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는 여러가지 내용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통합적 주제 ‘빅 아이디어’를 찾아 성경 본문을 통해 전하는 것

설교 본문 관통하는 ‘한 문장의 중심사상’ 집중하라

류응렬 목사 ●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담임● 고든콘웰신학교 객원교수● 전 총신대 교수
류응렬 목사 ●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담임● 고든콘웰신학교 객원교수● 전 총신대 교수

예배당을 나서는 교인들에게 설교 주제를 물어보면 90% 이상이 제대로 대답을 못한다는 조사가 있습니다. 설교자는 이런 현상을 회중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진정한 설교의 발전이 시작됩니다. 설교란 청중에게 쉽게 들려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설교자들도 마찬가집니다. 설교를 가르치면서 수강생들에게 자주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오늘 설교를 한 문장으로 요약해 보세요”라고 하면,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는 설교자들이 있습니다. 설교자가 한 문장으로 정리하지 못하는 설교라면, 청중에게 이해시키기란 불가능합니다.

귀를 기울여 들어도 회중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본문의 내용이 명확하지 않거나 적용이 매끄럽지 못한 경우 그렇습니다. 설교자의 전달력이 부족할 수도 있고, 듣는 사람들의 영적 성숙도가 문제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설교의 중심사상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본문을 올바르게 설명해도 하나의 중심주제가 명확하지 않다면 청중은 설교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일은 너무나 많은 정보 제공 때문이 아니라 각각의 정보들이 하나의 중심 주제와 연결이 되지 못할 때 일어납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경이 말씀하는 한마디의 메시지를 청중의 가슴에 깊이 새겨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 있는 설교자가 될 수 있을까요? 한 편의 설교에 하나의 중심사상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데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중심사상이란 무엇인가
중심사상이란 설교의 주제에 해당하는 것으로, 전달하려는 내용 중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합니다. 한 편의 설교에서 전하고자 하는 목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해돈 로빈슨은 설교에서 본문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큰 주제를 ‘빅 아이디어’(Big Idea)라고 불렀고, 학자들에 따라 이를 중심주제, 중심명제, 본문의 핵심 또는 그냥 주제라고도 불립니다.

강해설교는 주어진 본문을 한절씩 주해하는 것이 아니라 본문 전체에 나타나는 한 가지의 중심주제에 집중합니다. 본문의 단어와 문장에서 문자적인 의미를 살피고 역사적, 문맥적, 신학적, 사회적, 지리적, 언어적 배경을 보면서 하나님이 성경저자에게 무엇을 의도했는지를 찾아야 합니다. 설교란 주어진 본문에 나타난 모든 요소들을 다 소개하거나 적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가지 내용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통합적인 주제를 찾아서 본문을 통해 전하는 것입니다.

강해설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해돈 로빈슨은 설교의 중심사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설교란 산탄(散彈, buckshot)이 아니라 하나의 명중탄(命中彈, bullet)이 되어야 한다.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중심사상은 하나의 본문이나 여러 개의 본문에서 찾아낸 다수 사상들의 지지를 받는 하나의 중심이 되는 사상을 설명하고 해설하고 적용하는 것이다.” 뛰어난 설교자는 10가지를 말해도 하나의 내용을 드러내지만, 어설픈 설교자는 두 마디를 해도 연결이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로빈슨의 말처럼 설교란 두 마디를 하든, 열 마디를 하든 한 가지 중심 주제가 있어야 합니다.

설교자가 중심사상을 확인하는 두 가지의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본문의 묵상과 주해를 마치고 난 후 설교를 작성하기 전에 전하고자 하는 설교를 한 문장으로 요약해 보십시오. 명확하게 한 마디로 주제가 정리되면 설교준비가 성공적으로 된 것입니다. 둘째, 설교를 마치고 난 후에도 동일하게 질문해 보십시오. 청중이 오늘 설교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여 말할 수 있겠는가? “오늘 설교의 주제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설교자가 기대하는 대답이 나올 수 있다면 제대로 설교준비가 된 것입니다.

중심사상 어떻게 찾는가
중심사상은 몇 개가 있으며, 설교에서는 몇 가지의 중심사상을 전해야 할까요? 성경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보수주의 설교자들은 한 본문에 하나의 중심사상이 있다고 인정합니다. 하나님이 목적 없이 여러가지 내용을 제시하기 위해 성경을 주신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사상을 전달하기 위해 저자들에게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때로는 여러 내용을 담고 있는 본문이 있지만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하나의 큰 사상은 존재합니다.

