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와 장로는 우리 장로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잘못하면 교회에 분쟁이 일기도 하고 수많은 교인들이 상처를 입기도 한다. 세상이 교회를 손가락질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목사와 장로라면 그 책임을 무겁게 인식해야 한다. 개인의 생각과 이익보다 교회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

그렇게 살려면 목사든 장로든 교회 구성원들이 ‘예수’라는 바른 신앙의 대상을 볼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목사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교인들이 목사에게만 주목하게 만든다면 결코 좋은 목사는 아닐 것이다. 뛰어난 설교 능력과 거룩한 외모를 가졌더라도 그것이 예수님을 바라보는 데 방해된다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장로 역시 그렇다. 장로는 교회에서 가장 앞장서야 할 봉사자다. 헌법적으로는 교인의 대표이지만 그것은 희생적으로 섬기는 데 대표적이어야 진정한 대표라 할 것이다. 잘못된 봉사로 인해 교인들이 예수를 바라보는 데 장애가 된다면 어찌 좋은 장로이겠는가. 또 목사와 장로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교인이 예배를 드리는 데 장애가 되거나 예수님을 바라보기 어렵다면, 목사든 장로든 주님 앞에서 엄중한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차라리 목사나 장로가 되지 않은 것만 못한 일이다.

얼마 전 광주에서 목사와 장로들이 모여 기도회를 했다. 교인들의 귀한 헌금을 사용하며 매년 하는 기도회가 56회째였다. 그런 기도회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목사와 장로들이 기도를 통해 스스로 돌아보고 바로 서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목사에게만 집중된 교회를 만드는 것은 아닌지, 또 섬김의 본이 아닌 비난의 대상이 된 장로는 아닌지 돌아보는 기도회의 당위성에 누구라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다.

목사와 장로가 빠질 수 있는 가장 위험한 함정은 돋보이는 자리에서 사람의 주목 받기를 즐기는 것이리라. 이것은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을 고쳐주고 난 후에 겪었던 부작용이다. 몰려든 군중들은, 그들을 통해 일하신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이 세우신 그들을 주목한 것이다. 이것을 통탄한 베드로는 군중들에게 오직 그리스도만 바라보게 하였다. 이런 모습, 목사와 장로들은 잊지 않아야 한다. ‘스타’가 되거나 또는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교회의 ‘스타’는 목사도 장로도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 ‘자리’란 주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할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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