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복음의 역사, 강직한 공동체 지켜오다

황금교회, 인재 양성 진력 지역 발전 이끌어 … 신전교회, ‘예수마을’ 전통 바탕 지경 넓혀가

무주 진안 장수 등 전북 동부의 산악지대에는 선교사들을 통해 혹은 자생교회들을 통해 일찌감치 복음이 들어갔다. 그곳에서 보통의 도시나 농촌과는 색다른 역사와 문화를 꽃피운 교회들이 적지 않다. 이 중 진안 황금교회(추형호 목사)와 장수 신전교회(박창석 목사) 등 두 교회가 동전주노회의 헌의로 제104회 총회에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 지정 청원을 한다. 대체 이들 산골교회에는 어떤 자랑거리들이 있는 것일까.

강직한 믿음 공동체 진안 황금교회

운장산 자락의 아름다운 능선을 배경으로 한 진안 황금교회. 그 이름대로 황금처럼 빛나는 복음의 역사를 간직한 공동체이다.
운장산 자락의 아름다운 능선을 배경으로 한 진안 황금교회. 그 이름대로 황금처럼 빛나는 복음의 역사를 간직한 공동체이다.

앞서 익산의 서두교회와 완주의 학동교회 수만교회 신월교회 이야기에 소개됐던 맥커친(한국명 마로덕) 선교사는 진안 황금교회 이야기에도 등장한다.

전주에서 말을 타고 진안고원까지 넘어온 마로덕 선교사가 세운 신앙공동체 중 하나가 부귀면 부암리 샛터의 세동교회였다. 선교사로부터 전해들은 복음은 산간오지의 사람들을 새로운 세계에 눈뜨게 했고, 빠른 속도로 주변 마을에까지 퍼져나갔다.

완주 쪽에서 운장산을 타고 진안으로 들어오는 길목 중 하나였던 진상동도 그렇게 복음을 전해들은 동네였다. 마을 사람들은 서양인 선교사와 그가 전한다는 새 하늘 새 땅의 소식에 많은 호기심을 가졌고, 일부는 직접 찾아가 그를 만나기도 했다. 그렇게 하여 예수를 구세주로 믿게 된 사람들이 1904년에 세운 교회가 진상동교회, 바로 지금의 황금교회이다.

진상동교회는 열심히 진리를 배우고, 그 배운 바를 실천하는 공동체였다. 설립 초창기부터 예배를 인도해 온 홍순기 장로가 1923년 초대 장로로 장립을 받고 교회를 발전시켰으며, 한편으로는 교육을 통해 문맹을 타파하며 어린 인재들을 키우는데 앞장섰다.

진안군 향토문화백과에는 “일제강점기에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읽기 위해 한글교육에 힘을 쏟는 등 지역사회의 발전에 공로가 있는 교회”라고 기술되어있고, 해방 후인 1956년에는 중상마을에 갈리학교를 세워 운영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황금교회의 선교백주년 기념비.
황금교회의 선교백주년 기념비.

교역자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절, 진상동교회처럼 작은 산촌교회의 목회사역은 주로 장로들의 몫이었다. 제2대 장로를 지낸 이종환 장로는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극심했던 일제강점기 막바지에, 주일마다 툭하면 경찰이 찾아와 조사할 일이 있다고 지서로 데려가서는 온 종일 이유 없이 붙잡고 있는 바람에 예배 인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한다. 황금교회의 강직한 신앙 면모를 보여주는 일화이다.

긴 세월의 면면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황금교회 예배당 입구 게시판을 장식한다.
긴 세월의 면면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황금교회 예배당 입구 게시판을 장식한다.

진상동이 인근 여러 마을과 함께 황금리로 병합되면서 교회 명칭 또한 황금교회로 바뀌었고, 네 차례의 이전을 거쳐 현재의 위치에 정착했다. 임명관 목사를 비롯해 이순영 엄용운 윤병은 이강식 강년원 목사 등 여러 교역자들이 강단을 이어받았으며, 2003년에 부임한 추형호 목사가 현재까지 17년째 시무하는 중이다.

