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설교에는 거룩한 변화가 그려지는 적용 필요 … 철저히 본문에 근거하며 청중의 바른 이해 이끌어내야

청중의 삶과 영혼 변화 위한 진리의 말씀 설교하라

류응렬 목사 ●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담임● 고든콘웰신학교 객원교수● 전 총신대 교수
류응렬 목사 ●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담임● 고든콘웰신학교 객원교수● 전 총신대 교수

제대로 설교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예배당 문을 나서는 성도의 삶을 보는 것입니다. 부모공경에 대한 설교를 들었다면 부모님을 대하는 태도와 행동이 달라져야 할 것이고, 이웃사랑에 대한 설교를 들었다면 식당에서 종업원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삶의 변화뿐 아니라 영혼의 변화도 필요합니다. 교회를 나온다고 모두 예수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성경을 들고 있다고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죽어있는 영혼은 살려내고 살아난 사람은 거룩한 삶을 위해 변화를 추구하는 것, 설교의 적용을 통해 추구해야 할 목적입니다.

설교자는 두 세계의 다리를 이어가는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과 사람들의 실제 생활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 할 사람입니다. 말씀의 해설에만 관심을 둔 채 삶으로 적용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적용을 하지 않는 것뿐 아니라 진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청중이 보여야 할 변화가 그려져야 비로소 설교가 준비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설교에 적용은 꼭 필요한가
모든 설교에 적용은 있어야 합니다. 설교의 목적 자체가 적용을 통해 청중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적용의 필요성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적용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본문을 해석하는 것은 설교자의 몫이지만, 청중에 알맞게 적용하는 것은 성령님의 일이라 말합니다.

칼 바르트(Karl Barth)는 적용을 부정하는 대표적 학자입니다. 그는 성경 본문에 충실하고 세상의 삶에 충실한 것은 어려운 과제이며, 성경의 세계와 오늘날 세계 사이의 거리를 메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자신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설교자가 특정한 적용을 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개인적으로 만나는 일을 방해할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일방적으로 강해설교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이런 의견 앞에 하나님이 적용하되 설교자의 설교를 통해 친히 적용하기를 원하신다고 답변합니다.

성경 강해로 잘 알려진 개혁주의 설교자 존 맥아더(John MacArthur) 목사는 직접적인 적용을 반대하는 선봉에 서 있는 인물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직접적으로 역사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굳이 적용이 불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성경이 정확하게 해석되고 강력하게 선포될 때, 성령은 그 메시지를 취하여 각각 청중이 처한 특별한 필요성에 맞게 적용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의견에 대해서도 마찬가집니다. 성령님께서 청중에게 적용하려 할 때 설교자의 메시지를 통해 삶의 변화를 추구하기를 원하신다는 점입니다.

적용이란 설교에서 있으면 좋고 없어도 무방한 한 부분이 아니라 필수요소입니다. 지난 100년간 미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읽히고 인용된 <설교학> 책의 저자인 존 브로더스(John A. Broadus)는 “설교에서 적용이란 단순히 논의에 덧붙여진 하나이거나 논의에 종속되는 부분이 아니라 가장 주요한 것이다”라며 적용의 중요성을 지적합니다.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설교의 초반부에서 적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개혁주의 신학의 배경 속에 설교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칼빈은 디모데후서 4장 1~2절 주석에서 “우리가 만일 들은 바대로 따를 수 있는 선택을 성도들에게 맡긴다면 그들은 한 발도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교리 자체는 아무런 유익도 줄 수 없다”고 말함으로 설교에서 적용이 필수적 요소라고 밝힙니다. 브라이언 채플은 “적용이 없는 설교는 지성을 만족하게 하지만 적용이 있는 설교는 그리스도를 섬기게 한다”고 지적하면서 적용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해돈 로빈슨은 <강해설교>에서 적용을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여기고 설교실습 수업시간에 반드시 명확한 적용을 강조합니다.

