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목회사역 40년! 거룩한 성경의 제비뽑기 사역 50년! 나의 인생 70년을 회고한다
나의 원로 목사 추대와 영광교회 후임자 청빙을 거룩한 성경의 제비를 뽑아 결정한다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다(고전15:10). 우리 박씨 가문은 고조부님으로부터 나에게 이르기까지는 5대이며 나의 자녀손들까지 더하면 6대와 7대에 이르는 믿음의 전통을 계승해오고 있다.

우리 가문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30여 명의 목사와 30여 명의 장로와 30여 명의 권사를 배출한 한국기독교 135년 역사상 가장 많은(?) 주의 종들과 사역자들을 배출한 기독교 가문이다.

우리 박씨 가문에서 이렇듯 수많은 주의 사역자들이 배출된 까닭은 나의 고조부님께서 한국교회 최초의 순교자이신 토마스 선교사님과 조우하시고 그를 영접하여 중국으로 돌려보내신 까닭이다.

주후 1865년 토마스 선교사님께서 2~3개월간 서해안 일대를 순회하시면서 전도하시다가 풍랑을 만나서 나의 고향인 교동섬에 표류하여 나의 고조부님을 만났다. 당시는 대원군과 고종이 쇄국정책을 진행하던 때인지라 외국인이 허락 없이 우리 땅을 밟으면 관가로 넘겨야 할 때였다. 그러나 워낙 성품이 어질고 선하셨던 고조부님께서는 국법을 어겨 가시면서까지 토마스 선교사님을 따뜻하게 영접하여 융숭한 대접을 해드리고 배도 수리하여 중국으로 돌려 보내드렸다.

이와 같은 설은 우리 가문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구전이다. 그 구전에 근거하여 여러 학자들이 연구 조사한 결과 이와 같은 사실이 구전만이 아닌 역사적인 사실임을 입증하는 10여 편의 논문과 글들이 나왔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구전의 정확한 사실은 전지하신 하나님께서만 아실 일이다. “그 열매를 보아서 그 나무를 안다”(마7:14)고 하신 말씀처럼 무엇보다도 나의 고조부님의 자녀손들 가운데 지나간 154년 동안 수많은 주의 사역자들이 배출된 사실들은 그 어떤 연구논문이나 글들보다도 더 확실한 증거이며 열매라고 생각한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의 출애굽과정에서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이 이스라엘의 정탐군들을 영접하여 보호해주고 무사히 돌려보낸 사실을 기뻐하신 하나님께서 기생 라합의 가문을 구원해 주시고 그를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르게 하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심과 같다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박씨 가문에 믿음의 선조들(남성) 외에도 친할머니 송밀례 권사, 큰고모 박사라 권사, 나의 모친 김소영 성도, 새 어머니 유숙례 권사, 그리고 나의 아내 서금복 사모와 같은 경건하고도 현숙한 여성들을 보내주셔서 신앙의 계대를 이어오게 하셨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때는 우리 민족의 비극인 6.25 사변이 일어나기 7개월 전인 주후 1949년 12월 7일이다. 1.4후퇴 때 나를 낳아주신 친어머니 김소영 성도는 6.25 전쟁통에 놀라서 심장병으로 돌아가셨다.

“천사가 나를 데리러 왔다”고 말씀하시고 평안히 천국으로 돌아가셨다.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셨던 큰 형님이신 박은재 권사님의 증언이다.

6.25사변 당시 7개월밖에 안 된 갓난 어린아이인 나는 젖도 제대로 먹지 못해 배가 고파서 울었고 6.25 전쟁 시에 포탄 소리에 놀라서 울었다. 피난 시절 어린 나의 울음소리에 공산당에게 들키면 가족 모두가 몰살당할 수도 있음을 염려하신 부친께서는 나를 버리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보호하심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미 6.25사변 때 죽었어야 할 목숨이었다. 6.25사변이 끝나고 어린 나를 키워주신 분은 나의 친할머니이신 송밀례 권사님이시다.

