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대 관광경영학과 교수〉

1912년 플로렌스(Florence Hedlestone Crane, 1888~1973)는 미시시피대학교 동창생 존 커티스 크레인(John Curtis Crane, 1888~1964) 선교사와 결혼한다. 플로렌스는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1913년 조선으로 들어온 뒤 순천으로 향한다. 프레스톤과 코잇 두 선교사가 광주에서 순천으로 이사하면서 처음으로 순천선교에 나섰을 때 크레인도 합류한 것이다. 미국 남장로교회 선교사들이 으레 그랬던 것처럼 순천에서도 교회·학교·병원을 차례로 건설한다. 다행히 순천에는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부터 교회가 있었기 때문에 선교사들은 학교와 병원을 세우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1915년 존 커티스 크레인 선교사는 매산학교를, 로저스 선교사는 1917년 알렉산더병원을, 윌슨 선교사는 광주에서 옮겨온 애양원을 맡는다.

플로렌스가 한국 야생화에 대해 기록한 책 <Flowers and Folk-lore from Far Korea>(오른쪽)와 번역본. 플로렌스의 야생화 사랑은 국내 최초의 국가정원인 순천만정원으로 이어졌다.
플로렌스가 한국 야생화에 대해 기록한 책 <Flowers and Folk-lore from Far Korea>(오른쪽)와 번역본. 플로렌스의 야생화 사랑은 국내 최초의 국가정원인 순천만정원으로 이어졌다.

플로렌스 크레인은 남편이 책임을 맡은 매산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쳤다. 매산학교 산업부 공예실과 양잠실에서 단추·테이블보·손수건·명주짜기 등도 가르쳤다. 가난한 학생들이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도운 것이다. 미시시피대학교 재학 중 월드페어 미술부 최우수상을 수상한 이력에서 알려주는 바와 같이 그림 실력도 뛰어났다. 미시시피를 떠나 조선으로 들어올 때 조선에는 야생화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실망했지만, 막상 조선에 들어왔을 때 3000종에 이르는 고유 식물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순천 들판에 핀 148종 야생화와 화목·과일·채소 등을 관찰하고 그린다. 우리말을 잘 했던 남편 크레인 선교사의 도움으로 야생화에 조선이름과 한자를 찾아 붙인다. 야생화에 얽힌 전설도 채록한다. 동경제국대학 식물학과 다케노신 나카이 박사와 게이조대학 츠토무 이시도야 박사에게 자문을 받는다. 순천 선교에 많은 재정을 지원한 조지 와츠의 부인에게 출판 지원을 받는다. 1931년 일본 산세이도 출판사에서 영문판으로 출판하고 미국 맥밀란 출판사에서 전 세계에 배포한다. 1933년 10월 콜롬비아대학교 조선도서관후원회 주관으로 플로렌스가 그린 야생화를 서울 <동아일보> 사옥에서 전시한다. 1969년 한국가든클럽에서 이를 다시 출판한다. 꽃을 좋아했던 육영수 여사가 한정판으로 출판해서 주로 외교관 부인들에게 선물한 책이다. 2003년에 전주삼현여고 윤수현 양이 번역·출판하고 또 다시 세상에 알린다.

“젊었을 때는 파란 치마를 입고 어른이 되어서는 빨간 치마를 입는 것은 뭘까요?” 정답은 고추다. 성장기 여자 아이는 녹색 치마를 입는다. 처녀로 성장해서 결혼 할 때는 빨간 치마를 입는다. 치마 색깔과 마찬가지로 열매 맺을 때 녹색이었던 고추는 다 자라면 빨간색으로 변한다. 고추에 얽힌 우리 풍속을 수수께끼로 풀어낸 것이다. 문득 의문이 든다. 플로렌스 크레인이 본 우리나라 무궁화는 어떤 꽃이었을까?

“삼천리 방방곡곡 없는 데 없이 피어나는 무궁화는 꺾꽂이만 해도 금방 자란다. 무궁화는 아무리 꺾어도 다시 자란다. 그래서 조선을 상징하는 국화다. 세 강대국 틈바구니에 낀 작은 반도국가 조선은 꺾일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 국민이 무궁화를 사랑한다.”

플로렌스 크레인이 존 커티스 크레인 선교사와 함께 살던 매산등 공마당길 옹벽을 야생화 그림으로 가득 채웠다. 플로렌스가 사랑했던 한국 야생화다. 이렇듯 아름다운 꽃으로 가득한 순천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한다. 도시가 점점 팽창한다. 위기를 직감한 시민들이 순천지키기에 나선다. 순천만에 정원을 가꾼다. 더 이상 팽창하지 못하도록 천연 펜스를 친 것이다. 2015년 우리나라 최초로 국가정원 지정을 받는다. 플로렌스 크레인이 그린 우리 들꽃은 이렇게 정원이 되어 다시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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