강해설교가들이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적용을 지적하고 있는 데는 거의 예외가 없습니다. 강해설교가 지향하는 목적이 청중의 변화이고, 청중의 변화를 위해 효과적으로 촉구하는 것을 적용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찰스 스펄전의 말처럼 적용이 시작될 때 진정한 설교가 시작됩니다. 설교자는 성령님의 조명을 따라 말씀을 해석하듯이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적용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기도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설교하면서 “이제 본을 보이신 예수님의 기도를 보았습니다. 하루에 잠을 깰 때, 그리고 잠자리에 들 때 10분은 기도합시다”라고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호수아 6장에 나타난 여리고 성의 함락을 아무리 고고학적 배경을 통해 명쾌하게 설명한다 할지라도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순종을 강조하지 않는다면 설교의 가장 중요한 목적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적용이 결여된 설교는 마치 아름다운 집을 설계하고 완벽하게 건축을 마쳤지만 살지 않는 집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 지성의 유희를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구체적인 변화를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성공적인 설교는 얼마나 본문을 충실하게 주해했는가에서 발견할 것이 아니라, 본문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사람들이 변화를 경험하고 삶을 바꾸게 되는것에서 발견합니다. 해설에 그치고 적용으로 나아가지 않는 설교는 목적 없이 달려가는 사람과 같습니다.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성경 자체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적용의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고 성경의 기록 목적을 천명합니다. 성경은 죄인 된 우리의 구체적인 태도와 삶의 변화를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본문의 15절 말씀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와 함께 읽어야 합니다. 즉 바울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자를 살리는 구원의 목적과 구원 받은 백성을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여 삶 가운데 온전케 되어 선을 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록되었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설교에서 적용이 왜 필요한지 성경 기록 자체의 목적에 근거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이러한 신학적 배경 이외에도 적용이 반드시 필요한 실제적 이유가 있습니다. 설교자는 대부분의 신자들이 말씀을 통하여 무엇을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듣기를 원한다는 사실입니다. 복음을 제대로 제시한 설교라면 말씀을 듣고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지식이 생겨나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모습이 발견될 것입니다. 신자는 이러한 거룩한 인식 앞에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제시받기를 원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하나님의 속성’에 관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관하여, ‘세상’의 의미에 관한 여러 해석을 풀이하고 영생의 의미를 심도 있게 해석하고도 결국 이 말씀에 근거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의 은혜를 누리라는 촉구 없이 설교를 마친다면 성경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한 설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28장에 나타난 예수님의 지상 명령을 설교하고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 이 말씀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도와 제자 삼으라는 촉구가 없다면 설교를 듣고 계시는 주님께서 안타까워하실 것입니다.

올바른 적용이란 무엇인가
잘못된 적용의 첫 요소는 말씀과 연결되지 않는 적용입니다. 즉, ‘본문 따로 적용 따로’ 설교에 해당합니다. 적용은 철저하게 본문에 근거해야 합니다. 말씀에 근거하지 않는 적용은 자칫 설교자의 개인 의견처럼 들려 말씀의 권위를 상실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잘못된 요소는 청중의 윤리적 변화만을 촉구하는 적용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하여 신앙인으로서 합당한 반응으로서의 삶을 촉구하지 않고 삶이 좀 더 바뀌면 하나님의 은혜를 좀 더 누릴 수 있다는 인식을 심는 적용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은혜의 주님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편에서 더욱 열심을 내면 하나님도 더욱 가까이 다가오게 하는 거래의 하나님으로 만들어 버리게 됩니다. 윤리적 변화와 촉구는 필요하지만 철저하게 하나님 은혜가 임한 결과로 나타나야 합니다.

바람직한 적용의 출발은 본문에 근거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본문이 삶 속으로 다가와 변화를 촉구받을 때 청중은 하나님 말씀 앞에서 변화를 요청받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올바른 적용을 위한 첫 걸음은 설교자와 본문의 진정한 씨름에서 시작됩니다. 적용이 본문과 분리된 하나의 선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문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권위를 가지듯이 적용도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지닙니다.

둘째, 바람직한 적용은 하나님이 하신 은혜의 역사에 근거하여 신앙인으로서 합당한 삶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적극적인 변화의 삶은 하나님의 사랑,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응답에 근거합니다. 신앙인으로서 합당한 삶을 촉구하는 적용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의 윤리를 가져옵니다.

셋째, 올바른 적용은 청중을 바르게 이해할 때 가장 적실하게 나타납니다. 적용이 효과적이지 못한 이유는 본문 이해가 부족한 것보다 청중의 이해 결핍에 기인합니다. 본문을 이해하는 노력만큼 중요한 것이 청중에 대한 정확한 분석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이 니고데모를 대하는 태도와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대하는 자세는 전혀 다릅니다.

강해설교 적용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적용은 설교에서 하나의 과정이 아니라 설교의 근본 목적과 관계되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흑암에 있는 자라면 구원의 은총으로 나아와야 하며, 이미 믿음 안에 있는 공동체라면 복음에 합당한 신앙인의 삶을 향해 새롭게 나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청중의 변화를 열망하는 설교자는 말씀과 청중을 바르게 이해할 뿐 아니라 성령의 역사를 위해 간절하게 기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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