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가옥서 주일예배, 보상협상 시작도 못해 … 교회서 위로 받는 재난민 돌봄사역 시급

더딘 복구, 무너지는 공동체 … 검은 눈물 흐른다

짙은 녹음이 참혹함을 숨겼다. 화마를 피한 수목들은 검게 탄 나무 옆을 지키며, 전소한 집들을 가려주었다. 그러나 하늘에서 불이 떨어졌던 재난의 상처를 모두 감출 수는 없었다. 철거하지 못한 채 뼈대만 남은 집들이 불쑥불쑥 나타났고, 검게 탄 육중한 건설기계와 농기계들이 도로 옆에 주저앉아 있었다.

강원도 고성 산불재난이 발생한 지 100일을 맞고 있다. 공무원연수원 등에서 머물렀던 이재민들은 6월 20일부터 임시주택으로 거처를 옮기기 시작했다. 용촌리 이재민들을 위한 임시주택단지에서 아직 마무리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강원도 고성 산불재난이 발생한 지 100일을 맞고 있다. 공무원연수원 등에서 머물렀던 이재민들은 6월 20일부터 임시주택으로 거처를 옮기기 시작했다. 용촌리 이재민들을 위한 임시주택단지에서 아직 마무리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4월 4일 강원도 고성과 속초 지역을 휩쓴 산불재난이 발생한 지 꼭 3개월이 지났다. 산불재난 100일을 앞두고 가장 피해가 심했던 고성군 토평면 원암리, 인흥리, 용촌리 일대를 다시 찾았다. 폭격을 맞은 듯 처참했던 마을들은 한창 공사 중이다. 전소한 집들은 대부분 헐려 공터로 변했다. 일부만 피해를 입은 집들은 외벽을 보강하고 내부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마을 인근 공터는 임시주택단지로 변했다.

“겨울 전에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산불 발화지점인 원암리에도 임시주택단지가 들어섰다. 전소한 설악산교회 맞은편에서 막바지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설악산교회 유광신 목사와 이경석 목사는 해비타트가 마련해 준 임시가옥에서 생활하고 있다. 주일예배도 임시가옥에서 남은 성도 4명과 드린다.

“우리 교회도 그렇고 피해를 당한 주민들도 대책조차 마련할 수 없는 상황이 가장 힘들다. 지난 6월 18일에서야 한국손해사정협회에서 피해 가옥에 대한 전수조사를 시작했다. 전수조사를 8월 말까지 끝내고 9월에 발표한다고 했다. 그때부터 한전과 보상협상을 해야 한다. 보상협상이 언제 끝날지, 얼마나 보상을 받을 지 알 수 없다.”

유광신 목사는 주민들이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올해 안에 협상을 마무리하고 보상을 받을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설악산교회도 조사를 받았다. 유 목사는 피해액을 어느 정도 산정했는지 걱정했다. 안전진단 결과, 설악산교회는 철골구조의 문제로 2층을 사용할 수 없다고 판정받았다. 그래서 2층을 철거하고 1층만 리모델링할 계획이다. 예배당을 새로 건축할 계획이지만, 보상금이 얼마나 나오느냐에 달려있다고 했다.

보상금 둘러싼 갈등, 무너지는 공동체
어디서나 가장 힘든 사람들은 가난한 이들이다. 재난의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보상을 받지 못했지만 새로 건축하는 주민들도 있다. 한 주민은 정부지원금과 국민성금으로 일단 집을 건축하고 있다. 정부는 피해규모에 따라 전파·반파·소파 3단계로 나누어 지원금을 주민들에게 지급했다. 가옥이 완전히 불에 탄 전파피해 주민은 국민성금 3000만원을 비롯해 총 6000만원 정도 지원받았다. 반파피해 주민은 3000만원, 소파피해 주민은 575만원 수준이다.

피해규모에 따라 보상액이 달라지다보니, 피해 주민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인흥리의 최선자 할머니(74세)는 가옥 외벽과 유리창 파손 및 내부 그을음 피해 등으로 반파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이웃주민이 진정서를 제출했고 ‘소파’로 피해규모가 떨어졌다.

최 씨의 딸 김O경 씨는 “이미 받은 지원금 중에서 1000만원을 반납하라는 통지가 왔다. 공사비로 사용했는데, 당장 1000만원을 어떻게 마련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당장 살 곳도 없어졌다. 소파피해로 떨어지면서 임시주택 배정도 취소됐다. “급하게 그을음과 탄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 도배와 장판을 새로 했다. 그래도 머리가 아플 정도로 냄새가 심하다. 어머니가 있을 곳이 여기 밖에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모두 돌보고 싶지만, 우리 힘만으로는 힘들어”

설악산교회 유광신 목사와 이경석 목사가 전소된 예배당에서 폐기물을 치우고 있다. 2층 철골로 건축한 설악산교회는 안전진단 결과, 1층만 사용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2층 철골구조물은 모두 철거해야 한다.
설악산교회 유광신 목사와 이경석 목사가 전소된 예배당에서 폐기물을 치우고 있다. 2층 철골로 건축한 설악산교회는 안전진단 결과, 1층만 사용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2층 철골구조물은 모두 철거해야 한다.

