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개혁교회 종교개혁 500주년] ① 츠빙글리 종교개혁과 의미(인터뷰-주도홍 교수)
[기획/ 개혁교회 종교개혁 500주년] ① 츠빙글리 종교개혁과 의미(인터뷰-주도홍 교수)
  • 노충헌 기자
  • 승인 2019.07.01 2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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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빙글리, 개혁신학 전통 풍부한 이해 돕는다”

개혁교회 아버지 … 성경 명료성과 역할 강조하며 복음적 강해설교 내세워
성례는 구원의 상징이며 서약임을 강조 … ‘성경적 교회상’ 정립에 큰 역할

예장합동 교단은 개혁교회의 전통을 이어받았고 이를 표방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개혁교회의 시작은 언제일까? 많은 학자들은 1519년 종교개혁가 츠빙글리(1484~1531)가 스위스 취리히의 그로스뮌스터교회 취임예배 설교를 한 때를 그 시작으로 본다. 세계의 개혁교회들은 이를 기념하여 올해를 종교개혁500주년으로 지켰다. 츠빙글리의 생애와 사상을 살펴보면서 개혁교회의 전통을 다시 생각해본다. 첫 순서로 개혁교회종교개혁500주년기념대회 대회장을 맡고 있는 주도홍 교수(백석대 부총장) 인터뷰를 싣는다. 주 교수는 2018년부터 개혁교회 500주년에 대한 인식을 역설한 인물이다. <편집자 주>

주도홍 교수는 개혁교회종교개혁500주년기념대회 대회장을 맡아 종교개혁과 개혁신학의 중요성을 국내외에 전파하고 있다.
주도홍 교수는 개혁교회종교개혁500주년기념대회 대회장을 맡아 종교개혁과 개혁신학의 중요성을 국내외에 전파하고 있다.

▲개혁교회종교개혁의 시작을 1519년으로 잡는 이유는.

=츠빙글리는 1519년 1월 스위스 취리히의 그로스뮌스터교회에서 취임 설교를 했다. 그는 마태복음을 본문으로 선택해 강해설교 형식으로 말씀을 전했는데,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첫째, 츠빙글리는 설교 본문을 직접 선택했다. 당시 교회의 사제는 가톨릭교회가 위에서부터 내려주는 동일한 본문을 강론해야만 했다. 목회자가 설교본문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은 당시로는 파격이었다. 둘째, 강해설교를 했다. 성경이 쓰여질 당시의 배경과 문맥을 살피고, 설교를 듣는 현대의 청중들에게 말씀을 적용하면서 살 것을 도전했다. 셋째, 자국어인 독일어로 설교했다. 이전까지 강론은 라틴어였다.

설교의 면면만이 아니라 츠빙글리가 그로스뮌스터교회에 청빙된 것 자체가 화제였다. 로마가톨릭 사제들이 중앙에서 배정하는대로 교회를 맡았던 시기였는데 그로스뮌스터교회는 이를 거부하고 츠빙글리를 초빙했다. 또 츠빙글리도 교회의 취지에 기꺼이 응했다. 이런 요소들은 중세 가톨릭교회 전통과 완전한 결별을 선언한 것이었기에 개혁교회 500주년의 시작으로 정하기에 충분하다.

2017년이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이었지만, 츠빙글리에서 비롯된 스위스 종교개혁 500주년도 놓칠 수 없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스위스 종교개혁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혁교회는 루터교회와 분명히 다르다. 개혁신학은 다양한 상황과 문제들을 만나며 수많은 신앙고백을 통해서 표현되어 왔기에, 루터교회의 하나의 신앙고백으로 일치된 신학과는 엄연한 구별이 요청된다. 또 츠빙글리는 잊혀진 종교개혁자이자 개혁교회의 아버지이다. 개혁신학은 츠빙글리와 함께 시작한다. 그래서 츠빙글리 연구를 이제부터라도 차분하게 시작해야 한다. 츠빙글리의 신학을 공부한다면 칼빈으로 대표되는 개혁신학의 전통도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다.

▲츠빙글리의 업적은 무엇인가.

=츠빙글리는 성경의 명료성과 역할을 강조했고 복음적 강해설교를 내세웠다. 성경의 진정한 주석자로서 성령의 사역과 기도를 강조했고 급진적인 예전의 개혁을 이뤘다. 하나님의 언약과 섭리, 그분의 예정을 강조하며 개혁교회의 예정론과 성례 신학의 기초를 놓았다. 교회에서 평신도의 역할을 광범위하게 넓혀가고자 했으며, 라틴어 대신 평민들의 언어를 사용했다. 성례 중심의 미사를 강해설교 중심의 예배로 대치시켰다. 세속 정부의 철저한 권징을 강화하며, 대회 정치제도를 실시했고, 공무원을 목자로 일컬으며 국가와 교회의 파트너십을 강조했다. 츠빙글리는 1523년 ‘67개 논제에 대한 해제’를 제시했으며, 스위스교회는 이에 힘입어 중세교회를 향한 개혁을 추진했다. 교회개혁은 매우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오르간은 부서졌고, 교회 내부에 걸려있던 성상과 성화는 제거되었으며, 성직자들의 결혼이 허용되었고, 수도원은 문을 닫아야 했다. 예배의식은 단순화되었으며 성례는 기억, 고백, 친교의 예식으로 이해되었다. 그의 저서 <진정한 신앙과 거짓 신앙에 관한 주석>은 칼빈의 <기독교강요>에 영향을 주었으며 그는 이 책을 통해 중세교회를 예리하게 비판했다. 그의 사상은 동역자 불링어와 한 세대 후에 등장한 요한 칼빈 등으로 이어졌다

▲츠빙글리의 신학사상을 요약해 준다면.

=말씀과 성례 그 자체가 은혜의 수단이라는 점을 거부했다. 설교는 구원을 선포하지만 그것이 인간들의 마음에서 실존적으로 역사하게 하는 일은 성령의 사역이라고 보았다. 성례 그 자체가 구원의 수단이라는 통념을 부인하고, 성례는 구원의 상징이며 서약이라고 주장했다. 또 자유의 신학자였다. 사순절의 금식 전통을 깨는 설교와 글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교회법은 성경과 일치할 때만 유효하다고 밝혔다. 초대교회와 교부들의 전통일지라도 성경에 근거하여 틀리면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세교회의 철학적 신학인 스콜라주의로부터 신학적 자유도 부르짖었다. 츠빙글리는 이성의 지배를 받는 철학적 신학을 성령의 신학으로 전환할 것을 역설했다. 잘못된 기도로부터의 자유도 말했다. 기도하는 자들이 벗어나야 할 두 가지가 기도를 물질적 요청으로 이해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기도의 양에 따라 보상하는 그 어떠한 공로로 이해하는 태도라고 보았다. 그리스도는 율법의 굴레로부터 자유케 하신다면서 영원한 계명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도원과 고해성사의 자유를 강조했으며 사회 정치 경제에 관심을 갖고 당시의 용병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오늘의 개혁교회에 시사하는 점은.

=2019년 개혁교회종교개혁500주년을 맞은 한국교회는 개혁교회종교개혁을 역사적으로 바로 인식하여 신학적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 한다. 오늘의 교회가 개혁주의 전통을 잘 이어받고 있으며 그를 통해 성경적 교회상을 이루고 있는가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미래지향적으로 시대적 사명을 분명히 감당하게 될 것이다. 특히 세계 유일한 분단의 땅에서 한국교회는 분명한 복음의 기치를 내세우며 교회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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