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회, 150평 전용 건물서 온도·습도 조절하며 관리 … 쉽고 정확한 정보 활용에 초점
예장통합, 전국교회서 기증 받은 ‘손때 묻은 역사’ 보존 힘써 … 체계적 수납 정리가 강점

역사보존과 계승 체계적 관리가 교단의 저력

임진왜란 중 까만 재로 사라질 뻔 했던 <조선왕조실록>이 전주사고를 담당하던 관리와 백성들의 헌신으로 무사히 보존돼, 오늘날 한국사는 물론 다양한 분야 연구의 무궁무진한 원천이자 귀중한 세계문화유산으로까지 주목받고 있다. 이 이야기는 역사자료 관리가 때로는 역사 그 자체를 바꿀 수도 있다는 교훈으로 풀이된다.

교회의 역사 혹은 총회의 역사도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수고와 정성을 통해 보존되고 계승되어 왔다. 헌신적인 관리자 그리고 이에 대한 안목을 가진 교단 수뇌부의 뒷받침이 있다면 한국교회에도, 우리 총회에도 <조선왕조실록> 못지않은 위대한 기록유산이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다른 교단의 모범적인 관련 사례를 집중 조명하며, 우리 총회의 역사자료관리가 가야할 바른 방향을 모색한다. <편집자 주>

기독교대한감리회 역사정보자료실

일단 산뜻한 건물이 눈에 확 들어왔다.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의 감리교연수원 입구에 세워진 기독교대한감리회 역사정보자료실은 산기슭의 허름한 문서 창고를 상상했던 것과 달리 외관부터가 특별했다. 언제나 꺼내볼 수 있는 타임캡슐이라 표현해도 좋을 만큼 깔끔하고 견고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역사정보자료실은 방대한 자료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철저하게 관리하는 시스템이 돋보인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역사정보자료실은 방대한 자료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철저하게 관리하는 시스템이 돋보인다.

교단 총회록부터 각종 보고서와 정기간행물 심지어 개인신상과 관련된 서류 등 감리교회의 모든 문서들은 이곳으로 모인다. 감리교는 총회, 연회, 교회와 각 기관에서 작성된 공식문서들을 의무적으로 역사정보자료실에 2부씩 보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자료제출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상당한 불이익이 따르기 때문에 필수자료 수집은 100% 이루어진다.

때문에 1893년부터 1940년까지의 <조선감리회 연회록> 등 초창기 자료들은 물론이고, 연대별 교단 헌법과 기관지인 <기독교타임즈> 합본, 각종 최신 보고서와 영상자료들까지 감리교회의 모든 것이 2층짜리 건물 안에 집약되어 있다. 총회본부 등에서 나온 주요 결재서류와 회계전표 등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상자에 담겨 역사정보자료실로 옮겨온다.

이렇게 수집된 자료들은 곧바로 그 성격에 따라 분류된 후 목록화가 이루어진다. 목록에는 각 자료별 내용과 제작연대, 보관된 위치까지 표시가 되고,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관리되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원하는 자료를 검색하고 열람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개교회의 현황을 파악한다든지, 해외에 파송된 선교사의 이력을 확인한다든지 하는 식의 다른 교단들 같으면 결코 쉽지 않을 작업들까지 감리교 역사정보자료실에서는 신속하고 오차 없이 해낼 수 있다.

역사관 수장고, 서류창고 등 모든 공간은 온도와 습도 조절장치까지 동원되어 관리되며, 정기적으로 청소도 이루어진다. 또한 아무리 사소한 문건이라도 공식적인 절차 없이 삭제하거나 수정하는 것은 불가하다. 때문에 보관 자료들이 훼손되거나 소실될 위험이 거의 없다. 고문서나 중요 문서들은 영인본을 따로 제작하거나, 전산화작업을 거쳐 인터넷에 게시한다.

게다가 모든 소장 자료들은 2년에 한 차례씩 전체 검수작업을 거친다. 한 번 시작하면 약 4개월에 걸쳐 진행되는 지난한 작업이지만, 이를 통해 자료 유실과 보존 여부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보충하면서 자료실 기능을 완벽하게 유지해나간다.

수장고 한 편에는 도서관 열람실과 같은 공간이 마련되어있어, 역사연구를 하거나 과거의 결의내용 등을 확인하려는 방문자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굳이 방문하지 않더라도 전화나 인터넷을 통해 자료요청을 하는 이들에게는 원하는 자료를 무료로 복사해 송달해준다.
역사정보자료실 관리와 운영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교단총회에서 연 1800만원이라는 충분한 예산을 세워 지원해주기 때문에, 이용자들이 별도의 부담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오랜 기간 자료실 실무를 담당해온 조병철 목사의 설명이다.

“사실 역사정보자료실은 24평 조그만 공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자료들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과정을 차근차근 반복하면서 공간이 점점 넓어졌고, 활용도도 높아졌습니다. 10년 전에는 150평짜리 전용 건물을 건축해 단독 사용할 수 있게 되었지요. 저희처럼 기본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면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만족할만한 수준의 사료실을 운영할 수 있게 되실 것입니다.”

