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총리와 보좌관 에곤 바르(Egon Bahr)가 꼽힌다. 에곤 바르는 브란트의 동방정책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그런데 이들만이 아니라 더 중요한 요소는 뒤에 오는 정치인들이 그 정책을 꾸준히 지켰다는 것이다. 브란트에 이어 총리가 된 헬무트 슈미트(Helmut Schmidt), 서독과 통일독일의 총리를 지낸 헬무트 콜(Helmut Kohl)이 그랬다. 좌든 우든 파를 가리지 않았다. 이런 일관성은 겐셔(Dietrich Genscher) 외무장관이 브란트, 슈미트, 콜 총리로 이어지는 동안 계속 그 자리를 지켰기에 가능했다고도 한다. 그렇게 꾸준한 정책이 독일 통일에 빛을 발했다.

독일 통일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교단의 발전적 미래를 고민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과연 미래지향적 정책은 있는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며, 총회장 교체와 상관없이 유지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인물은 바뀌더라도 장기적 안목으로 신중하게 세워진 정책은 유지 발전되어야 한다. 세례교인헌금은 계속 이어지고 있기는 하다. 의식의 공유라기보다 강제력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취지는 퇴색해버렸다. 왜 그것을 시작한 것인지 기억조차 가물거린다.

교단의 발전방향과 정책을 제시하면서 시작한 총회장들은 공약을 제대로 펼치지도 못한 채 임기가 끝나버리는 경우들이 있다. 사실 1년 임기로는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정말 큰 문제는 잡다한 당면 문제에 교단의 미래가 담보 잡힌다는 것이다. 총회장을 꿈꾸는 누구든 그 자리를 통해 펼쳐야 할 비전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큰 걸음으로 그것을 추진해야만 한다. 개인의 능력이든 아니면 집단의 힘이든 그래야만 한다. 현실적 장벽 극복 역시 그들 몫이다.

더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급변하는 세상에 초라한 교회의 위상, 붙잡기 힘든 젊은이들. 이것이 정직한 현실인식이다. 이제는 눈앞에 닥친 문제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공감할 비전과 정책이 세워지고 구체화할 힘을 모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정책이라면 누가 그 자리에 앉든지 그것을 유지하면서 총회를 업그레이드해야 할 것이다.

한 개인이 급조한 정책이나 아이디어는 한계가 있다. 공신력을 갖춘 아이디어뱅크가 필요하다. 어제와 오늘을 진단하며 미래를 열 능력을 갖춘 기구가 실현가능한 구체적 정책들을 제시하고 총회임원과 상비부는 그것을 추진해야 한다. 언제까지 교단을 규모로만 자랑하겠는가? 거대한 몸집으로 자체 무게에 눌려 주저앉은 모습은 그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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