황금교회에는 경주 이 씨와 전주 이 씨 두 집안이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면서 교회를 함께 지켜온 이력도 있다. 동전주노회 역사의 산 증인인 이종수 원로목사, 총회 총무를 지낸 이치우 목사 등 여러 목회자와 크리스천 리더들이 그런 배경을 통해 성장했다.

한 때는 금이 나오는 동네로 알려져 1000가구가 넘게 거주하던 호기를 누리기도 했지만, 이후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나면서 황금리는 고요하고 평범한 동네가 됐다. 덩달아 황금교회 교세도 예전에 비해 많이 약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뿌리 깊은 신앙연륜을 가진 성도들의 헌신 속에서 황금교회는 흔들림 없는 행보를 계속한다. 2004년에 교회 설립 100주년 감사예배를 올리면서 예배당 뜰 앞에 세운 100주년 기념비에는 앞으로도 뚜벅뚜벅 믿음의 행진을 벌여나가겠다는 다짐이 담겨있다.

시련 견디며 단단히 자란 장수 신전교회

미국남장로교 소속 윌리엄 클라크(한국명 강운림) 선교사로부터 복음을 전해들은 박래문 문귀선 김사일 박승기 정세갑 등 5명이 장수군 계남면 음신마을에서 예배하기 시작한 것은 1907년 11월 29일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4년 후 신전리에 집 한 채를 얻어 예배당으로 삼으면서 신전교회의 역사는 진행됐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해 온 신전교회 옛 강대상 앞에는 바로 그 앞에서 혼례한 교우들의 사진이 빼곡하게 걸려 있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해 온 신전교회 옛 강대상 앞에는 바로 그 앞에서 혼례한 교우들의 사진이 빼곡하게 걸려 있다.

시작하는 과정은 순탄치가 못했다. 처음 신전교회 예배를 인도하던 박래문씨가 집안의 반대로 큰 핍박을 받은 이야기며, 대홍수로 인해 예배당이 크게 파손되었던 이야기는 교회의 존립까지 위태로운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하지만 시련은 이들의 믿음을 꺾지 못했다. 오히려 더욱 단단하고 신실한 공동체로 자라게 만들어주었다. 여기에는 앞장서 헌신의 본을 보인 이들의 수고도 큰 역할을 했다.

신전교회 설립 100주년 기념비와 돌로 쌓은 종탑.
신전교회 설립 100주년 기념비와 돌로 쌓은 종탑.

1922년경 경북 칠곡에서 이주해 온 이정기 씨의 아내 신 씨부인은 전도의 열정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녀를 통해 문달석 염장례 정성녀 등이 결신을 했고, 이들은 신전교회의 새로운 주축이 되었다.

특히 문달석은 훗날 교회의 영수가 되어 전도와 봉사에 앞장서는 인물이 된다. 초대 박진서 장로에 이어 2대 장로로 장립 받아 섬기다, 전도사 직분을 받고 경북 경주로 떠나는 길에 자신의 집을 통째로 신전교회에 봉헌한 일은 교회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만큼 대단한 일화이다.

문달석이 떠난 후 홀로 남은 박진서 장로는 열심히 예배를 인도하며 성도들을 돌보았고, 그 결과 험난한 일제강점기도 돈독한 신앙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송성기 목사가 담임하던 시절인 1949년 발생한 대홍수와 그로 인한 예배당 파손은 교회를 똘똘 뭉치게 했다. 놀랍게도 재난 이후 신전마을 전체가 복음화되며 예수마을로 변신이 이루어진 것이다.

권윤도 허찬일 윤광길 조규상 오규환 김진수 목사 등 역대 교역자들은 예수마을의 전통을 단단히 세우는 것은 물론, 다음세대들이 그 전통을 바로 이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선교원과 복지관을 개원하고, 계남제일교회 내동교회 명덕교회 등을 개척하면서 복음을 더욱 넓은 지경으로 확산시켰다.

