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우 기업 선산행복일터 김이진 대표
‘세탁소’ 건실한 운영, 경쟁력 갖춘 자립 도와

건물 외벽 꼭대기에 큰 글씨로 이곳의 성격을 드러내는 이름인 ‘행복 세탁소’가 쓰여있다.
건물 외벽 꼭대기에 큰 글씨로 이곳의 성격을 드러내는 이름인 ‘행복 세탁소’가 쓰여있다.

경북 구미시 선산에 있는 ‘선산행복일터’. 파란 페인트 바탕에 꽃이 그려진 건물 외벽에는 ‘행복세탁소’라는 간판이 걸렸다. 마당 한쪽에서 대형침대 매트리스 세탁을 하는 발달장애우 직원들의 손길은 분주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발달장애우들이 다른 직원들과 함께 세탁과 건조 과정을 거친 빨래를 쉼없이 개고 있었다. 발달장애우의 자립을 돕는 사회적 기업인 선산행복일터의 일상이다.

선산행복일터 김이진 대표는 원래 신학도였다. 그는 20대에 지금의 대신대학교에서 신학을 했다. 그런 그가 발달장애우와 만나게 된 계기는 특별하다. 그는 제대하기 6개월 전부터 계속 꿈을 꿨다. 김 대표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기도할 때나 잠잘 때나 계속 장애인과 함께해야 한다는 꿈을 하나님께서 꾸게 하셨다”라고. 밤낮없이 반복되던 꿈을 말하며 “미치겠더라”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이 꿈을 하나님이 주신 비전으로 받아들이고, 91년도부터 장애우 사역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장애우 복지분야로 들어선 김이진 대표는 대구아시아복지재단, 대구 나눔공동체, 성주 예원의 집 설립에 직간접적으로 관여 했다. 이런 공동체를 거치며 발달장애우를 구제의 대상이 아닌 ‘자립’의 대상으로 봐야 한다는 확고한 철학이 생겼다. 일회성에 그치는 후원이 아니라 자립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다. 그 일환으로 장애인 사회복지시설인 예원의 집을 운영할 때는 장애우들과 함께 약감주 등을 만들어 파는 것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김 대표는 예원의 집을 넘기고 병원에서 노인 의료 업무에 종사했다.

“간판이 참 예쁘지예?” 선산행복일터 김이진 대표가 세탁소 간판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웃고 있다.
“간판이 참 예쁘지예?” 선산행복일터 김이진 대표가 세탁소 간판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웃고 있다.

노인 의료 관련 업무를 하던 그에게 뜻하지 않은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김 대표는 당시 상황을 “발달장애우 관련 일이 미치도록 하고 싶었던 때”라고 설명했다. 다시금 발달장애우 일에 뛰어들었다. 사회적 기업을 설립하기로 했다. 무수한 일 가운데 발달장애우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업종 선택에 심혈을 기울였다. ‘자립’이라는 의미 강조를 위해 전 공정의 80% 이상을 발달장애우가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 그리고 여타 기업과 비교할 때 경쟁력도 갖춰야 한다는 기준을 세웠다.

여러 사업을 검토하던 중 ‘세탁소’가 떠올랐다. 김이진 대표는 발달장애우와 함께한 경험을 통해 그들이 소근육보다 대근육을 더 자유로이 쓸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세탁일은 그런 면에서 적합했다. 노인복지기관을 퇴직하면서 받은 돈과 아파트를 팔아서 마련한 7000만원을 종잣돈 삼아 지난 2012년 행복세탁소를 설립했다. 2014년에는 선산중앙교회의 도움으로 4억5000만원을 대출받아 지금의 세탁소 대지를 샀다.

세탁소를 차린 후에는 커튼, 매트리스, 의자세탁 등 특정 아이템을 찾아 지역의 다른 세탁소와 차별화 해 나갔다. 투자도 끌어냈다. 동그라미재단의 경영지원 프로그램을 비롯해 대기업 등에 사업 투자제안서를 제출해 어엿한 기업으로써 투자금을 받아내기도 했다. 끊임없는 연구와 도전으로 선산행복일터의 사업은 올해 초부터 흑자가 나기 시작했다. 작년 12월에는 10년 동안 먹던 공황장애 약도 끊었다. 현재 선산행복일터는 김이진 대표 내외와 2급 발달장애우 6명, 일반인 5명까지 총 13명이 일하고 있는 기업이 됐다.

김 대표가 직원들과 함께 빨래를 개고 있다. 행복세탁소에는 발달장애우를 포함, 총 13명의 직원이 있다.
김 대표가 직원들과 함께 빨래를 개고 있다. 행복세탁소에는 발달장애우를 포함, 총 13명의 직원이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김 대표는 선산행복일터와 같은 사회적 기업이 계속 생겨야 한다는 비전을 굳혔다. 소규모 기업이 마을마다 생긴다면, 지역사회 내에서 발달장애우의 자립을 도울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김 대표는 행복세탁소 2층에 ‘세탁학원’ 설립을 준비 중이다. 그는 다른 마을이 여기서 배워가 본인 마을에서 기업을 만들어, 사회적 약자의 자립을 돕는 일들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한국교회에 제언하기도 했다. “장애우들에게 단순히 구제헌금을 주는 것보다 교회가 지닌 강점인 공동체 정신과 인적 자원을 이용해 발달장애우들이 스스로 지역사회 일원으로 설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김이진 대표는 사회적 기업을 이끄는 경영인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실천하는 삶, 그 자체가 목회하는 것이라 자부한다. 김 대표는 “나는 내가 목회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힘주어 말했다. 일상의 영성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김 대표는 사회 곳곳에서 신학적 가치를 실현하는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일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가꾸는 사명을 다 하고 있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대가 바뀜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노인, 지역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명을 감당할 일꾼을 부르실 것이다”라며 목회의 지평을 넓혀야 함을 제언했다. 그렇게 그는, 주님이 주신 ‘발달장애우 사명’을 일상에서 살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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