왔다”면서 “이 헌신을 기억하여 ‘백남조 기념홀 명명 감사예배’를 드리도록 힘써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또 백 장로는 “원래 선친께서는 전도하라는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여 혼자 전도했고 나중에는 전도인을 고용하여 전도하셨다”면서 “이어 더 큰 전도를 하려면 교역자를 양성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총신을 위해 헌신하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고 효암 백남조 장로(1913~1988)는 중소기업가였지만 제대로 된 캠퍼스가 없던 총신을 위해서 1965년 사당동 부지 1만8000평을 헌납했다. 그 부지 위에 사당동 구 본관이 세워졌고 이를 토대로 총신은 도약의 전기를 맞았다. 백 장로는 총신대학교 초대 이사장을 시작으로 제6대 이사장까지 21년을 봉직하면서 총신을 위해 헌신했다. 그는 성지순례를 마다했고, 고희 기념식도 거부했으며 매일 세 차례 가정기도회를 드리며 총신을 위해 기도했다고 한다.

죽산 박형룡 박사(1897~1978)는 남산 장로회신학교 초대 교장, 총회신학대학교 초대 학장 등을 역임했으며 교단 신학을 보수하고 확립한 신학자다. <기독교 근대신학 난제 선평> 등의 저서가 있으며 사후에 후학들이 <박형룡 박사 저작 전집>(20권), <교의신학>(7권) 등을 발간해 그의 신학을 소개했다.

한편 총회는 이같은 두 지도자의 공로를 기려 제100회 총회와 제101회 총회에서 종합관 대강당과 양지도서관 명칭 변경을 결의했으나 총신사태로 인해 지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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