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복중앙교회 ‘이천석 목사 부흥운동 조명’ 세미나
성복중앙교회 ‘이천석 목사 부흥운동 조명’ 세미나
  • 박민균 기자
  • 승인 2019.06.0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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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식 박사 “상이군인·순직 목회자 자녀 등 돌봄사역 헌신”
윤은석 박사 “교파의 경계 넘어 포용적으로 성령운동 펼쳤다”

“이천석 부흥운동은 한국교회 영적 자산”

격동의 시대를 온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냈다. 올해 고 이천석 목사 소천 30주기를 맞았다. 

성복중앙교회(길성운 목사)는 5월 26일 본당에서 설립 52주년을 맞아 ‘이천석 목사 기념세미나-이천석 목사의 일생과 부흥운동’을 개최했다.

성복중앙교회가 한국교회 부흥운동의 한 획을 그었던 이천석 목사를 조명하는 세미나를 26일 개최했다. 길성운 목사(화면 오른쪽)가 논문을 집필한 이영식 박사에게 이천석 목사의 삶과 신앙의 핵심을 질문하고 있다.
성복중앙교회가 한국교회 부흥운동의 한 획을 그었던 이천석 목사를 조명하는 세미나를 26일 개최했다. 길성운 목사(화면 오른쪽)가 논문을 집필한 이영식 박사에게 이천석 목사의 삶과 신앙의 핵심을 질문하고 있다.

이천석 목사는 1967년 5월 성복중앙교회를 개척했다. 이 목사는 한얼산기도원 설립자로 유명하다. 한얼산기도원에서 70~80년대 한국교회의 성령·부흥운동을 이끌었다. 그는 당대 김준곤 신현균 김창인 조용기 목사와 비견했다. 1986년 9월 아시아교회지도자대회에서 설교한 후 과로와 고혈압으로 쓰러져 결국 1989년 8월 17일 61세에 소천했다. 너무 일찍 부름을 받았고, 시대와 교회는 변했다. 불꽃같던 그의 삶과 사역은 묻혔다.

성복중앙교회는 2017년에 50주년기념사업으로 이천석 목사의 삶과 영적 유산을 종합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2년 만에 그 과업을 이루고 이 목사 소천 30주기에 기념세미나를 열었다.

묻혔던 영적 지도자의 귀환

이천석 목사는 한국교회 부흥운동의 한 획을 그은 인물이었다. 그를 재조명하는 작업은 최고의 교회사학자들이 맡았다. 총신대 박용규 교수와 서울신대 박명수 교수가 책임연구자로 나섰다. 두 교수의 지도 아래 이영식 박사(총신대 역사신학)와 윤은석 박사(서울신대 역사신학)가 연구와 논문집필을 했다.

이 박사는 이천석 목사의 일생과 사역 전반을 정리한 논문 <이천석 목사의 목회활동과 부흥운동에 관한 연구>를, 윤 박사는 이 목사의 성령사역과 부흥운동을 고찰한 논문 <이천석 목사의 포용적 성령운동>을 세미나에서 발표했다.

책임연구자 박용규 교수는 논문발표에 앞서 기조강연을 했다. 박 교수는 “평양대부흥운동을 연구하면서 이천석 목사님의 역사를 누구도 정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며 “이 목사님은 한국교회에 크게 기여하셨다. 이분에 대한 자료수집과 연구를 계속 진행해서 다음세대에 교회의 역사로 남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천석 목사가 성도에게 세례를 베풀고 있다. 1983년 4월 이 목사에게 세례를 받은 정국심 성도는 현재 권사로 봉사하고 있다.
이천석 목사가 성도에게 세례를 베풀고 있다. 1983년 4월 이 목사에게 세례를 받은 정국심 성도는 현재 권사로 봉사하고 있다.

죽음을 극복한 열정의 삶과 사역

이영식 박사는 논문에서 이천석 목사의 삶과 부흥운동 전반을 고찰했다.

