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용한 목사의 옥수동 소나타]

“사랑은 국경을 뛰어 넘는다”는 말이 있다. 섬김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다 건너에도 우리 교회와 마음을 같이하고 기도하는 동역자를 세워 주셨다.

성령을 체험한 그리스도인들은 나눔의 삶을 실천할 수 있고, 또한 실천해야 한다.
성령을 체험한 그리스도인들은 나눔의 삶을 실천할 수 있고, 또한 실천해야 한다.

몇 년 전 캐나다에서 보낸 국제우편 한 통을 받았다. 편지 봉투 속에는 정성스럽게 쓴 손 편지와 100달러짜리 수표가 들어있었다. 편지를 보낸 이는 캐나다 토론토에 사는 70대 ‘심상철, 강성옥’이라는 이름의 어르신이었다. 일찍이 캐나다로 이민 가 한인식품점을 경영하며 일가를 이루고 사시는 부부였는데, 일간지에 난 우리 교회 기사를 보고 후원을 결심했다며 수표와 편지를 보내온 것이었다. 부부는 자신들이 졸업한 대학에 10억원이라는 거액의 장학금을 기부하는가 하면, 여기저기 재난을 입은 곳에 늘 구호금을 보내던 분들이었다. 그러다 옥수동에 있는 작은 교회가 가난한 이웃들을 돕는다는 이야기에 감동을 받은 것이다. 부부는 그 때부터 매달 100달러씩을 보내온다. 이 분들은 하루 12시간씩 꼬박 식품점에서 일하는데, 그렇게 힘들게 번 돈으로 고국에 있는 가난한 이들을 후원하는 것이다.

부부는 후원금을 보낼 때면 꼭 장문의 편지를 동봉한다. 편지에는 가족 이야기, 건강 문제 등 개인적인 이야기와 함께 필자와 우리 교회에 대한 격려가 늘 담겨있다. 지난 5월에 받은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일이 힘겨우실 때도 있을 터인데 건강에 유의하셔야 합니다. 금이 가면 그 항아리가 언제 깨질지 모르잖아요. 건강하셔야 계획하시는 일도 차질 없이 이룰 수 있습니다.”

편지를 읽을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사로잡히는지 모른다. 매달 후원금을 보내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거기에다 정성어린 편지로 격려를 아끼지 않는 노부부를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잊을 수 없는 또 다른 부부가 있다. 수 년 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교포인데 한국에 나온 김에 한번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다음 날 아침 약속 장소에 나갔더니 머리가 희끗 센 점잖은 노부부가 있었다. 한국에서 컴퓨터와 관련한 직장을 다니다가 미국 회사로 건너가 살고 있는 김종주 장로님 부부였다.

인사를 나누고 아침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부부는 나에게 봉투 하나를 건넸다. 봉투에는 1000만원이 들어 있었다. “신문을 읽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요즘에도 이런 교회가 있나 싶고, 이런 목사님이 있나 싶었습니다.” 김 장로님은 나를 찾아온 이유를 설명하고는 우리 교회가 이웃을 돕는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고 했다. 아침 식사를 하며 나는 장학사업과 구제사업을 어떻게 시작했는지, 옥수동의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두런두런 들려드렸다.

식사를 마칠 때 쯤 장로님은 은행 계좌를 알려달라고 했다.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더 감동이 된다며 “내가 지금 현금은 없고 은행으로 더 이체해 드릴 테니 목사님을 위해서 쓰시라”며 돈을 더 드리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안 그러셔도 된다고, 이것만으로 충분히 감사하다고 사양했지만 장로님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날 오후 500만원이 더 입금되었다. 이것도 역시 교회 장학금으로 몽땅 드렸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기의 소유와 재산을 팔아 남을 도와 줄 정도로 본래 성숙한 사람들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그 불가능한 일을 성령께서 이루도록 하셨다. 오순절 성령의 임재하심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삶이 근본적으로 변화 받았을 때 베드로와 제자들은 자진해서 가진 것들을 그것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는 삶으로 변화되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방법과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이 없는 사회나 성령을 체험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은 근본적으로 나눔의 삶을 누릴 수 없다.

구제에 앞서 그리스도인은 먼저 성령을 체험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성령 받은 교회나 그리스도인이라면 스스로 세상 속에 뛰어들어 나눔의 삶을 실천해야 한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서 이러한 빛과 소금의 주체로서 존재할 때 오늘날 사회는 근본적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