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 바나바는 둘도 없는 친구였다. 사도행전의 중반부는 두 사람의 빛나는 동행 스토리로 채워진다. 그런 둘에게 불화가 일어나고 갈라지는 일이 발생한다. 마가라는 후배의 서투른 행실을 두고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던 두 사람은 결국 각자 따로 사역하는 길을 택한다.

오늘날에도 이 같은 일들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절대 갈라질 일 같은 건 생기지 않을 듯 보이던 사이에서도 사소한 틈이 벌어지는 기색이 보인다싶더니 금세 절교선언까지 나오곤 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전의 좋았던 세월은 다 어디 갖다 버렸는지 서로 헐뜯고 몰아세우며, 추한 방식으로 싸움이 번지는 대목에서는 그야말로 혀를 내두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렇게 누군가는 배신자도 되고, 성격파탄자도 되고, 심지어 ‘사이비ㆍ이단’이나 ‘종북좌파’로까지 몰린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서로 합의할 수 없는 지점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다. 설사 그런 부분이 생겼다 해서 상대를 향한 존중마저 저버려서는 안 된다. 진리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면 언제고 다시 화해하고 용납할 자리는 남겨두어야 하는 법이다. 그것도 아닌데 상대의 인격과 정체마저 짓밟는 싸움으로 커져버렸다면 이는 애당초 그들 사이에 패거리의식만 있었을 뿐 진정한 우정이나 동역자 정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바울과 바나바의 다툼은 훗날 바울이 마가를 다시 자신의 곁으로 부르는 화해로 마무리된다. 그들의 반목이 끝내 멈추지 않았다면 기독교는 진작 바울교와 바나바교로 분열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성숙하자. 누군가를 한때라도 진짜 동역자라 여겼다면 잠시의 실망감으로 상대를 함부로 정죄하거나 저주하는 모습만은 삼가야 한다. 그리스도인들끼리 대립이 상식의 선을 넘어 극단으로 치닫는 모습들이 안타까워 드리는 말씀이다. 실제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 그에 힘을 합쳐 맞설 전우가 누구인지 정말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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