이천석 목사는 격동의 시대에 역동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일본 히로시마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기 하루 전, 도쿄로 심부름을 가서 극적으로 살아났다. 한국전쟁에 참전해서 압록강 물을 수통에 담았던 일로 이승만 대통령을 만난 일화. 전장에서 부상당한 몸으로 5일 동안이나 견뎠으며, 결국 한 다리를 절단하고 평생 의족을 낀 채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부흥회를 인도한 일 등.

상이군인으로 폭력단체까지 조직했던 이천석 목사가 회심한 사건, 이후 평생 복음과 교회와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해 사역한 이야기들도 놀랍다. 그는 1959년 10월 24일 삼각산제일기도원 집회에 참석했다가 회심했다. 은혜를 체험한 그에게 병고침의 은사가 임했다. 성복중앙교회와 한얼산기도원에서 수많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 축구선수 차범근이 이천석 목사의 기도로 병이 나았고, 연예인 고은아 씨가 이 목사의 안수기도로 은혜를 체험한 일 등은 일간지에 보도될 정도였다.

“그의 부흥운동은 교회의 영적 자산”

이영식 박사는 그동안 조명 받지 못했던 ‘교회 밖 민족과 사회를 위한 이천석 목사의 사역’도 발굴해냈다.

이천석 목사는 자신처럼 한국전쟁 이후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해 울분에 쌓인 상이군인들을 보듬었다. “우리는 조국을 위해 육체를 불살라 버렸습니다...이제 십자가를 듭시다. 남은 다리, 남은 손, 남아 있는 육체를 주님께 바쳐...못 이룬 통일 이룩해 봅시다”라고 설교하며 그들을 위로하고 복음으로 초청했다. 이외에도 교도소 수감자를 위한 복음사역, 한얼장학회를 설립해 순직한 목회자의 유자녀를 돌본 일 등도 논문을 통해 조명 받게 됐다.

이영식 박사는 논문을 맺으면서 “이천석 목사는 한국교회의 영적 자산”이라고 말했다. “이천석 목사의 사역에서 기도운동 회개운동 성령충만 등은 곧 부흥운동이었다. 이 분의 영성과 부흥운동은 70~80년대만이 아니라, 오늘날 한국교회의 영적 자산이라고 사료된다. 이런 부흥운동이 이 시대에도 불처럼 일어나야 한다.”

포용적이며 균형 잡힌 성령운동

성결교단 소속인 윤은석 박사는 은혜와 은사가 넘쳤던 이천석 목사의 성령운동을 통전적으로 연구하고 정리했다.

윤은석 박사는 이천석 목사가 개인적인 회심과 성령 체험을 바탕으로 성령이해를 했고, 이를 통해 다양한 은사를 포함한 성령사역을 펼쳤다고 설명했다. 윤 박사는 이 목사의 성령운동이 개혁주의 칼빈주의 입장에 근거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천석 목사의 성령운동은 보다 특별했다. 개인적으로 경험한 회심과 성령 체험을 바탕으로 오순절운동처럼 방언을 강조했다. 성결교회에서 강조하는 회개와 성령 체험 후의 성결한 삶을 강하게 설교했다. 윤 박사는 “이천석 목사의 성령이해와 성령운동은 칼빈주의, 성결운동, 오순절운동의 요소가 내재하고 있다. 그는 교파의 경계를 넘어서 포용적으로 성령을 이해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중요한 점은 이천석 목사가 은사를 철저히 복음만을 위해서 사용했다는 것이다. 윤 박사는 “이천석 목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값없이 주신 것처럼 이를 값없이 사용해야 한다고 여겼고 실제로 그렇게 행했다”고 밝혔다. 이천석 목사는 ‘하늘의 7대 은총’ 등의 설교에서 “무당신 같이 하나님을 믿으면 안된다”고, “은사에 도취한 신앙이 되지 말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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