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학교 돌며 열정의 신앙고백 이끌어 … “위기의 다음세대 사역 깨우는 새로운 물결 될 것”

“학생 신앙의 야성 회복될 때 학교는 예배의 현장”

“학교를 찾아다니는 사역자들이 요즘 굉장히 많아졌어요. 스쿨처치 운동을 시작할 때만해도 참 외로운 사역이었는데…. 지금은 찾아가는 목회, 다음세대를 살리는 묘안으로 주목받고 있답니다. 저희들이 해야 할 만큼은 했구나하는 생각이 드네요.”

한국교회 스쿨처치운동의 두 리더 이정현 목사(군산 드림교회)와 나도움 목사(전주 반석교회)는 격세지감을 느낀다면서도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에게는 같은 확신이 있다. ‘학교에서도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슬로건이 더욱 맹렬히 현실화되어야 한다는.

이정현 목사는 2011년 경부터 군산을 중심으로 스쿨처치 사역을 시작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사역의 방향을 고민하던 중 드림교회(임만호 목사) 청소년사역자로 부임해, 군산 일대의 학교들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는 드림교회 청소년부에 출석하는 학생들을 찾아가 격려하는 목적이 있었지만, 또 하나의 비전이 그의 내면을 채우고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삶의 예배’를 잘 수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 과제에 부딪치는 현장이 어른들에게는 직장, 학생들에게는 바로 학교가 되겠지요. 신앙고백이 학교라는 현장에서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신앙의 야성이 학생들에게서 회복될 수만 있다면 그곳이 바로 복음의 통로이자 예배의 현장인 교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목사가 처음 찾은 곳은 군산의 미션스쿨들이었다. 이들 학교에는 오랜 전통과도 같은 ‘국기게양대 기도모임’이 남아있었다. 꾸준히 조국을 위해, 학교를 위해, 친구들을 위해 서로서로 손을 잡고 기도의 제단을 쌓는 학생들의 모습은 귀하고 아름다웠지만 작은 기도모임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아쉬움도 존재했다.

더욱이 당시 사회적으로는 학원폭력, 청소년 자살, 재단 비리 등으로 많은 학교들이 몸살을 앓고 있던 시절이었다. 더욱 강력한 영적운동이 필요하다고 느낀 이 목사는 ‘여러분들의 기도로 학교가 바뀔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자신이 만난 청소년들의 가슴에 불을 붙였다.

제대로 그 불이 옮겨 붙은 첫 사례가 군산 중앙고등학교였다. 학생들 30명이 자발적으로 야간자율학습을 마친 밤 10시부터 기도회를 시작한 것이다. 학교 전체에 기도의 함성이 진동했다. 그 기도회는 매일 점심과 저녁, 일주일에 무려 10차례나 계속되는 스쿨처치 모임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불과 1년 사이 이 기도의 불이 군산 시내 전체 고등학교로 옮겨 붙었고, 나중에는 중학교와 초등학교들에까지 스쿨처치 운동이 일어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정현 목사는 정기적으로 학교를 방문하며 스쿨처치에 참여하는 학생들을 격려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믿지 않는 학생들과도 접촉하며 전도의 기회를 얻는다. 이제 스쿨처치운동은 군산을 중심으로 인근 익산과 김제 등 다른 도시들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 목사의 사역이 알려지자 지역교회 차원에서 이를 모델로 삼아 스쿨처치 사역에 뛰어드는 사례들도 생겨났다. 어느덧 많은 후배들이 그 뒤를 좇는 멘토의 역할까지 맡게 된 것이다.

이정현 목사가 지역을 중심으로 스쿨처치의 열매들을 거두고 있는 사이 나도움 목사는 전국을 무대로 스쿨처치운동을 확산시키고 있었다.

“청소년기를 회상해보면 제가 자란 전주에서 스쿨처치는 어느 학교에나 있는 자연스러운 문화였습니다. 전주여고의 경우는 미션스쿨이 아닌데도 1974년부터 오늘까지 스쿨처치와 같은 형태의 모임이 있었다고 하니, 그 뿌리가 참 깊기도 하지요. 그렇게 제 추억의 한 자리를 차지했던 스쿨처치들이 어느 순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저의 길이 정해진 것입니다.”
총신신대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2012년, 그는 스쿨처치 운동이 다시 회복되어야 한다는 절실함에 사로잡혔다. 단지 좋은 추억을 되살려 보고픈 낭만적인 심리에 이끌린 것이 아니었다. 스쿨처치는 청소년선교 나아가 한국교회의 사활이 걸린 중대한 문제라는 위기감이 그를 사역의 길로 이끌었다.

인터넷을 통해, SNS를 통해, 혹은 지인들을 통해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통로들을 활용해 스쿨처치의 비전을 나눌 이들을 수소문했다. 가진 것 많지 않은 신학생 신분이었음에도 거리나 시간을 따지지 않고 어디든 찾아가서 최선을 다해 섬기겠다는 약속을 했다.

가장 먼저 연락이 온 것은 경기도 포천의 동남고등학교였다. 대입을 앞둔 3학년 학생 다섯 명이 교내 조그만 지하실 공간에서 스스로 시작한 찬양과 기도모임이 연한 순처럼 조금씩 자라나는 중이었다. 누군가의 도움과 응원이 절실히 필요했던 이 학생들에게 젊은 전도사의 방문은 마치 가뭄 속 단비와도 같았다.

