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만호 목사(드림교회)

21세기에 들어와 교회학교와 관련한 발제나 기사를 보면 하나같이 갈수록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내용이 지배적이다. 때문에 다음세대와 관련된 기사나 글의 제목도 ‘큰일이다’ ‘비상이다’ ‘특단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와 같은 탄식과 경고와 시급성을 촉구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필자가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서 교회학교 교육과 관련된 현장을 대면해보면 목사를 비롯해 교사에 이르기까지 현실을 체념적으로 여기는 인상이 강하다.

임만호 목사(드림교회)
임만호 목사(드림교회)

교회학교 실태와 출산율의 저하로 인한 아동 감소, 입시경쟁으로 인한 교회 출석의 어려운 여건 등을 말하며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는 현실일지라도 ‘안 된다’고 체념하는 모양새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자세이다.

사람이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되면 얽힌 실타래를 풀듯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지름길이고 해결책이 된다. 요즘 같이 다음세대를 바라보며 탄식하고 교회학교 교육의 대안에 대한 묘수가 없다고 여겨질 때도 마찬가지다. 원초적인 시점에서 본질을 상기하고 시작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어른들이 자기들의 교회학교 시절을 말하면서 왕년에는 왕성했는데 요즘은 형편 없고 안된다는 식의 말을 참 많이 한다. 거기에는 그 시절이 자기생애에 있어서 정점을 찍은 최고의 경험이고, 더불어 자기의 과거를 미화하며 침소봉대하기 쉬운 심리적 요인도 작용하곤 한다. 특히 한국교회는 1970~80년대가 마치 기준점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들을 할 때가 많다. 그러나 이 또한 주님께서 보시면 꼰대짓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싶다.

1세기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의 형편을 보자. 종교사회학자 로드니 스타크는 <기독교 발흥>에서 A.D 40년경 크리스천 인구는 불과 1000여 명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헬라철학과 현란한 수사학이 발달했던 당대에 복음을 전하는 것은 씨알도 안 먹힐 것 같은 처지였다. 그 시절 바울이 고린도의 아덴에서 복음을 전했던 모습을 고린도전서에서 밝혔다.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려고 했다”고 말이다.

우리는 그 결과를 안다. 당시에 그 누구도 상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불가능한 것처럼만 보이던 상황에서 300여 년이 채 지나지 않아 로마는 밀라노 칙령(313년)으로 기독교를 공인했다. 로드니 스타크는 당시 로마제국의 인구가 5600만명일 때 3300만명이 복음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우리나라 선교초기도 마찬가지 아닌가? 1884년 군산항에 입항하여 복음전파와 진료를 시작하고 1896년 7월 26일 최초로 두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던 선교사 레이놀즈, 드루, 전킨의 보고에 의하면 이 땅은 너무나도 가난하고 질병이 만연하며 우상을 무지무지하게 섬기는 곳이었다. 그리고 선교사들을 환영하여 복음을 쉽게 받아들인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이 전하고 뿌린 복음의 씨가 오늘 필자가 섬기고 있는 드림교회의 전신인 개복동교회의 태동이었다. 그 복음의 역사는 이 땅을 변혁시키는데 엄청난 기여를 해왔다.

이처럼 바울이 복음을 전하던 1세기 상황이나 1세기 전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복음을 전하던 상황이나 모두 열악하고 적대적이었다. 결코 여건이 좋아서 복음이 전해졌고 오늘날의 우리가 있게 된 것이 아니다.

그렇다. 생명과 능력은 복음 자체에 있다. 오늘날 교회학교 전도와 교육도 현재의 상황만 놓고 얘기하지 말고 복음의 능력을 믿으며 가르치고 전해야 한다. 언제나 우리 눈에 보이는 형편만 바라보면 두렵고 부정적인 말과 태도를 취하기가 쉽다. 그러나 현실상황이 어렵고 적대적일지라도 십자가의 능력을 붙잡고 전하며 가르쳐야 한다. 교회에서 시행하는 기독교교육은 좀 착한 사람을 만들기 위한 교육이 아니다. 영혼을 살리며 기독교세계관을 갖고 살도록 하는 교육이다.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인 교육이 아니다. 우리가 시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대가치의 교육이다.

하나님의 통치와 나라를 실현하도록 교육을 수행하는 기관이 그 어디에 있는가? 오직 교회와 이런 목적을 가지고 시행하는 몇몇 기관뿐이다. 지금 처한 환경이나 교회의 크고 작음이나 여러 가지 여건을 가지고 다음세대를 가르치는 일을 해야 하냐 말아야 하냐를 논할 때가 아니다. 다음세대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기독교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다.

거듭 말하지만 단 1명의 아이가 있는 교회든 1000명의 아이가 있는 교회든 그 목표도 존재 이유도 동일하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 거의 매주 교회학교 견학차 손님이 온다. 하지만 부임하던 때만해도 반듯한 교육환경 하나 갖추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교회학교 견학 오신 분들에게 지금의 400 여 교사와 콘텐츠와 시스템 등만 보지 말고 본질을 놓치지 말자고 말한다.

우리 모두 초심으로 돌아가고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시도하자. 능력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있고 복음에 있다고 외치는 말이 허공을 치는 메아리가 되지 않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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