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니아의 옷장 대표〉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젊은 부부가 유럽에서 유학생활을 하는데, 그 집 아이들이 현지 친구들에게 아시아에서 왔다고 무시를 당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뽀로로를 한국에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친구들이 그 때부터는 너무나 호감을 갖고 다가오더라는 것이었다. 이런 것이 바로 문화의 힘 아닐까. 해외에서든, 국내에서든 선교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교회는 이러한 문화의 힘에 주목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나니아의 옷장은 기독교문화공간을 표방하고 있지만 꼭 ‘기독교’ 행사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대관업무도 진행하고 있다. 작으나마 경제적으로 도움도 되고, 또 더 중요한 것은 교회문화 안에만 갇히지 않고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계기가 된다는 의미를 지닌다.
얼마 전에는 평균 60대 이상의 멤버로 이루어진 음악감상동호회의 대관행사가 있었다. 매월 1회씩 함께 모여서 클래식, 팝 등의 명곡을 감상하는 모임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 모임이 40년년 이상 매월 빠지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사실이었다. 해설자 선생님은 초창기부터 계속 자리를 맡아 오고 계신데, 연세가 80이 넘으셨다고 했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이렇게 오랫동안 모일 수 있는 구심력은 바로 문화의 힘이 아닐까 싶었다.

현 시대에 문화는 사람 사이에 벽을 없애고 서로를 소통하게 하는 힘을 가졌다. 사진은 기독교와 비기독교 사이 간극을 없애주는 나니아의 옷장 공간.
현 시대에 문화는 사람 사이에 벽을 없애고 서로를 소통하게 하는 힘을 가졌다. 사진은 기독교와 비기독교 사이 간극을 없애주는 나니아의 옷장 공간.

나와는 세대가 비슷하지도 않고 기독교모임도 아니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하나로 서로 간에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다시 말해 그분들께서는 이 공간을 너무 좋아해주시고 나에게도 호감으로 대해주셨다. 그리고 당일 행사에 준비된 모든 곡의 감상이 끝나고 깜짝 앵콜곡이 등장했다. 바로 목사인 나를 위해서 준비하셨다며 <너는 아느냐>(김석균 작곡, 사랑이야기 노래)라는 찬양곡을 틀어주셨다.

너는 아느냐 너는 아느냐
내가 너를 살리려
나의 생명을 주었고
내가 너의 수치를 씻으려
나의 생명을 주었으니

이렇게 시작된 찬양영상. 간주에서는 로마서 5장 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는 말씀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 자리에는 크리스천도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함께 있었을 텐데, 다들 집중해서 보는 분위기가 전도집회에 온 듯한 느낌마저 있었다.

참 묘한 느낌이었다. 사실 목사인 내가 이런 메시지를 그분들에게 전해야할 입장인데, 오히려 내게 선물로 드린다며 준비를 해주셨다. 물론 작은 해프닝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나니아의 옷장이라는 공간에서 일어날 수 있는 특별한 일이라 생각한다. 교회와 세상의 중간지대랄까. 책 <나니아 연대기>에서 옷장 문을 열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사자 아슬란이 다스리는 세계와 접촉할 수 있듯이, 이 공간이 그런 역할을 하기를 늘 기대하고 있다.

분명한 건, 이 시대에 문화는 세대와 신념 등의 벽을 넘어서 사람과 사람이 연결될 수 있게 하고, 또 마음을 열게 하는 위대한 선물이라는 것이다. 선교적 사명을 가진 사람이라면 ‘문화’라는 접촉점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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