장수지역 최초의 교회인 신전교회의 옛 예배당. 112년 세월의 흔적들을 건물 안팎에서 가슴 설레게 확인할 수 있다.
장수지역 최초의 교회인 신전교회의 옛 예배당. 112년 세월의 흔적들을 건물 안팎에서 가슴 설레게 확인할 수 있다.

신전교회의 옛 예배당은 고풍스러운 외관 및 돌탑 형태의 독특한 종탑과 함께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채 교우들은 물론 처음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을 오래전 과거로 안내한다.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 공간을 가득 채운 옛 사진들과 주보 등을 하나씩 관람하다 강대상 방향의 쪽문을 살짝 열어보면 깜짝 놀랄만한 또 다른 공간 하나가 나타난다.

오래된 강대상이 마치 타임머신에서 막 나온 듯 예전 모습 그대로 보존된 채 손님들을 맞이한다. 특히 방문객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장면은 바로 이 강대상 앞에서 백년가약을 맺은 역대 교우들의 결혼식 당시 사진 백여 점이 주변을 장식한 모습이다.

앞으로 신전교회는 이 신비롭고도 아름다운 공간을 역사관으로 다시 꾸며, 복음과 사랑으로 지탱해 온 112년의 자랑스러운 세월을 널리 알릴 계획이다.

담임목사가 들려주는 두 교회 오늘과 내일

‘무진장’ 복음화 사명감 공유
동전주노회 함께 섬기며 선한 영향력 확대

장수 신전교회(박창석 목사)와 진안 황금교회(추형호 목사)는 앞서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 지정 청원을 하고 최종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부귀중앙교회(전택복 목사)와 함께 무주 진안 장수의 교회사 그리고 동전주노회사를 초창기부터 함께 이끌어왔다는 자긍심을 공유한다.

황금교회 추형호 목사.
황금교회 추형호 목사.

특히 황금교회 추형호 장로와 신전교회 양은종 장로가 각각 노회장과 부노회장으로서 동전주노회를 함께 섬기면서, 두 교회는 더욱 각별하고 돈독한 관계가 됐다. 황금교회는 설립 이후 최초로 올 봄에 노회 정기회를 유치하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신전교회는 장수 최초의 교회로서 책임감과 사명을 다한다는 자세로 지금도 분주하게 사역하는 중이다. 농촌교회로서는 드물게 제자훈련과 가정교회 시스템을 안착시켜 건강한 성장을 이루어왔으며, 그 저력으로 지역주민들을 위한 의료봉사 열린음악회 가정사역 등을 역동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복음의 빚을 갚는다는 심정을 품고 해외선교에도 크게 기여한다. 2011년부터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지를 돌며 단기선교 사역에 나선 것을 계기로 2017년에는 교회설립 110주년을 기념해 태국에 단독 선교사를 파송하고, 올해에는 장수읍내에 선교사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를 건축하는 등의 열매를 거두었다.

신전교회 박창석 목사는 지난 100년간의 역사에서 그러했듯 무진장 복음화를 위한 길을 함께 걸어가고자 한다.
신전교회 박창석 목사는 지난 100년간의 역사에서 그러했듯 무진장 복음화를 위한 길을 함께 걸어가고자 한다.

박창석 목사는 “매주 토요일이면 온 교우들이 교회 주변 7개 마을을 돌며 전도와 나눔 사역을 펼칩니다. 이웃 미자립교회들을 위해 건축과 전도 등의 사역을 열심히 돕기도 합니다. 성숙한 신앙의 모습으로 농촌교회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싶습니다”라고 밝힌다.

황금교회는 산간 오지라는 지역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웃들과 한 공동체를 이루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마을 어떤 집안에든 애경사 및 어려운 상황들이 발생하면, 신자나 불신자 여부도 가리지 않고 교회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도우미 역할을 감당한다.

추형호 목사는 “말씀이 살아있고 기도의 역사가 강력한 교회의 모습, 선한 이웃으로서 다가가는 모습이 황금교회에서 계속해서 나타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일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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