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창고 벽에 세 명의 모습을 그려놓고 그들을 향해 총을 쏘는 연습을 했다. 어느 날 나는 마당에서 놀다가 그 광경을 보게 됐다. 결국 안중근은 하얼빈으로 가서 일본군 우두머리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러시아 연해주에서 항일투쟁 조직을 결성하고 안중근 의사를 비롯해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지원했던 최재형 선생. 최 선생의 다섯째 딸인 올가는 어린 시절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준비하던 모습을 이렇게 기억했다. 최재형 선생이 얼마나 독립을 열망하며 실천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민족을 향한 최재형 선생의 삶과 열정을 담은 책 <나의 아버지 최재형>(도서출판 상상, 사진)이 나왔다. 이 책은 최 선생의 자녀인 최올가 페트로브나와 최발렌틴 페트로비치가 생전 아버지를 기억하며 써놓은 육필 원고를 정리한 것이다. 육필 원고는 최 선생의 손자인 최발렌틴 회장(러시아독립유공자후손협회)이 보관하고 있었다. 최재형 선생이 순국한 지 99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 

<나의 아버지 최재형>은 2부로 구성됐다. 1부는 최올가의 육필 원고로, 2부는 최발렌틴의 원고이다. 두 자녀는 아버지와 보낸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1920년 4월 5일 새벽 최 선생이 일본군에 체포된 당시의 상황과 이후 이유 없이 체포돼 수용소 생활을 하는 등 힘들었던 삶을 기록했다. 

최올가는 1905년 태어나 모스크바에서 공과대학을 졸업한 후 엔지니어로 일했다. 1937년 이유 없이 체포돼 강제노동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2001년 세상을 떠났다. 최발렌틴은 1908년 태어나 농업기사로 일하다가 1938년 이유 없이 체포됐다. 카자흐스탄 농업국 본부장을 역임했으며 1995년 사망했다. 

<나의 아버지 최재형> 출판을 지원한 단체는 사단법인 한민족평화나눔재단(이사장:소강석 목사)이다. 한민족평화나눔재단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를 재조명하는 사업을 진행해 왔다. 지난 4월 국회문화체육관광위원장 안민석 국회의원 등과 함께 최재형 선생 순국 100주년 추모위원회를 출범시켰고, 8월 12일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시에 ‘최재형 선생 기념비’도 세웠다. 

소강석 목사는 “최재형 선생의 딸과 아들이 전하는 이야기는 가슴을 시리게 한다. 오늘의 시대와 민족의 가슴을 울리는 책”이라고 추천했다. 육필 원고를 번역한 정헌 교수(전 모스크바대)는 “독립 후에도 독립투사들의 자손들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살았는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피력했다. 

한편, 한민족평화나눔재단과 최재형순국100주년추모위원회는 9월 17일 국회의원회관 1세미나실에서 <나의 아버지 최재형> 출판기념 북콘서트를 진행한다. 이 자리에서 최 선생의 후손들이 참석한 가운데 ‘최재형 민족학교 설립추친위원회’ 출범식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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