친할머니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지극 정성으로 돌보시다가 어느 날 세상을 떠나셨다. 그런데 돌아가셨던 할머니께서 나사로처럼 다시 살아나셨다. 어떻게 해서 다시 살아나시게 되었느냐고 물으니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죽어서 천국에 가서 주님께 간청하기를 내가 어린 손자 광재를 키우다 왔는데 돌아가서 그 손자를 키워 놓고 다시 오겠다고 주님께 호소를 드렸더니 그 간청을 들으신 주님께서 허락하셔서 돌아왔다”고 말씀하셨다.

이 사실 역시도 우리 집안에서 구전으로 전해 내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우리 박씨 가문의 외손주 사위이신 압구정동 소망교회 원로 목사님이신 곽선희 목사님께서 자신이 직접 목격하고 들으신 사실을 나에게 말씀해 주심으로 확증한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70년 전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 살려주신 이유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이와 같이 6.25사변의 전쟁 중에 죽음에서 나를 구원해주시고 나의 할머님을 천국에서 다시금 살려 보내주셔서 갓난 어린 나를 양육해 주시고 그 후에 새 어머니 유숙례 권사님을 보내주셔서 나를 키워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나의 일생이나 목회사역에 있어서 빼놓을 수없는 고마운 사람은 나의 아내 서금복 사모이다. 그는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전도사인 나를 만나서 지나간 40년 동안 헌신과 기도로 내조와 자녀 양육을 잘해주어서 영광교회 목회사역을 은혜가운데 감당할 수 있었다.

제56대 전국목사장로기도회에서 박광재 목사는 제비뽑기 선거제도와 주기철 목사님의 복권에 대한 공을 인정받아 총회장상인 밀알상을 수상했다. 그 기념으로 사금복 사모님과 기념사진을 촬영하였다.
제56대 전국목사장로기도회에서 박광재 목사는 제비뽑기 선거제도와 주기철 목사님의 복권에 대한 공을 인정받아 총회장상인 밀알상을 수상했다. 그 기념으로 사금복 사모님과 기념사진을 촬영하였다.

70년이라고 하는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에 지나간 50년 동안 거룩한 성경의 제비뽑기 사역과 40년 동안 목회사역을 감당해오는 동안에 성삼위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큰 은혜를 어찌 다 필설로 표현 할 수 있으리오!

그러나 그중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지나간 날들과 사역을 회고하면서 독자들과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나의 자랑을 하는 것 같아서 조금은 망설여지기는 하나 사도바울도 고후 11장과 12장에서 부득불 어리석은 자랑을 하신 것을 상기하며 용기를 내어 사실에 입각한 간증을 하고자 한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에 지금의 왕성교회(담임 길요나 목사, 원로 길자연 목사)의 전신인 봉신제일교회에서 하나님의 콜링을 받았다. 그 당시 청소년 시절에 봉신제일교회에서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무호 목사님을 모시고 숙식을 같이하면서 낮에는 성전터도 닦고 새벽에는 새벽기도회를 알리는 차임벨을 켜는 오늘날 사찰과 같은 봉사를 하였다. 때로는 너무 피곤하여 새벽에 일어나기 힘들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광재야” 하고 이 목사님의 음성으로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깨어나서 목사님 저를 부르셨어요? 물으면 “아니” 하셨다. 나는 분명히 목사님께서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깨어났는데 목사님께서는 아니라고 하셨다.

그런데 깨어나서 일어나 시계를 보면 초종을 쳐야할 시간이었다. 그 당시에는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종을 치라고 깨어주신 줄로만 생각하였다. 그런데 신학을 공부하면서 성경을 읽는 가운데 깨달은 사실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여호와의 전에서 부르셨던 것처럼(삼상3:1~10) 그 때 나를 주의 종으로 콜링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시절 성삼위 하나님께서는 연약하고 부족한 나에게 성령의 조명을 통하여 거룩한 신구약 성경에서 1500년 동안 전승되고 기독교 교회역사 2000년 동안 장장 3500년 동안 계승돼 온 제비뽑기라고 하는 독특한 사역과 선거제도를 재발견케 하셨다. 거룩한 성경의 제비뽑기를 재발견한 이후 나의 삶 50년 동안과 목회사역 40년 동안에 인간의 이성이나 양심의 판단이나 자유의지를 통하여 해결할 수 없는 중대한 고비를 맞이할 때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을 따르기 위하여 적용해왔다. 그 결과 오늘날도 삶과 사역에 적용할 수 있는 성경의 사역이며 제도인 것을 검증하고 입증하고 확증하였다. 그리하여 듣든지 아니 듣든지를 불문하고 국내외적으로 총회현장과 선교대회 현장 등을 방문하면서 강사로서 세미나와 포럼을 인도하며 선포하며 외쳐왔다.