한 달에 한 번씩 학교를 찾아가 학생들을 영적으로 북돋고 격려하면서 작은 기도모임은 수십 명의 학생들이 함께 하는 스쿨처치로 성장했고,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져오고 있다. 이렇게 첫발을 뗀 사역이 강원도 원주, 전라도 해남, 경상도 경주, 충청도 태안 등 곳곳으로 확산됐다. 목사 안수를 받고 고향 전주로 돌아온 후에도 그의 사역은 멈추지 않았다.

방방곡곡 누비고 다니며 나 목사는 열정에 불타오르는 학생들도 만났지만, 자신과 같은 꿈을 품고 소리 없이 섬겨온 수많은 사역자들도 조우했다. 기드온에게 남겨진 300용사, 엘리야 시대에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000명과도 같은 이들을 마주친 기분이었다.

이들과 함께 나 목사는 ‘학교예배자연합’ ‘학교사역자연합’ 등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스쿨처치를 전국적인 운동으로 확대하는 일에도 나서기 시작했다. 나 목사와 동역자들은 현재까지 전국 6000여 중고등학교 중에서 적어도 500개 이상의 스쿨처치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며, 계속해서 더 많은 스쿨처치들이 일어나도록 힘을 모으는 중이다.

이처럼 서로 가까운 지역에 거주하며, 같은 사역에 헌신하고 있음에도 두 사람은 5년 전까지는 일면식조차 없던 사이였다. 그러다 서로의 존재를 알게 돼 페이스북을 통해 가상공간에서 첫 인사를 나누고, 10년 선배인 이정현 목사가 군산으로 나도움 목사를 초청하면서 마침내 직접 상봉이 성사됐다. 나 목사는 첫 만남의 강렬함을 이렇게 떠올렸다.

“만나서 이야기 나누다보니 제가 오래 전 인상 깊게 읽고 큰 도전을 받았던 <잠자는 중고등부를 깨워라>의 저자가 바로 이 목사님이더군요. 후배인 제가 주눅 들지 않도록 격려해주시고, 먼저 겪은 경험들을 생생하게 들려주셔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 목사는 “첫 대화에서부터 나 목사가 참 대단한 사역자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라면서 “자비량으로 전국을 다니는 사역을 펼치는 모습이나, 지금까지 여러 해동안 한 우물만 파는 순수한 모습이 참으로 귀하고 하나님께서 크게 사용하시는 종이라 확신합니다”라고 응답했다.

지난 5년간 두 사람은 꾸준히 교제하면서 스쿨처치 사역의 발전을 위해 지혜와 열정을 모았다. 인천의 학원사역 연합단체인 나무커뮤니티와 함께 스쿨처치의 실천방안을 제시하는 소책자 형태의 매뉴얼을 제작했고, 조만간 자신들의 스쿨처치 사역 노하우를 소개하는 공동저서를 집필할 계획이다.

앞으로 스쿨처치 사역이 더욱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전략을 개발하고, 동역자들을 지원하는 등의 일에 앞으로도 두 사람이 감당해야 할 역할은 참으로 중요하다. 교회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가 하락하는 시기, 점점 더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시기에 스쿨처치 사역은 위기의 시대를 극복하는 대안이 될 것이라 확신하는 두 사람의 남은 활약에 기대를 건다.

스쿨처지 사역을 위한 지침

“핵심은 학생의 자발성에 있다”

‘키맨’ 역할 인물 세워 실제 사역 이뤄져야

스쿨처치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참여하는 사역자들이 늘어나면서 실제적인 지침을 요청하는 현장의 목소리들도 커지고 있다. 이정현 목사와 나도움 목사가 이들에게 들려주는 조언들 중 몇 가지를 소개한다.

1. 사역자가 주인공이 아니다
스쿨처치의 핵심은 학생들의 자발성에 있다. 참여하는 학생들 중에서 키맨(key man) 역할을 할 인물들을 잘 세우고, 이들을 통해 실제 사역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스쿨처치는 자생력을 얻고, 장기간 유지될 수 있다. 사역자 본인의 리더십을 강화하려는 야망에 사로잡히지 말라.

2. 때를 기다리라
하나의 스쿨처치가 자리 잡을 때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한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 한 사람을 데리고 몇 년씩 버텨야 할 때도 있고, 어느 정도 활성화되었던 모임이 학교장 등의 방침에 의해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그만큼 많은 변수가 작용하는 것이 스쿨처치 사역이다. 상황이 나빠지더라도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기 말고 끝까지 인내할 일이다.

3. 한 학교에 집중하라
사역자 한 사람이 여러 학교에서 동시에 스쿨처치를 일으키려다보면 주의가 분산되고, 갖가지 다른 문제들로 인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그러므로 한 학교, 한 생명에 집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아이들은 ‘좋은 이야기’보다 ‘좋은 사람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인다. 그들의 신뢰를 얻기까지 관계에 집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4. 지역교회의 도움을 요청하라
사역자 개인이나 선교단체 중심으로 스쿨처치를 돕는 것보다 해당 지역의 영향력 있는 교회들을 동원해 지원하는 것이 더 안정적이며 효과적이다. 지역교회를 통해 해당 학교 교사와 학부모 등의 후원그룹이 형성되면 이를 활용해 스쿨처치가 동아리 형태로 학교에 등록하거나, 사역자들이 학교를 자유롭게 출입하도록 허용하는 등의 절차를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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