예장통합총회 사료관

예장통합 사료관에는 선교사와 역대 총회장들의 손때 묻은 유품들이 정감을 자아낸다.
예장통합 사료관에는 선교사와 역대 총회장들의 손때 묻은 유품들이 정감을 자아낸다.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관 1층에 예장통합총회 사료관이 들어선 것은 2006년이다. 일단 공간에 들어서면 장로교회 초창기 역사에서부터 현재의 모습까지 두루 담은 역사전시실이 돋보이지만, 그 힘 역시도 정식 명칭인 ‘사료관’으로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해온데서 우러나온다.

역사보존과 계승의 중요성을 잘 아는 교단의 특성답게 일찌감치 사료관을 개관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모든 것이 체계적으로 관리된 것은 아니었다. 감리회 역사정보자료실처럼 예장통합사료관에도 기초를 다지는 과정이 필요했다.

“1984년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행사 당시 기증된 물품들이 사료관의 기초가 되었어요. 이후 고서점을 뒤져 추가 전시자료들을 찾고, 전국교회로부터 교회사와 노회사 등을 수집하며, 개별 기증까지 받아 사료관을 채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구미화 권사는 사료관의 산 증인과도 같은 존재이다. 도서관학과 출신인 구 권사는 2008년 사료관 인턴으로 채용된 이후 12년째 근속하는 중이다. 초창기에 어수선했던 사료관에서 자료색인 작업부터 시작해 하나씩 체계를 잡고, 자료정리에서 전시해설까지 담당하며 오늘날 매년 수천 명의 관람객들이 찾는 한국교회 역사교육의 장으로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전시물들 중에는 한국교회사에 커다란 의미가 있는 자료들도 있지만, 목사가운 직인 안경 문구류 등 비교적 사소해 보이는 물품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물건들에 첨부된 선교사 혹은 역대총회장들의 손때 묻은 비품이라는 설명 문구를 살펴보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총회사료관이라는 정체성을 생각해보면 수집물품의 다양성을 꾀하는 방식도 제법 설득력이 있다.

또한 전시실의 수납장들에 정리되어있는 수많은 문서들도 사료관의 커다란 강점으로 작용한다. 전국교회로부터 기증받은 역사서 당회록 설교집 등의 책자들은 풍부한 역사자료가 되어, 이를 근거로 새로운 교회사나 인물사 연구가 진행된다.

최근에도 총회장을 지낸 한 목회자의 후손들이 사료관을 방문해 관련 자료들을 찾고, 이를 중심으로 전기 서적을 출간한 적이 있다. 실제로 사료관과 교단 출판사간에 긴밀한 업무협력을 통해 역사 관련 책자들이 빈번히 제작되곤 한다. 신학생들과 기독교대학 재학생들이 논문 혹은 과제물 작성을 위해 사료관을 찾는 것 또한 비슷한 이유에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사료관 운영의 발목을 잡는 몇 가지 요인들이 생겨났다. 임시직으로 사료관 업무만 전담하던 직원이 정식 직원으로 신분 변화가 생기면서 다른 업무들까지 담당하는 바람에, 상시 개방되던 사료관에는 부득이하게 관람제한 시간이 생겨났다. 게다가 사료관의 일부 공간을 다른 기관들에 내주면서 상당수 전시물들은 창고에 쌓인 채 방치된 상태이다.

예장통합 총회는 역사관 신축을 통해 사료관이 지닌 한계와 문제점을 극복해나간다는 방침이다.

사료 관리 위한 역사위원회 노력들
역대 총회록 전자문서화 작업 시작
사료관리 사업 ‘신호탄’ … 방대한 업무 기초적 지원 필요

총회역사위원회 주관으로 역대 총회록의 전자문서화 작업이 진행되는 모습.
총회역사위원회 주관으로 역대 총회록의 전자문서화 작업이 진행되는 모습.

제103회기 총회역사위원회(위원장:박창식 목사)에 배정된 재정은 5000만원으로 다른 부서나 기관들에 비교해볼 때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다. 하지만 역사위원회가 담당하는 업무량의 방대함을 감안하면 충분한 금액이라고 할 수도 없다.

올해는 특히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한 사업의 비중이 컸고, 예년에 비해 횟수가 크게 늘어난 사적지 지정식들로 예산사용에 과부하가 걸렸다. 때문에 당초 예정했던 사료관리 관련 사업들은 안타깝게도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도 작은 성과는 있었다. 바로 우리 총회에서 유일하게 한국기독교역사유물로 지정한 역대 총회회의록의 전자문서화(PDF) 작업이 이루어진 것이다. 임시직원을 고용하여 진행된 이번 작업은 제38회 총회회의록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이루어졌다. 비록 예산 부족으로 전체 작업을 완수하지 못한 아쉬움은 크지만, 일단 사료관리 사업의 신호탄으로서 의미를 남겼다.

이외에도 총회역사위원회는 사료분과를 통해 전국노회와 교회 그리고 산하기관의 간행물 등 각종 역사자료와 유물 기증캠페인을 전개하는 한편, 현재 총회회관 6층 사료실에 보관된 물품들의 목록화 작업도 추진한 바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들이 제대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좀 더 기초적인 뒷받침이 있어야한다. 총회역사관과 사료관 등을 전담하여 관리할 인력 배치, 기증된 문서와 유물들을 보관하고 정리할 공간 확보, 소장 자료들의 검색과 열람이 가능한 시스템 구축 등이 그것이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한 걸음씩 차분히 내딛다보면 언젠가는 우리 총회도 남부럽지 않은 사료관리 시스템을 자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