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엄상익 법률사무소)
엄상익 변호사(엄상익 법률사무소)

개인법률사무소를 하면서 많은 목회자의 고민이나 교회 내부의 분쟁을 보았다. 도덕적 일탈을 고백하는 이도 있었고, 어떻게 하면 세습을 할 수 있느냐고 법적자문을 구하는 유명한 목사도 있었다. 더이상 십자가를 지기 싫다는 신학대학교 총장도 있었다. 수십 년 목회를 해도 신도가 없다면서 절망하는 목사도 있었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 목사는 “내가 왜 이런 고난을 받아야 하느냐”고 나에게 따졌다.

변호사를 하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 어떤 사람이든 따뜻한 시선으로 그 사람의 선한 면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죄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이성만이 아니라 영의 눈을 가져야 고난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출석하는 교회에서는 사회적 비웃음거리가 된 유명한 분쟁이 있었다. 주일이면 장로파의 교인들이 인격 살인적 내용이 적힌 플래카드와 피켓을 든 채 목사를 공격했다. 길 건너편에서는 눈에 핏발이 선 목사 측 신도들이 스크럼을 짜고 교회마당을 지켰다. 어느 날 목사를 성토하는 장로를 만나 대화하던 중 이런 말을 들었다. “목사에 대한 고소를 유명한 법률사무소에 맡겼어요. 검사장 출신들이 많아요. 목사가 형사범으로 기소만 되면 거액의 성공사례금을 주기로 약속했어요.”

장로는 목사의 교만과 건방을 고쳐놓겠다고 단단히 벼르는 표정이었다. 그에게 나의 의견을 말해 보았다. “목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렇게 싸우기보다 교회를 나가시면 되지 않습니까? 연세도 많이 드셨는데 천국 가서 목사하고 싸움질만 하다가 왔다고 하면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성경은 싸우기보다는 신발을 털고 가라고 했다. 심판은 하나님에게 맡기면 된다고 했다. 그는 완강했다. “아니에요. 나는 끝까지 싸울래요. 이게 하나님께 받은 소명이에요.”

얼마 후 이번에는 반대편인 목사를 만났다. 목사가 한 서린 어조로 이런 말을 했다. “아무래도 법률사무소를 잘못 선택했나 봐요. 제일 큰 곳에 맡겨야겠어요.” 양쪽에서 교인들이 쏟아 붓는 돈이 변호사들의 호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우고 있는 듯했다. 그에게도 역시 내 의견을 말해 보았다. “교회를 그만두시면 되지 않습니까? 워낙 유능하시니까 다른 교회들에서 경쟁적으로 모셔갈 것 같은데요. 다시 교회를 개척하셔도 성공할 것 같고요.”

“처음에는 저도 그만두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집사람이 당신이 무슨 잘못을 했기에 나가느냐고 그래요. 생각해 보니까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돈을 횡령했습니까? 여자 문제가 있습니까?”

당회 역시 치졸한 싸움터였다. 장로 한 분이 나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당회에 참석하고 있는데 목사 쪽 장로가 내 손가락을 잡아 꺾었어요. 손가락이 부러졌습니다. 고소할 겁니다.”세상이 교회 안에 그대로 들어와 있었다. 흉악범만 보던 변호사의 눈으로 봐서 그런지 다투는 목사와 장로는 모두 존경할만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목사는 훌륭한 성직자의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빈민촌인 산동네에 작은 교회를 세우고 그들과 함께 가난을 나누었다. 가난한 목사 아버지를 둔 아들은 학비가 없어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었다. 목사는 나와 둘이 있는 자리에서 그 자신이 빈민이어서 그랬지 돈만 조금 있었다면 서울대를 갔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상처를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대형교회의 수장자리에 얽매여 솔직한 심정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반대파의 대표인 장로는 시골에서 지게를 지다가 군 입대 후 직업군인이 됐다. 그 역시 가난 때문에 공부하지 못한 게 한이었다. 20대의 뒤늦은 나이에 중학교에 입학했다. 학교 앞 문방구에 가서 군복을 벗고 교복으로 갈아입고 교실로 들어갔다. 고등학교도, 대학도 군인 신분으로 다녔다. 후에 그는 정당을 창당하고 국회의원이 됐다. 돌 같이 강인하게 살아온 두 사람의 자존심이 부딪히면서 불꽃을 튕기는 듯했다.

성령이 그들의 영혼으로 돌아오고 겸손의 옷을 입으면 몇 분 안에 화해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의 교회는 천국은 아닌 것 같다. 장삿속을 가진 인간들의 사교장이라고 느낄 때가 있다. 양과 염소가 같이 있고,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란다. 미움과 질시가 있고, 분당 짓는 세력싸움도 있다.

법률가가 판례를 살펴보듯, 나는 성경 속에서 교회가 와글거리는 걸 들여다본다. 예레미야는 기성 교단의 대표 바스훌과 싸우고 있다.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는 아모스를 아주 싫어한다. 바리새파는 예수를 형사범으로 세상 법정에 세우기 위해 돈으로 유다를 매수하고 군중을 동원한다. 교회 안에서 온갖 추잡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도자인 베드로도 모자란 짓을 하다가 바울에게 혼이 나고 있다. 예수는 일곱 교회의 못마땅한 점을 요한에게 계시하고 있다. 그게 원래 교회의 모습인가 보다.

교회가 건강해지려면 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 속에 성령이 들어가 마음교회가 개척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마음교회들이 몸의 세포같이 모일 때 비로소 건강한 세상교회가 성립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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