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규 목사(가창교회)

박용규 목사(가창교회)
박용규 목사(가창교회)

에이브러햄 링컨이 젊었을 때 가게 점원으로 일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밤 한 신사가 들러 뭔가를 사고 가게를 떠났다. 한참 후 링컨은 자신이 돈을 너무 많이 받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신사를 멀리까지 좇아가서 그가 받아가야 할 거스름돈을 돌려주었다. 이 이야기는 링컨이 정직한 사람이었음을 알려주는 교훈적인 일화로 언급되곤 한다.

그러나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할 것이 있다. 링컨의 정직함은 그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늦게나마 정확하게 인식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이다. 그가 너무 피곤해서 더 많은 돈을 받았음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그의 정직한 행동은 없었다. 다시 말해 정확하지 않으면 정직하지 못한 것과 같은 결과가 일어난다는 의미다.

여기서 정확은 사실에, 정직은 당위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르게 표현하면 정확은 진실에, 정직은 정의에 해당되는 개념일 수 있다. 오늘 우리 시대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사실’과 ‘당위’의 구분이 익숙하지 못하다. 합리적으로 의논하고 남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가 매우 부족하다.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주장에만 목소리를 더 높인다. 당위가 사실을 압도해버려 법정에서조차 큰 소리를 지르고 법관을 모욕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는 물론, 노회나 총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표현의 의사소통 기술이 너무나 미흡하다. 말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사안도, 말이 통하지 않아서 법정으로 달려간다. 서울대 이부영 명예교수는 “한국 사람들은 노여움을 잘타고 남을 원망하여 원한에 사무친 나머지 여러 가지 형태로 복수하는 경향이 짙다”라고 했다. 이러한 심리적 근간으로 자신보다 남을 탓하게 되는 것이다. 2007년 국내 경찰에 접수된 고소·고발 건수는 41만8714건으로, 인구 1만명당 86.8건이다. 일본의 인구 1만명당 1.3건과 비교할 때 66.7배나 높은 고소·고발률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의 고소·고발에 대한 기소율은 20% 내외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최소한의 법률적 요건을 갖추지 않았거나, 혐의나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적인 감정이 공적인 판단을 삼켜버리는 서글픈 현실을 잘 대변하고 있다.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당위성을 먼저 앞세울 때, 개인은 물론 공동체 전체에 아픔과 고통을 안겨주게 된다.

우리가 수없이 듣고 있는 한국교회 위기론은 외부에서 가해지는 것이 아니다. 내부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서구 교회들처럼 전통적인 신학의 변질이나 신앙의 열정이 식은 것이라기보다 교회, 특히 목회자들의 도덕적 실패가 자초한 문제들이다. 성경의 절대권위를 믿고 따르는 개혁신앙을 자랑하면서도 성도들에게 비춰진 목회자들의 삶과 윤리는 비도덕적이다. 기독교의 복음은 도덕체계나 이론은 아니다. 하지만 구원받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고 새생명을 얻었다고 하는 것은 도덕적 행위와 무관하지 않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도덕주의에 빠져서는 안 되지만, 비도덕적이거나 탈도덕적이어서도 안 된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당위성이다.

아직도 소위 정치꾼들이 총회를 기웃거리는 목적은 복음이 아니라 삶의 수단일 뿐이다. 각종 언론들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음해나 모함, 거짓뉴스를 통해 한 사람의 인격을 말살하였을 때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각종 분쟁과 소송에 휘말려서 개혁과 변화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이로 인해 총회가 미래에 대한 비전과 정책, 전략 수립을 할 시간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오늘 우리 시대의 아픔은 무엇보다 교회는 성장했지만 존중받고 신뢰받는 목회자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기형적 성장과 왜곡된 복음은 교회 목회자들과 지도자들을 비도덕적인 존재로 바꾸어 놓았다. 그 결과 세속사회를 변화시켜야 할 교회지도자들이 오히려 세속 가치관에 감염되고 말았다.

103회기 들어 새로운 변화와 희망을 안고 총회장을 위시한 총회임원들이 힘쓰고 있는데 교단 내 모 인사가 총회장을 상대로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을 법정에 신청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총회장 소송은 총회장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우리 교단을 향한 폭거(暴擧)이며 도전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당위를 주장할 때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를 위기로 몰고 간다.

이제는 저급한 정치의 구태를 벗고 새로운 변화와 희망을 향해 함께 노를 저을 수 없을까? 기독교의 복음이 계시의 종교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하나님 뜻과 말씀이 사람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기초로 한다. 그러므로 예수의 복음은 논리적 설득과 힘으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말과 행동으로 증거할 수 있어야 한다.

잠언 말씀처럼 말은 생명과 죽음의 갈림길이다. 생명의 언어도 있고, 죽음의 언어도 있다. 교회를 섬기며 총회를 섬기는 지도자들의 믿음의 말, 칭찬과 격려의 말, 희망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면 새로운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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