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신신대원에 다닐 때 조직신학 수업에서 기독교변증학을 잠깐 들었다. 어떤 강의였는지 기억도 안난다. 초대교부 어거스틴과 중세시대 아퀴나스와 ‘오캄의 면도날’, 그리고 반틸의 변증학만 떠오를 정도다. 당시 강의를 들으면서 “저런 변증을 어디에 써먹을까?”라고 심드렁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몇 년 전부터 신학교에서 배운 것과 차원이 다른 변증학을 체험하고 있다. 신학교에서 배운 변증학은 역사적 변증학이었다. 교회가 2000년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했는지 배우고, 그 존재증명을 오늘도 사용하려 했다. 문제는 그 역사적 변증학에 ‘오늘’이 없었다는 것이다. 2000년 밀레니엄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연구가 없었다.

미국 교회는 1980년대부터 ‘현대적인 기독교변증학’을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교회에 기독교변증학을 전공하고 학위를 취득한 교수는 거의 없다. 한 교수는 그 이유를 2가지로 설명했다. 지성의 한계와 신학교의 한계.

현대의 기독교변증학은 신학을 기반으로, 의학 생물학 뇌과학 물리학 천문학 고고학 등 다양한 분야와 연결돼 있다. 과거에 기독교변증의 대상은 이단과 자유주의 신학이었지만, 지금은 과학이기 때문이다. 이미 전공을 정하고 유학을 떠난 학자가 기독교변증까지 공부할 여력도, 생소한 다른 학문에 대한 지성적 뒷받침도 없다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신학교들의 한계다. 한국의 신학교들은 지금도 역사적 변증학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신학교가 현대인을 위한 기독교변증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신학자도 그 학문을 전공하려 결단하지 않는다.

요즘 총신대가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 변화의 폭을 더욱 넓히길 바란다. 한국의 신학교 중 최초로 총신대와 총신신대원에서 기독교변증학 과목을 개설하길 바란다.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와 교회에 ‘현대 기독교변증학’은 힘과 능력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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