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용한 목사의 옥수동 소나타]

사랑이 또 다른 사랑을 낳는다. 우유배달 사역을 하면서 그런 감동과 기적을 수시로 경험한다.
사랑이 또 다른 사랑을 낳는다. 우유배달 사역을 하면서 그런 감동과 기적을 수시로 경험한다.

얼마 전 길을 가다가 우연히 옥인교회 권사님 한 분을 만났다. 부목사 시절 내가 담당한 교구에 속했던 분이었다. 반갑게 인사를 하다가 권사님은 20여 년 전 이야기를 꺼냈다. 청와대에서 일하던 남편이 갑작스레 일을 그만두며 형편이 어려워졌는데, 당시 권사님 댁에 심방 차 방문한 내가 10만원을 몰래 쥐어주고 갔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드린 기억도 없다고 했더니 권사님은 내 손을 잡고 ‘평생 잊을 수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 누군가 건넨 위로는 쉽게 잊히지 않는 법이다.

2009년 성탄절 전날, 교회로 전화가 한통 왔다. 매봉산 아래 421번 시내버스 종점 근처에 사시는 이선예 할머니였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성탄절 때 교회 어린 아이들에게 주려고 방울 모자를 좀 만들었는데, 혼자 가져가기 어렵다고 교회 봉고차를 좀 보내 달라는 전화였다.

할머니 집까지 가려면 옥수동 버스 종점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만 했다. 사람 하나 지나가기 어려운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서야 할머니가 사시는 3층짜리 연립주택이 보였다. 할머니는 3층에 2평짜리 작은 방에 홀로 살고 있었다. 방문을 열자 커다란 비닐봉지 두 개가 보였다.

“우유를 아침밥으로도 먹고요. 당뇨 고혈압 약을 먹을 때도 같이 먹어요. 혼자 살아온 지가 20년이 넘었는데, 나 같은 사람에게 지난 5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우유를 보내 주어서 정말이지 고마워요.” 할머니는 내 손을 꼬옥 잡고 연신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러고는 지난 여름부터 만들었다며 까만 비닐봉지에서 털로 만든 방울 모자를 내보였다. 방울 모자는 무려 100개나 되었다.

“털실이 비쌀 텐데, 돈은 어디서 나셨어요?” “돈이야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고 그러죠. 그리고 이럴 때 돈 안 쓰면 언제 써요?” 할머니는 웃어 보였다. 기초생활보호대상자인 할머니는 교회 아이들에게 성탄 선물을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새 털실을 살 돈이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중고 털실이었다. 동대문시장에서 한참 발품을 팔아 깨끗한 일제 중고 털옷을 골랐다. 털 옷 값만 10만원이 넘었다. 작은 돈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그 털옷을 하나하나 풀어서 한 코 한 코 모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꼬박 하루를 매달리면 방울 모자 3개를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할머니는 가을부터 초겨울까지 한 철을 꼬박 털 뭉치에 파묻혀 살았다.

할머니는 다음 날 성탄절 예배에 참석했다. 설교 시간에 나는 할머니가 선물한 방울 모자 이야기를 하면서 방울 모자를 써 보았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지고 할머니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사랑이 나눔을 낳고, 나눔이 감동을 낳았다. 그 때 난생 처음 예배당에 온 할머니는 그 이후로 계속 우리 교회를 다녔다. 그리고 집사님이 돼, 교회를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섬기시다가 얼마 전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우유 배달과 구제를 하면서 사랑이 또 다른 사랑을 낳는 일을 자주 경험한다. 한번은 70대 한 어르신이 나를 찾아왔다. 어르신은 별 말없이 불쑥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에는 큰 글씨로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쓰여 있었고, 바로 밑에 그의 이름이 조그맣게 적혀 있었다. “뭘 이런 걸 가져 오세요?” 내가 인사를 했더니 어르신은 손을 내저었다. 그러면서 동대문구에 사는 친구가 매일 우유를 받아먹고 있는데 거동이 불편해 자기가 대신 봉투를 가져왔노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르신은 친구가 담임목사님을 만나서 꼭 전하라고 했다며 몇 번이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봉투에는 3만원이 들어있었다. 얼굴은 모르지만 용돈을 아껴 봉투에 고이고이 후원금을 넣어 보냈을 어르신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우리 교회에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분들 중에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 분들이 많다. 대부분 신문이나 방송, 인터넷 등 주위에서 우리 교회 이야기를 듣고 구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교회냐 아니냐가 아니라 얼마만큼 순전한 마음으로 구제를 하느냐이다. 혹시라도 우리 교회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순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언제든지 후원을 그만둘 것이다.

결국 사랑이 또 다른 사랑을 낳기 위해서는 처음 사랑이 깨끗해야 하고, 그 사랑을 지속해서 지켜갈 수 있어야 한다. 처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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