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 전인교육 결연, 건강한 자립 돕는다
CDP 사역 진심 얻으며 마을과 주민 긍정적 변화 … 협력 통한 지역개발 선한 모델

도리가 깔레배(14세)는 6남매 중 막내다. 가난한 시골 마을 가정이 으레 그렇듯 도리가의 형제들은 학비가 없어 제대로 공부를 못했다. 도리가도 언제 학교를 그만둬야 할지 몰랐다. 그렇기에 3년 전 CDP에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하늘을 날 듯 기뻤다. 도리가는 “CDP(Child Development Program)에 뽑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간호사가 되는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기대가 생겼다”고 말했다. 어머니 메리야 레비얌(45세)은 도리가가 공부도 열심히 하고, 밤마다 CDP와 마을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이 여간 대견하지 않다. 최근에 남편이 집을 나가서 생계가 막막하긴 하지만, 막내딸이 올바르게 성장하는 모습에 큰 위로를 받고 있다.

기아대책 말리와센터 사역자들과 석찬영 목사(왼쪽 첫 번째), 김광탁 목사(왼쪽 두 번째)가 말리와센터 주변 마을들을 방문하고 있다.
기아대책 말리와센터 사역자들과 석찬영 목사(왼쪽 첫 번째), 김광탁 목사(왼쪽 두 번째)가 말리와센터 주변 마을들을 방문하고 있다.

현재 말리와센터를 통해 한국에 있는 후원자와 결연된 CDP 아동은 300명. 말리와센터 근처 말리와초등학교 전교생 650명 중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숫자다. 철저한 가정환경조사를 통해 결연을 맺어주긴 했지만, 여전히 결연이 필요한 아동이 많다.

초등학교 1학년 레베카 찰스(6세)도 그 중 하나다. 흙벽돌에 짚으로 지붕을 삼은 레베카의 집은 말리와 마을에서도 가장 가난한 집이다. 아버지는 5년 전에 아내와 어린 두 자녀를 두고 집을 떠났다. 남편이 떠난 후 어머니 말리따 지꼬야(23세)는 근처 농장들에게 소일거리를 하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어머니는 “남편이 떠난 후부터 레베카가 감기도 자주 걸리고 많이 아픈데, 돈이 없어 좋은 약을 구할 수 없다. CDP에 결연돼 사립병원에서 좋은 약을 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나중에 학비가 많이 들 때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많은 부모들이 그럴 때 딸을 빨리 결혼시켜 버리는데, 나도 그렇게 될까봐 두렵다”고도 말했다.

말리와센터에서 100명이 더 결연되기를 기도하고 있는 김백만 선교사는 “가정이 파괴된 집도 많고, 구걸로 먹고 사는 가정도 있는데 다 도와주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인 지역개발 지향

기아대책 김백만 선교사가 CDP 결연을 기다리고 있는 한 가정을 찾아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기아대책 김백만 선교사가 CDP 결연을 기다리고 있는 한 가정을 찾아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많은 NGO(엔지오)들이 교육과 구호사업을 하지만 일시적이거나 단회적인 경우가 많다. 기아대책 역시 필요에 따라 긴급 구호사역을 펼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기아대책의 구호사역은 장기적이며 지역개발사업까지 목표로 삼는다. 특별히 기아대책은 CDP라는 독특한 전인교육 결연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개발을 추구한다. 이른바 VOC(Vision Of Community) 전략이다.

말라위 기아대책의 세 번째 센터인 말리와센터는 마을 주민들과의 협력을 통한 지역개발의 좋은 모델이다. 현재 기아대책 말라위지부장으로 섬기고 있는 강원화 선교사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센터 사역에 앞서 교회당을 세웠다. 르우벤 만자 말리와교회 장로는 “교회당 건축은 엄두를 못 냈는데, 처음 기아대책이 교회당을 짓겠다고 했을 때 정말 기뻤다. 교인들이 마땅히 기도할 장소가 없었는데, 교회당이 세워진 후에 사람들이 기도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말리와센터 사역자들이 떡과 복음 사역을 잘 감당하기를 염원하며 합심해 기도하고 있다.
말리와센터 사역자들이 떡과 복음 사역을 잘 감당하기를 염원하며 합심해 기도하고 있다.