나는 40년 전 총신대학 신학대학원을 수학하는 중 이곳 광명시 소하동에 와서 영광교회를 설립하였다. 설립예배를 드릴 때 나는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렸다.

모세가 광야교회를 40년 동안 인도하고, 성군 다윗왕이 40년 동안 신정정치를 확립하고, 지혜의 왕 솔로몬이 40년간 평강의 사역을 감당했듯이 저로 하여금 이곳 영광교회에서 40년 동안 목회 사역을 감당하게 해주세요.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할렐루야

나는 영광교회를 40년간 목회하는 동안에 미주지역을 50여회 이상 선교여행을 하였다. 미주지역에서 우리 교민들이 많이 모여 사는 10대 도시들을 순회하면서 목사님들을 대상으로 거룩한 성경의 제비뽑기 사역과 선거제도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세미나를 인도한 후 현장에서 자원하는 목사님들을 대상으로 성경의 제비를 실제로 적용하여 거룩한 성경의 제비뽑기 실천운동본부와 교회와 국가의 선거제도 개혁운동본부를 조직하였다.

주후 2000년 2월 20일에는 미국연방 정부 및 캘리포니아 주정부에 비영리선교단체인 The Holylot Mission U.S.A 거룩한 제비뽑기 선교회를 등록하였다. 남가주교회협의회와 남가주목사회와 남가주장로 협의회가 공동으로 거룩한 성경의 제비뽑기 공청회를 개최하였다.

그 결과 남가주교회협의회에서는 회장선출을 제비뽑기로 하는 규칙을 제정하여 공포한바 있다. 또한 남가주장로성가단에서도 단장을 제비뽑기로 규칙을 개정하고 제비뽑아 세우고 있다.

40년 동안의 목회 사역 기간 중에 10년 터울로 제4차에 걸친 안식년을 미국 LA에서 사역하면서 갈릴리제일장로교회를 개척하였다. 한인타운 내에 있는 한인회관을 빌려서 개척을 하다가 제비를 뽑아서 새로운 장소로 교회를 옮겼고, 제비뽑아서 초대 여전도회를 조직하였다. 거룩한 성경의 제비뽑기에 대한 성경적, 신학적, 교단 정치적, 목회 임상학적인 이해가 미비한 가운데 전개하는 거룩한 성경의 제비뽑기 실천운동과 교회와 국가의 선거제도 개혁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그리 만만치만은 않았다.

나를 비난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박광재 목사는 제비 귀신이 들렸다”, “박광재 목사는 미친놈이다”라는 등의 저주성 말들로 비하하고 비방하며 훼방하였다. 반면에 나를 옹호하고 협력하는 분들은 “박광재 목사는 제비뽑기 선구자다”, “박광재 목사가 재발견한 거룩한 성경의 제비뽑기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존 뉴턴의 만유인력 발견과 비견할 만한 위대한 발견이다”, “영국의 노예제도를 철폐하기 위하여 일생을 바치고 마침내 이루어 낸 월보포스와 같은 목사다”, “노벨평화상 감이다”라고 격려해 주었고 에벤에셀의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와주셨다.

나는 나의 목회 사역 40년의 결론으로 나를 원로목사로 추대하는 일 뿐만 아니라 후임자를 청빙함에서도 역시 최종선택과 최후결정의 절대주권을 교회의 주와 왕 되시는 성삼위 하나님께 돌려드리고 거룩한 성경의 제비로 뽑아서 결정할 것이다.
샬롬! 할렐루야!

주후 2019년 6월 11일(화)
대한예수교장로회 영광교회
위임목사 박광재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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