용촌리는 피해가 가장 큰 동네였다. 피해규모와 보상 문제로 진정서를 많이 제출한 곳도 용촌리라고 한다. 용촌교회 이상용 목사는 “사실 재난을 당한 우리 성도들과 주민들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바쁘고 어렵다. 보상을 둘러싼 진정과 갈등 문제는 신경 쓰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이상용 목사는 산불재난 발생 직후부터 성도와 마을주민들이 생활하는 공무원연수원 등을 돌아다니며 위로하고 함께 기도하는 사역을 진행했다. 그 정성으로 교회에 나오기를 거부했던 할머니가 출석하고 있다.

김근남 집사(78세)는 산불로 집이 전소하고 4월 8일 공무원연수원에 들어갔다. 김 집사는 “목사님이 매일 연수원에 오셔서 기도해 주시고 위로하셨다. 주민들 모두 너무 고마워했다”고 말했다.

김 집사는 6월 27일 연수원에서 나와 임시주택에 입주했다. 다행히 자녀들이 힘을 모아 새 집을 짓고 있다. “올해 안에 임시주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뻐했다.

이상용 목사는 산불재난 이후 주민들의 불안감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지역의 목회자들이 그 마음을 위로하면서 교회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여건상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모두 돌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용촌교회처럼 고성군의 교회들은 대부분 작고 어렵다. 목회자가 열심히 뛰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주민들을 돕고 싶어도 재정 어려움은 어쩔 수 없다.”

‘반가운 이웃’ 시은소교회가 왔어요
용촌교회 찾아 이재민 위로 … “지원사역 계속 할 터”

시은소교회 김철승 목사와 당회원들이 용촌리 마을회관에서 이재민을 위로하는 잔치를 진행하고 있다
시은소교회 김철승 목사와 당회원들이 용촌리 마을회관에서 이재민을 위로하는 잔치를 진행하고 있다

6월 29일 용촌리에 손님들이 찾아왔다. 시은소교회 김철승 목사를 비롯해 교역자와 장로 15명이 용촌교회 이상용 목사의 인도로 용촌리 이재민들을 만났다. 시은소교회는 마을회관에서 30여 명의 주민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위로의 마음을 전했다. 이날 행사도 의미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시은소교회가 용촌교회와 함께 이재민 지원 사역을 계속 펼칠 예정이란 점이다.

산불재난이 발생했을 때, 김철승 목사를 비롯한 구호팀은 고성으로 달려갔다. 현장을 점검하는 차원이 아니라 5일 동안 재난현장에서 이재민 구호사역을 펼쳤다. 김철승 목사는 “어느 지역보다 피해가 심각한 용촌마을을 돕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마을과 주민을 위해 헌신하는 용촌교회를 알게 됐다. 용촌교회를 통해 고통과 아픔을 당한 주민을 돕고, 이를 통해 지역을 복음화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시은소교회는 5월부터 이상용 목사와 협의하면서 지속적으로 이재민들을 위로하고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첫 번째 원칙은 시은소교회는 뒤에서 지원을 하고, 용촌교회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단회적인 재정지원이나 행사 개최를 지양하고, 용촌마을 회복을 위해 지속적으로 돕는다는 것이다.

시은소교회는 용촌교회와 자매결연을 맺고, 이재민 지원은 물론 용촌마을 공동체 회복 사역을 펼쳐나가기로 했다.
시은소교회는 용촌교회와 자매결연을 맺고, 이재민 지원은 물론 용촌마을 공동체 회복 사역을 펼쳐나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 시은소교회는 용촌교회와 자매결연을 맺고 주민위로잔치를 시작으로 다양한 사역을 진행할 예정이다. 먼저 용촌교회 이상용 목사를 시은소교회에 초청해서 성도들에게 후원과 기도를 요청할 계획이다. 대학생들과 청년들, 교통봉사부 등 기관들은 용촌마을에서 아웃리치를 펼친다. 용촌리 이재민들을 수원으로 초청해 관광하며 위로하는 행사도 추진하고 있다.

김철승 목사는 “그동안 이상용 목사님은 이재민들을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위로하셨다. 그 사역을 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시은소교회는 용촌교회가 더욱 지역 주민과 이재민들을 위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시은소교회는 협력을 통해서 이루고 싶은 비전이 있다. 상처입은 주민과 이재민을 위로하는 차원을 넘어, 용촌리를 아름다운 마을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나눔이 넘치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는 마을’을 꿈꾸고 있다.

시은소교회는 복음 안에서 주민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용촌마을 공동체를 회복시키려는 의미 있는 사역을 시작했다. 이런 협력이 원암리와 인흥리 등 고성군 마을 곳곳에서 일어나길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