이어 기아대책은 CDP 사업을 전개했는데, 이때 한 가지 원칙을 세웠다. ‘무작정 베풀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시혜는 주민들의 자립의지를 저해하고, 단체와 주민들 사이의 협력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주변 NGO들을 통해 봐왔기 때문이다. 강 선교사와 동역하다 현재 말리와센터를 책임지고 있는 김백만 선교사는 “CDP들에게 급식도 주지 않았고, 주민들의 여러 요청들도 정중히 거절했다. 말씀을 가르치고, 가정과 마을이 자립해야 한다는 것을 거듭 가르쳤다. 하지만 모든 사업들을 시작하기에 앞서 마을 주민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존중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신뢰와 호응 이어져

처음에는 주민들 사이에 불만의 목소리도 있었다. 다른 NGO들처럼 먹을 것, 입을 것을 주지 않는 기아대책의 행보가 주민들은 의아했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지나고, 특히 CDP 아이들이 눈에 띄게 긍정적으로 변화되는 것을 보면서 마을 주민들은 마음을 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센터 부지 기증. 초창기 말리와센터는 별도의 건물 없이 말리와교회당에 사무실을 두고 모든 일을 처리했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기고, 그간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추장회의에서 기아대책에 3000평에 달하는 센터 부지를 기증한 것이다. 김 선교사는 “근처 마을에서 추장들 15명이 모여 기증서에 사인도 했다”며 “현재는 그 땅 위에 센터 사무실은 물론 급식식당, 도서관, 부엌 등 여러 건물들이 들어섰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 가운데는 그 누구보다 CDP 아동을 둔 부모들이 고마운 마음이 컸다. 부모들은 자발적으로 CDP 아이들 급식 준비를 돕고, 말리와센터가 급식 부식 마련을 위해 만든 채소 농장을 돌봤다.

살리마센터가 하고 있는 모바일멀티미디어 사역에 앞서 말라위를 찾은 석찬영 목사(광주중앙교회)가 아이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살리마센터가 하고 있는 모바일멀티미디어 사역에 앞서 말라위를 찾은 석찬영 목사(광주중앙교회)가 아이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CDP 사역은 말리와초등학교에도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 브레돈치 꾸엔가 말리와초등학교 교장은 “CDP가 시작된 후로 우선 학생 수가 늘었고, CDP를 한다는 소문을 듣고 이사 오는 사람도 많다. 학생들의 중도 탈락도 줄고, 아이들이 안정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게 돼 부모들이 무엇보다 기뻐한다”고 전했다. 기아대책은 지역개발의 일환으로 말리와초등학교에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교실도 신축하고, 책걸상 등도 기부했다.

말리와센터는 올해 지역주민들을 위한 새로운 사업을 제안했다. 마을노동조합 결성이다. 마을 주민 스스로가 경제적으로 자립해 추후 자녀교육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다. 1인당 1달러씩 투자금을 내도록 했는데, 78명이 조합 설립에 참여했다.

김백만 선교사는 “1달러로 새끼닭을 사서 키우면 5달러에 팔 수 있다. 방앗간 설립도 계획 중이다. 가장 가까운 방앗간이 10킬로미터 너머에 있는데, 우리 마을에 방앗간을 만들면 충분한 수익 사업이 될 수 있다”며 기대를 전했다. 떡과 복음으로 개인과 마을, 나아가 나라를 변화시키는 기아대책의 생생한 사역 현장이다.
<끝>