중심사상은 일반적으로 주요소와 보조요소, 두 가지로 구성됩니다. 이는 두 가지 질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무엇에 관하여 말씀하는가?”라는 질문은 주요소(subject)를 찾는 질문입니다. 모든 문장의 주요소는 독립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반드시 그 중심 주제를 말하기 위해 따라오는 설명이 있기 마련입니다. 즉, 주제를 보충하여 사용하는 이야기 혹은 사건이나 설명이 있습니다. 이를 보조요소(complement)라 부릅니다. 보조요소를 찾아내는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은 말하고자 하는 것에 관하여 무엇이라 말하는가?” 주요소와 보조요소는 일반적으로 육하원칙의 질문으로 물을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5~8절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바울은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것을 강조하면서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본문의 주요소와 보조요소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주요소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입니다. 보조요소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삶은 자기를 비우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삶은 종의 자세를 지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삶은 죽기까지 순종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중심사상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삶이란 자기를 비우고 종의 자세를 지니고 죽기까지 순종하는 것’입니다.

주요소와 보조요소에서 조심해야 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주요소는 있으나 보조요소가 없다면 거창한 구호에 지나지 않기에 청중을 제대로 설득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중심주제로 설교하면서 그 사랑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그 사랑을 받으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그리고 그 사랑을 받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면 하나의 구호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어떤 모습인지 다양하게 보여주는 보조요소들이 필요합니다.

둘째, 보조요소는 잘 제시하지만, 주요소가 명확하지 않아 설교가 방향을 잃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마치 필요한 모든 부품은 준비되었으나 그것이 정작 자동차에 부착되지 않은 것과도 동일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시고 바람을 잠잠하게 하시는 장면을 실감나게 설명하면서 자연을 다스리는 예수님에 관하여 보여주지 못한다면 청중은 설명만 들을 뿐 무엇을 설교하려 하는지 알지 못할 것입니다.

본문의 중심사상과 설교의 중심주제
본문의 중심사상이란 성경이 주어진 당시에 저자가 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리킵니다. 중심주제가 발견되면 이제는 설교의 주제로 나와야 합니다. 설교의 주제란 설교자가 설교에서 가장 드러내고자 하는 중심요소를 가리킵니다. 주석적 아이디어가 본문이 말하는 중심사상이라면 설교적 아이디어는 설교에서 전하고자 하는 중심주제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설교적 중심사상은 성경의 저자가 말한 것에 근거하여 설교자 자신이 던지는 질문입니다. 설교적 중심사상도 주요소와 보조요소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주요소는 ‘오늘 설교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이고, 보조요소는 ‘오늘 설교의 주제에 관하여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빌립보서 2장 5~8절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여기서 주석적 중심사상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삶이란 자기를 비우고 종의 자세를 지니고 죽기까지 순종하는 것’입니다. 설교적 중심사상은 ‘자기를 비우고 종의 자제를 지니고 죽기까지 순종하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삶을 삽시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나 하나님의 속성에 관해서는 그 때나 지금이나 특별한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당시의 의미에서 시작하여 오늘날 삶 속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약간만 수정하면 주석이 설교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중심사상과 설교적 중심사상에는 몇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 본문주해는 과거의 사건을 다루지만 설교적 명제는 현재 상황을 다룹니다. 시제를 사용할 때 주석은 과거시제를 사용할 수 있지만, 설교에서는 반드시 현재시제를 사용해야 합니다. 본문의 주석적 아이디어가 “다윗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으로 달려갔습니다”라면, 설교적 아이디어는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으로 달려가야 합니다”가 될 것입니다.

둘째, 주해가 당시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말씀이라면 설교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주석적 아이디어는 당시의 사람들, 즉 아브라함이나 이사야 또는 바울을 다루지만, 설교적 아이디어는 오늘날 우리를 대상으로 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요셉이 바르게 설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를 “하나님은 청년들이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로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중심사상을 찾기 위해 본문과 씨름하는 것은 힘겨운 일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하나님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을 발견하는 순간, 설교자는 오늘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먼저 듣는 감격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강단에 올라가서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라고 확신있게 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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