인터뷰/ 기아대책 말라위 지부장 강원화 선교사

“떡과 복음의 길을 열어주셨다”
리더 양성위한 ‘희망대학교’ 설립 준비

“여기가 강의실이 들어설 자리에요. 저기는 기숙사고, 그 뒤에는 식당이고…”

기아대책 말라위지부장인 강원화 선교사(GMS 듀얼)의 목소리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강 선교사는 말라위 곳곳에서 CDP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말라위를 이끄는 지도자로 세워지도록 준비하고 있다. 그가 준비하고 있는 희망(Hope)대학교는 릴롱궤 시에서 20분 거리인 나텐제 지역에 세워진다. 3만평의 부지는 이미 독지가의 도움으로 마련했고, 강당 겸 예배당으로 쓰일 건물도 건축을 마쳤다. 희망대학교 설립은 장기 프로젝트로 아직 많은 건물을 세워야 하지만, 기아대책은 내년에 신학과를 우선 개설할 계획이다. 또 근처 마을을 대상으로 CDP 사업도 시작할 생각이다.

강원화 선교사는 재산권에 대한 분명한 원칙도 세웠다. 절대 사유화는 없다는 원칙으로, 그가 대표로 있는 말라위 법인 정관에 ‘우리가 취득하는 모든 자산은 기아대책 본부의 승인 없이 매매·승인·담보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서울 마장동 성암교회(노한상 목사)에서 파송받았다.
강원화 선교사는 재산권에 대한 분명한 원칙도 세웠다. 절대 사유화는 없다는 원칙으로, 그가 대표로 있는 말라위 법인 정관에 ‘우리가 취득하는 모든 자산은 기아대책 본부의 승인 없이 매매·승인·담보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서울 마장동 성암교회(노한상 목사)에서 파송받았다.

한국에서 11년 동안 교역자 생활을 경험한 강 선교사는 선교사로의 부르심을 받고, 가장 먼저  ‘광야로 가자’란 생각을 떠올렸다. 동남부 아프리카를 탐방하던 중 말라위를 방문했다. 당시만 해도 말라위에는 한국인 선교사가 한 명도 없었다. 말라위로 마음을 정한 후 총회세계선교회(GMS) 선교사훈련(GMTI)에 이어 기아대책에서 훈련을 받았다. 가난한 나라일수록 ‘떡’과 ‘복음’이 함께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영혼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가 구원을 받아야죠. 떡과 복음을 함께 강조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해요.”

2009년에 말라위로 파송 받아 살리마센터, 릴롱궤센터, 말리와센터 사역을 이끌고, 지금은 말라위 기아대책 사역 전체를 이끄는 가운데 수많은 은혜와 열매가 있었다. 은혜가 거저 오는 것은 아니었다. 살리마센터에서 특별단기프로그램을 할 때 한국 청년자원봉사자들이 탄 차가 사고를 당해 10명이 중경상을 당했다. 한국에서 온 의료선교사가 있었지만, 생사가 급박한 중상자들을 동시에 돌보기에는 막막한 상황. 그때 하나님은 미국인 의사 2명을 보내주셨고, 다행히 사태는 잘 마무리 됐다.

그 외에도 하나님은 강 선교사의 아들이 급성 말라리아를 앓게 하시는 일로, 또 강 선교사 자신이 공황장애로 쓰러지시는 일로 그를 겸손케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큰일을 맡기시기에 앞서 우리의 마음을 달아보시는구나 알게 됐어요. 정말 하나님을,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시는지 돌아보시게 하시는거죠.”

강 선교사는 현재 말라위 기아대책 선교사들 가운데 유일한 목사선교사인만큼 앞으로는 복음 사역에 좀 더 집중할 생각이다.

“말라위는 과거 한국처럼 자산이 별로 없는 땅이에요. 말라위 사람들이 잘 준비가 돼서 다른 동남부 아프리카로 나가고, 그런 준비된 사람을 키우는 것이 제게 맡겨진 사명이라 봐요. 하나님이 여기 있으라 하실 때까지 그 일 하며 살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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